라인강, 슈만의 마지막 봄이 흐르는 곳

뒤셀도르프의 지휘자

by 조재연
KakaoTalk_20260204_144838182.jpg 쾰른 대성당

사랑하는 시인의 흔적을 따라 라인강의 도시, 쾰른(Köln)에 도착했다. 쾰른 중앙역을 나서자마자, 말로만 듣던 거대한 쾰른 대성당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200년 전 슈만 역시 이 압도적인 풍경에 영감을 받아, '시인의 사랑' 여섯 번째 곡에 라인강 위로 솟은 대성당의 모습을 노래로 남겼다.


https://youtu.be/4geZ_oZcyQc

라인, 그 거룩한 물결 그 속으로 비춰오는구나.
저 장엄한 성당의 실루엣과,
거대하고 거룩한 쾰른의 모습이 성당 거기에 걸려 있네.
황금빛 가죽 위에 채색한 그림 한 점.
내 삶의 황량함 속으로 미소의 빛 친근히도 비춰준다네.
꽃들과 아기천사 우리 사랑의 성모님 주위를 떠도네,
눈이며, 입술이며, 그 뺨이며
내 사랑 그녀와 똑같이 닮았구나.

슈만 '시인의 사랑' 제6곡 라인, 그 거룩한 물결
슈무크 마돈나(Schmuck Madonna)

그의 시를 따라 대성당 내부에 들어가, 화려하게 장식된 은총의 성모상 '슈무크 마돈나(Schmuck Madonna)'를 바라본다. 시련을 당한 시인은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성모상을 보며, 자신의 옛 연인을 떠올렸으리라.

쾰른에서 머무는 3일 내내 비가 내렸다. 하지만 이 흐린 날씨가 오히려 더 반갑다. 앞으로 낙하하게 될 슈만과, 시련을 당한 '시인의 사랑' 속 주인공에게 이입하기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로베르트 슈만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던 뒤셀도르프로 향했다.


쾰른을 떠나 뒤셀도르프로 향하는 기차를 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빗속의 라인강은 유난히 거세게 물결친다. 넘실거리는 저 강물을 보고 있자니, 슈만의 첼로 협주곡 A단조 Op. 129의 선율이 귓가를 맴돈다.

슈만과 클라라처럼, 음악으로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예술혼을 불태웠던 20세기의 또 다른 비극적 천재 커플,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연주하는 슈만을 들으며, 차가운 바람이 부는 라인강의 도시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을 슈만을 떠올려본다.


https://youtu.be/y3iw1lTSPGA

로베르트 슈만, 첼로 협주곡 A단조 Op. 129

비를 맞으며 도착한 뒤셀도르프는 여행 중 만났던 다른 독일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울의 어느 거리를 닮은 듯, 잘 정돈된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눈에 띈다. 한국을 떠난 지 2주 남짓 되어서였을까, 익숙한 듯한 뒤셀도르프의 풍경이 왠지 모르게 친근하다. 반가움을 뒤로하고, 슈만 부부를 만나러 빌커 가(Bilker Straße)에 있는 '슈만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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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

1850년 9월 2일, 마흔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서른한 살의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다섯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사랑하는 친구 멘델스존이 초대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던 이곳 뒤셀도르프에 도착했다.

KakaoTalk_20250728_121859737_01.jpg 뒤셀도르프 극장 경영진과의 갈등에 지쳐 그토록 떠나길 원했던 멘델스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동상은 그가 벗어나려 했던 극장 앞을 지키고 있다.
KakaoTalk_20250728_121859737.jpg 펠릭스 멘델스존 동상


슈만은 처음에 이 제안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막 예술 도시로 발돋움하려던 뒤셀도르프에게 당대 최고의 음악가 부부의 합류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시는 이들 부부의 명성을 통해 도시의 예술 문화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뒤셀도르프는 슈만 부부의 도착을 기념해 슈만의 작품으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한 성대한 콘서트를 열며 이 음악가 부부를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이 영광에는 큰 책임과 업무도 따랐다. 음악감독으로서 슈만이 감당해야 할 업무는 상상을 초월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정기적인 지휘는 물론, 연간 10회가 넘는 콘서트를 이끌어야 했다. 막시밀리안 교회와 성 람베르투스 교회의 음악 프로그램까지 모두 관장해야 했고, 라인강 유역 최대의 음악 축제인 '니더라인 음악축제(라인강 하류 음악 축제)'의 총책임자 역할도 그의 몫이었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잘 알았던 슈만에게 이 모든 것은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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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의 지휘자, 창작혼을 불태우다


놀랍게도 이러한 부담감 속에서 슈만의 창작 의지는 다시금 불타올랐다. 그는 뒤셀도르프에 도착한 지 불과 2주 만에 앞서 언급한 첼로 협주곡 A단조 Op. 129를 완성해 낸다. 넓은 음역을 넘나들며 풍성하고 심오한 정서를 담아낸 이 곡은 로맨틱한 우수와 격조 높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훗날 드보르자크, 엘가의 작품과 함께 '3대 첼로 협주곡'으로 꼽히는 위대한 작품이지만, 독주자에게 극악의 기교를 요구했던 탓에 안타깝게도 슈만 생전에는 단 한 번도 연주되지 못했다.

KakaoTalk_20250728_115254247_02.jpg?type=w773 슈만 교향곡 3번'라인' 악보 표지, 뒤셀도르프 슈만하우스

첼로 협주곡을 완성한 직후, 클라라와 함께 떠난 라인강 여행에서 얻은 영감으로 또 다른 대편성 곡을 작곡했다. 바로 교향곡 제3번 '라인' Op. 97이다. 내가 쾰른역에 도착했을 때, 플랫폼을 가득 채우며 여행자를 맞이하던 시그널 음악이 바로 이 교향곡의 도입부였다. 그를 따라 쾰른에 도착한 내가 마주한 첫인사가 그의 교향곡이라니. 이보다 더 멋진 환영인사가 있을까?


https://youtu.be/9u1u_xAYg4o?si=eXr3_q1c3SqOhVpD

1악장의 당당하고 영웅적인 주제는 독특한 당김음 리듬을 타고 유유히 흐른다. 듣는 이로 하여금 마치 라인강의 거대하고 힘찬 물결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웅장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도시에 대한 슈만의 벅찬 기대와 희망이 가득 담긴 장엄한 시작이다. 슈만의 교향곡 제3번은 '라인'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뒤셀도르프에 도착한 후 느꼈던 희망과, 클라라와 라인강 여행 중 느낀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에서 얻은 영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뒤셀도르프 시절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특히 5개 악장으로 구성된 이 교향곡의 넷째 악장은 그가 쾰른 대성당에서 본 장엄한 의식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묵직한 금관악기들이 마치 거대한 고딕 성당의 기둥을 쌓아 올리듯 장엄한 소리의 건축물을 빚어낸다. 슈만의 교향곡 중 가장 밝고 생명력 넘치는 이 곡은, 그가 뒤셀도르프에서 느꼈던 삶의 환희를 장대하게 그려내고 있다.


1851년, 슈만은 니더라인 음악축제에서 직접 지휘하며 이 교향곡을 초연했고, 청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클라라 역시 남편의 음악에 깊이 감격했다.


내 음악은 멀리 퍼져나가고 있네.
독일을 넘어 특히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예술가로서 그런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야.

- 로베르트 슈만-
KakaoTalk_20250728_115254247_06.jpg?type=w773 슈만이 참가한 니더라인 음악축제 포스터


갈등, 그리고 고독


슈만은 총 세 번의 '니더라인 음악축제'를 지휘하며 음악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축제 기간 동안 23곡에 달하는 자신의 작품을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현대 작품을 비중 있게 다루며 자신만의 뚜렷한 음악적 색채를 드러냈다. 여기에는 그가 존경했던 친구, 펠릭스 멘델스존의 작품 13곡도 포함되어 있었다.

1853년, 슈만은 이미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축제의 지휘봉을 잡았다. 비록 축제의 일부만 지휘할 수 있었지만, 그가 직접 지휘한 '교향곡 4번'은'교향곡 3번'과 마찬가지로 청중과 비평가들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

이 시기 슈만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괴테의 '헤르만과 도로테아' 등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한 서곡들을 작곡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규모 작품, '장미의 순례(Der Rose Pilgerfahrt) Op. 112'작곡에 깊이 몰두했다. 독창, 합창,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이 곡은 오라토리오와 연가곡, 심지어 오페라의 요소까지 녹여낸 독특한 작품이다. 이는 다양한 장르의 장점만을 뽑아 서정성과 극적인 요소를 결합하려 했던 슈만의 문학적 감수성과 실험정신을 보여준다. 특히 장중한 오케스트라 도입 후 독창이 울려 퍼지는 구성은 훗날 브람스가 '독일 레퀴엠'을 작곡할 때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를 통해 슈만에 대한 브람스의 깊은 존경심 또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KakaoTalk_20250728_115254247_01.jpg?type=w773 장미의 순례 (Der Rose Pilgerfahrt) Op. 112 악보표지, 뒤셀도르프 슈만하우스

하지만 오케스트라와의 불협화음은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연습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단원들 때문에 슈만은 종종 단원들을 다그쳤고, 단원들은 그런 슈만보다 부지휘자인 율리우스 타우쉬를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슈만의 건강 악화가 겹쳤다. 지휘 도중 지휘봉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는 등 지휘자로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오케스트라와 슈만 사이의 무너져 내렸다.

결국 시 위원회는 슈만에게 지휘를 그만둘 것을 종용했고, 이 과정은 클라라에게 깊은 상처와 분노를 남겼다.


슈만에게 사전에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은 채
사임을 강요하는 것은
슈만에 대한 음모며 모욕이다.

- 클라라 슈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슈만은 뒤셀도르프 음악감독의 의무(연간 두 곡의 종교음악 작곡)를 이행하기 위해 '미사 사크라(Missa Sacra) Op. 147'를 작곡한다. 처음 시작은 의무감이었지만, 그는 점차 진심을 다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을
종교음악에 쏟는 일은
예술가가 도달해야 할 최고의 목표다.

- 로베르트 슈만-


바로크 시대의 엄숙함, 낭만주의의 풍성한 정서, 그리고 슈만 특유의 매혹적인 선율이 결합된 이 곡은 낭만 시대 최고의 미사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KakaoTalk_20250728_115254247.jpg?type=w773 미사 사크라 (Missa Sacra) Op. 147 악보 표지, 뒤셀도르프 슈만하우스


뒤셀도르프 슈만 하우스


KakaoTalk_20250728_121133632_01.jpg 뒤셀도르프 슈만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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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 슈만하우스

1852년 9월, 슈만 가족은 뒤셀도르프 빌커 가의 집으로 이사했다. 바로 이곳이 지금 '슈만 하우스(Schumann-Haus)'라 불리는, 그의 마지막 안식처다. 1층은 슈만, 2층은 클라라가 사용하는 집 구조 덕분에, 비로소 두 명의 음악가가 서로 방해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독립된 작업 공간을 갖는 것은 클라라의 오랜 숙원이었다. 클라라는 남편의 공간을 '작은 새장'이라 불렀고, 이 아늑한 공간에서 슈만은 과거 작품 정리에 몰두하며 '분테 블레터(Bunte Blätter) Op. 99'작품집을 출판했다.

KakaoTalk_20250728_115254247_08.jpg 로베르트 슈만의 방
KakaoTalk_20250728_121133632_27.jpg 로베르트 슈만 흉상

슈만의 방을 들어서자, 그의 흉상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특유의 가르마를 보며 환각 증상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미치광이의 모습이 아닌, 늘 정돈된 모습으로 생활했을 그를 상상하며 그를 사랑하는 나는 그가 받았을 고통을 애써 외면한 채, 조금은 더 편안한 말년을 보냈으리라고 애써 위안을 삼아 본다.

로베르트 슈만의 책상

시선을 돌려 책상을 바라본다. 책상 위에는 그가 살던 시대에 사용했던 펜과 잉크통이 전시되어 있다. 클라라가 '작은 새장'이라고 불렀던 그만의 공간에서 슈만은 그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음을 직감했는지 놀라운 창작욕을 보여주었고, 평소와 달리 자신의 작품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뒤셀도르프시에서 부여한 막대한 임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는 저 책상 앞에서 얼마나 바빴을까.

'로베르트 슈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펜'을 떠올린다. 그는 위대한 음악가이기에 앞서, 문학을 사랑한 위대한 평론가였다. 내게 그는 지휘봉보다 펜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이 공간은 그에게 핵심적인 공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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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시대의 필기구들

방 가운데에 위치한 파란색 소파에 앉으면, 헤드셋으로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슈만의 현악사중주곡이 흘러나온다. 역시나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꿈같은 그의 음악을 들으며, 아픈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바쁘게 작성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상상한다. 나의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마음이 뭉클하다.

옆방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의 아내 '클라라의 방'이 나온다. 공간을 가득 채운 그녀의 유품을 보니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그녀가 무척이나 아꼈던 '클렘스(Klemms) 피아노'다. 이 특별한 피아노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는 뒤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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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진열장에는 그녀의 삶의 흔적이 담긴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잦은 연주 여행길에 그녀가 사용했던 작은 컵, 젊은 시절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런던 투어 중 다른 귀중품을 모두 도둑맞았을 때 유일하게 남았다는 브로치가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부부가 평생 존경하고 사랑했던 친구 펠릭스 멘델스존의 머리카락 한 줌이 담긴 에나멜 반지를 보며 그들의 깊은 우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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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서 가장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새하얀 '백조 깃털 망토'다. 덴마크 공연 후 왕실로부터 선물 받은 이 망토를 클라라는 무척 아껴 추운 계절마다 소중하게 걸쳤다고 한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평생 검은 상복만을 고집했던 그녀였기에, 이 순백의 망토가 간직한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은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 망토는 클라라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상징하는 듯, 방 안에서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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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부부의 황혼


KakaoTalk_20250726_122412660.jpg?type=w773 요제프 요아힘과 클라라

1853년 5월,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니더라인 음악 축제'에서 슈만은 중요한 인연을 만난다.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다. 슈만이 지휘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기 위해 뒤셀도르프를 찾은 요아힘과 슈만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깊이 이끌렸다. 5월 17일의 이 둘의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둘의 호흡은 완벽했다. 클라라는 그날의 감동을 이렇게 기록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요아힘은
우리 모두에게 승리감을 안겨주었다.
그는 완벽한 기교로 연주했다.
아주 작은 음 하나에서도 영혼의 소리가 들렸는데,
그처럼 이상적인 연주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장악한
종교의식처럼 느껴졌다.

- 클라라 슈만-


1853년 9월 12일, 슈만 부부는 결혼 13주년을 맞아 뒤셀도르프 근교 벤라트로 나들이를 갔다. 새들이 노니는 호숫가를 거닐면서 슈만 부부는 즐겁게 산책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있으니
모든 것이 축복 같았다.

- 클라라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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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들이 후 집에 돌아온 클라라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그녀의 방에는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클렘스 사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그녀의 제자가 그 피아노로 아름다운 시에 붙인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시는 13년 전 결혼식 날, 슈만이 클라라에게 헌정했던 시였다. 로맨티스트 슈만이 클라라를 위해 준비한 감동적인 이벤트였다.

KakaoTalk_20250728_121133632_15.jpg?type=w773 13년 전 결혼할 때 슈만이 클라라에게 헤르텔 그랜드피아노를 선물하며 클라라에게 헌정했던 시에 음을 붙여 선물한 곡의 악보

피아노 위에는 그가 클라라에게 선물하기 위해 작곡한 '서주가 있는 콘체르트 알레그로 Op. 134'와, 요아힘을 위해 작곡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 Op. 131' 악보도 놓여 있었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피아노를 고르는데 매우 까다로웠는데, 슈만이 선물한 클렘스 피아노에 상당히 만족하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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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은 이 모든 풍성한 축복에 대한
감사로 가득 차 있다.
하늘이시여,
우리의 행복을 길이 유지하도록 해주소서.

- 클라라 슈만-


슈만은 이날의 기쁨을 친구 요아힘에게도 전했다.


자네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르네.
내 아내의 날은 정말 즐거움이 넘치는 하루였네.
내가 말이야, 그랜드피아노로 클라라를 놀래주었지.
그리고 작품 몇 개도 선물하고.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은
자네를 생각하고 쓴 거야.
그 작품을 보내주겠네.
실제로 연주할 때 문제가 없는지 보고 알려주게.

- 슈만의 편지-



봉인된 비운의 걸작, 바이올린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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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힘과의 깊은 관계는 슈만의 마지막 대편성 곡,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WoO 23'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극심한 신경쇠약과 정신적 혼란 속에서도, 슈만은 단 12일 만에 이 대곡을 완성해 낸다.

하지만 첼로 협주곡처럼 이 곡 역시 연주자에게 엄청난 기교를 요구했다. 기대를 하며 악보를 본 요아힘은 실망한 듯이 "이건 너무 어렵지 않은가?"라며 난색을 표했고, 슈만의 건강 문제가 작품의 균형을 해쳤다고 생각하며 정중히 연주를 거절했다. 결국 슈만의 마지막 오케스트라 작품은 그의 생전에 연주되지 못한 채 '작품 번호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고, 오랜 기간 숨겨져 있었다.


이 곡에는 기묘하고도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 클라라와 평생의 친구 브람스 역시 요아힘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들은 슈만을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악보의 출판을 막고 연주를 금지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요아힘은 "슈만 사후 100년이 되기 전(1956년 이전)에는 절대 이 곡을 세상에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과 함께 악보를 프러시아 국립 도서관에 봉인해 버린다.

시간이 흘러 1933년 런던, 기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요아힘의 조카손녀이자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옐리 다라니(Jelly d'Arányi)가 교령회(심령술 모임)에 참석했다가, 자신을 슈만의 영혼이라고 밝힌 존재로부터 메시지를 받게 된다. "우리가 남긴 미완성 작품이 있다. 그것을 찾아 연주해 달라."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다라니는, 이후 이어진 교령회에서 이번에는 자신의 큰할아버지인 요아힘의 영혼으로부터 "그 협주곡을 찾으라"는 더 구체적인 메시지를 듣고는 마침내 악보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다라니의 노력 끝에, 악보는 베를린의 프러시아 국립 도서관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역시 이 비운의 협주곡에 큰 관심을 보이며 세계 초연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당시 독일은 나치 정권 아래 있었다. 마침 나치는 유대인 음악가인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대체하기 위해 '위대한 독일 작곡가 슈만의 잊혀진 걸작'이라는 소재를 정권 선전용으로 이용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던 메뉴인이나 외국인이었던 다라니가 아닌, 독일인 바이올리니스트 게오르크 쿨렌캄프(Georg Kulenkampff)가 초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모든 것을 서둘렀다.

결국 요아힘의 유언은 깨졌고,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1937년 11월 26일, 쿨렌캄프의 연주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협연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후 메뉴인과 다라니도 각각 미국과 영국에서 초연을 가지며 이 곡을 세상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https://youtu.be/qaaDua9Om3U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면, 비바람 몰아치는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슈만의 모습이 겹쳐지며 가슴이 저며온다. 사실 이번 여행을 결심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도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협주곡 때문이었다. 뮌헨 필하모닉이 이 비극적인 바이올린 협주곡과,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쓴 교향곡 1번을 나란히 연주하는, 슈만만을 위한 프로그램은 무엇보다도 나에게 큰 여행 동기였다.


운명의 노크


1853년 9월의 마지막 날, 한 젊은이가 슈만의 집을 찾아왔다. 슈만 부부는 마침 외출 중이었고, 문을 열어준 큰딸 마리는 낯선 청년에게 내일 다시 방문해 달라 이른 후, 아버지의 노트에 짤막한 메모를 남겼다.



함부르크에서 온 브람스 씨가 다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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