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의 도시, 쾰른

쾰른에서 과거와 현대를 걷다

by 조재연

독일 여행의 막바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속한 세 도시를 들렀다. 여행 기간 내내 화창했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나의 우상, 로베르트 슈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따라가는 내 마음을 하늘도 아는 것처럼.

기차는 빗줄기를 뚫고 쾰른 중앙역(Köln Hbf)에 도착했다. 플랫폼에 내리자마자 호른 소리가 역사를 울린다. 슈만 교향곡 3번 '라인'의 1악장 도입부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쾰른 중앙역은 라인강을 찬양한 슈만의 음악을 시그널로 쓰고 있었다. 이 얼마나 멋진 우연인가? 덕분에 쾰른의 첫인상은 시작부터 낭만으로 가득 찼다.

KakaoTalk_20260206_102104295.jpg 쾰른 중앙역


중앙역을 빠져나오자 수많은 계단이 나를 기다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어쩌나'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성당이 그 검은 자태를 드러냈다.

슈만의 교향곡 3번으로 청각적인 놀라움을 주었던 쾰른은, 이제 시각적인 압도감으로 나를 맞이한다. 이 거대한 성당의 위용에 압도되어 슈만이 '시인의 사랑' 속에 그 선율을 남겼으리라.

쾰른 대성당


현대미술의 보고, 루드비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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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을 잠시 뒤로하고, 입장 시간제한이 있는 대성당 대신 바로 옆에 위치한 현대미술의 보고, 루드비히 미술관(Museum Ludwig)으로 발길을 돌렸다.

2년 전, 서울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보았던 전시회의 기억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당시 전시실 입구에 있던 케테 콜비츠의 조각은 다가올 베를린 여행을 더욱 기다리게 만든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굉장히 친절했다.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도슨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압도적인 키르히너의 그림과 따뜻한 청기사파의 색채를 지나, 피카소 컬렉션부터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까지 거장들의 숨결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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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건, 이 엄청난 컬렉션들 한가운데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이 장난치다 귀한 작품을 손상시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오직 이방인인 나만의 몫인 듯했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예술은 삶 속에 흘러야 한다." 자신들의 소장품을 기꺼이 시민에게 기증한 루드비히 부부의 신념이 바로 이런 풍경을 만든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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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대의 공존, 쾰른 대성당


쾰른을 이야기하면서 대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고딕 건축의 진수이자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이 성당의 내부로 들어서면, 절로 마음이 경건해진다.

나는 부활절 기간에 쾰른에 머물렀다. 비록 미사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대성당 의자에 앉아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즐거운 부활을 맞이할 수 있음에 기쁨의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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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60206_102104295_10.jpg 바이에른 창

대성당은 외부만큼이나 내부도 경이롭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빛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먼저 '바이에른 창'이 눈에 들어온다. 1800년대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가 기증했다는 이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전적인 위대함을 뽐낸다.

그것을 지나면 마치 루드비히 미술관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현대적인 스테인드글라스와 마주한다. 바로 현대 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창을 새로 디자인한 작품이다.

KakaoTalk_20260206_102104295_14.jpg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픽셀 스테인드글라스

독일 여행을 하며 느낀 키워드는 '과거와 현대의 공존'이다. 모든 도시에서 이를 느꼈지만, 재건의 과정 속에서 과거와 현대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잇는 모습은 쾰른에서 가장 빛났다.

오래된 게로 십자가와 동방박사의 유물함이 안치된 화려한 경당을 보며, 자연스레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의 성배와 성창을 지키는 기사들이 떠올랐다. 성금요일이 지난 부활절이었으니, 이런 진한 몰입도 나에게는 과한 상상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바그너의 성배 동기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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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의 자물쇠, 그리고 슈만의 반지


쾰른에 머무는 동안 라인강을 건너 중앙역으로 이어지는 철교, 호엔촐레른 다리(Hohenzollernbrücke)를 매일 건넜다. 이곳은 마치 남산의 전망대처럼 수많은 연인이 '사랑의 자물쇠'를 매달아 놓은 명소다. 영원한 사랑을 염원한 이들은 열쇠를 흐르는 라인강에 던지며 기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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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서 다시금 슈만을 떠올렸다. 환영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던 슈만은 클라라에게 쪽지 하나를 남겼다. "라인강에 반지를 던지겠다고. 당신도 그렇게 하라고. 그리하면 우리 영혼은 하나가 되어 함께하지 않겠냐고."

나는 반복해서 말하지만, 로베르트 슈만은 결코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오로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인고의 시간 속에서 탄생한 그의 내면의 소리를 단순히 병약함이나 정신병의 소산으로 치부할 수 없다.

호엔촐레른 다리를 건널 때 뺨을 스치는 바람이 좋았다. 나 역시 관광객이었지만, 대성당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며 마치 쾰른 시민이 된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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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머무는 내내 궂은 날씨였지만, 바람막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걸었던 이 다리 위에서의 기억은 그 어떤 맑은 날보다 강렬하게 남아 있다.


쾰른의 맛, 쾰쉬(Kölsch)


마지막으로 맥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묵직한 잔에 담긴 바이에른의 바이스비어(밀맥주)와는 결이 다르다. 200ml의 가느다란 얇은 잔(Stange)에 찰랑거리는 청량감 가득한 라거, 바로 '쾰쉬(Kölsch)'다.

너무나도 맑고 청량해서 목 넘김마저 부드럽다. 심지어 '쾨베스(Köbes, 웨이터)'들이 돌아다니며 빈 잔이 보이면 묻지도 않고 새 잔으로 채워주기 때문에, 과음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환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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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명한 쾰쉬 브랜드인 '프뤼(Früh)'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머물렀다. 덕분에 프뤼(Früh)와 중앙역 앞의 가펠(Gaffel)을 쾰른에 머무는 저녁 내내 원 없이 즐겼다.

하루의 마무리는 언제나 호엔촐레른 다리, 그리고 쾰쉬 맥주와 함께였다. 그래서일까? 여행 중임에도 유독 집처럼 편안함을 느꼈던 도시가 바로 쾰른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마트에 들르면 습관처럼 맥주 코너를 서성인다. 달리기가 취미라 평소엔 절주를 하지만, 바이헨슈테판, 파울라너, 가펠 같은 독일 맥주를 볼 때면 그날의 빗소리와 맥주 거품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한두 캔을 집어 들게 된다.

여행지의 추억을 동네 마트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꽤나 멋진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