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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풍가도 Nov 12. 2024

따뜻한 봄날엔 낮잠을 자고 싶다.(2)

#2. 칼을 뽑고 그냥 넣어도 나쁜 선택은 아니야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정 반대였다. 새로운 일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항상 가던 밥집만을 갔었고, 가던 카페와 항상 해오던 일, 만나던 사람만 만났었다. 이런 삶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안정감도 주고 자신만의 루틴도 생겨 뭔가 불안하지 않다. 하지만 재미는 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내가 어느 순간 변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일단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딱히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굳이 찾자면... 나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돌아 봤을 때 뭔가 재미나고 알찬 게 있었으면 하는데 무언가 풍성하지 못함을 느껴서 변화가 필요했나 보다.     



얼마 전 같이 일하는 형님께서 복싱을 같이 해 보는 건 어떠냐고 나를 유혹했다. 

체육관 할인 행사를 핑계로 같이 해 보자는 말에 나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휴지조각처럼 홀랑 등록을 해 버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잠시 다녔던 복싱도장. 그 이름도 무언가 무협지에 등장할 만한 ‘구룡체육관’에 2달간 다녔던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뭐 해봤던 운동이란 생각으로 겁도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


첫날 관장님의 이미지는 참 선해 보였다. 조금은 앙증맞아 보이는 키에 살짝 나온 배, 그리고 너무 착하게 보이셔서 나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운동.

“회원님, 많이 힘드세요? 그만하시겠어요?”

‘아니, 나 오늘 첫날이라고요...’

관장님의 그만할 거냐는 질문은 절대 그만하면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운동을 시작하자 이렇게 사람이 바뀌다니...

분명 운동 시작 전에는 현란한 스텝을 밟으며 상체를 좌우로 흔들면서 폼나게 샌드백을 팡팡 두드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지만, 당연하게도 첫날부터 그런 걸 가르쳐주는 복싱도장은 아무 곳도 없으리라. 

“체력이 먼저입니다.”

관장님의 무서우면서도 조금은 귀여운 말투가 나를 더 몰아붙였다. 

줄넘기와 팔 굽혀 펴기, 버피테스트와 스쾃, 사이드스텝 등 쉬는 시간 없이 구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서 있는 바닥은 땀인지 침인지 모를 무언가로 흥건했다. 

그리고 찾아온 꿀맛 같은 1분 30초 쉬는 시간에 시계를 보니 이제 막 20분이 흐른 것을 보고 나는 좌절했다.         

 


최근에 중년들의 고시라는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어릴 때 살던 고향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 갑작스럽게도 음? 이거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에 또 저질러 버렸다.

지금은 없어진 걸로 기억하는데 예전에는 연대보증이라는 것이 있었다. 담보가 부족한 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보증을 통해 대출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이들이 이것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았고 그래서 어른들이 마르고 닳도록 ‘가족끼리도 보증 서는 거 아니다.’라는 말씀을 그렇게도 하셨다.

“공인 중개사 합격은 OOO”이라는 CM송으로 유명한 곳의 인강을,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용기 있게 ‘1년 합격 환급반’을 신청했고, 어찌어찌 민법을 열심히 공부 중이다. 하지만 간결함 속에 핵심을 뽑아낸다는 민법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사람과 사람사이의 법인 민법이 뭐 이리 복잡하고 약속이 많은지, 참 세상 복잡하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해 본다.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간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말이고 상황에 따라선 교육이 되는 말은 맞지만 나는 이 말에 분명한 반대의 의견을 표한다.

아니, 가다가 그만둔다고 그 간만큼의 경험과 노력, 과정이 어찌 시작도 안 한 것보다 좋지 않다는 것인지. 그리고 아니 간만 못하다면 겁이 나서 어디 시도라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이기에 더 안 좋은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포기하는 것은 습관이 될 수 있다.’, ‘준비나 생각 없이 일을 시작하니 그런 것 아니냐’ 등의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뭘 몰라도 정말 모르는 소리다.     

유명 스포츠용품사 나이키의 슬로건이 무엇인가? 바로

‘Just Do It!’ 아닌가

이 얼마나 멋지고 황홀한 문구인가? 일단 해보잔다. 일단 해 봐야 이게 재미가 있는지, 나하고 맞는지, 유익이 되는지 알 것 아닌가

전 헤비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계획은 계획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계획은 실행이나 도전 이전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이후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알지 않는가?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다면 ‘실행’이라고 해보자. 이것도 조금 부담스럽다면 그냥 ‘해보기’ 정도도 괜찮을 것 같다. 너무 겁내지 말자. 하다가 중간에 그만둔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거 아니다. 뭐 약간의 멋쩍음이나 민망함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런 감정 또한 가만 생각해 보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라는 구시대적 산물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많이 시도해 보고 많이 포기도 해 본다면 ‘가다가 아니 간’만큼씩이라도 많이 쌓이겠지.‘라고 쿨내 풍기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게 경험이던 재미던 추억이던 말이다.     


그나저나 복싱을 이제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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