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서 눈여겨보던 동네책방이 있었다. 나는 서점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아이가 조금만 더 자라서 내게 조금만 더 자유가 생긴다면 우리 동네에 있다는 그 서점으로 달려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실행했다. 꼭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그곳으로 갔다. 마침 그곳에서는 커피와 디저트도 판매하고 있었기에, 영혼이 허기진 날에는 그곳에서 마음뿐 아니라 배도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종종 들리던 동네서점에서 글쓰기 모임을 모집하는 피드를 인스타에서 보게 되었다. 마침 시간이 맞아떨어졌던 나는 마치 나를 위해 온 우주가 힘써준 듯한 느낌을 받았고,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기를 원하는 만큼이나 글을 많이 쓰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글을 쓸 계기를 스스로에게 제공하지 않아서 그렇지, 기회만 닿는다면 나는 얼마든지 자유롭고 새로운 글을 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부의 새로운 자극이 주어진다면, 적절한 교육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나는 내가 읽어 본 내 글들의 그 비슷비슷함을 벗어난 참신한 글들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착각이었음을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지긋지긋해했던 내 글들을 벗어나지도 못했고, 그리고 그런 지긋지긋함이 묻어나는 상투적인 표현을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글이 안 되는 글만 쓰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그리고 그 후 몇 번 더 꾸준히 글을 쓰려는 시도를 거듭했지만, 한 두 번의 도전으로 끝나고 마는 결말을 반복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쓰기 수업을 통해 나는 스스로에 대해 놀라운 점을 몇 개 발견했는데, 그건 내가 글쓰기를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원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매우 오래된 마음이라는 것,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등이었다. 글 쓰는 스킬을 배우고 싶어서, 혼자서는 생각해 낼 수 없는 신선한 주제들을 만나고 싶어서 신청했던 수업에서 나는 내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는지 질문자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언제부터 글을 쓸 마음을 먹었는지 이야기하게 되었고, 글을 쓰기 위해 시도했던 몇 번의 경험을 모임에서 이야기했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설을 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기사나 칼럼 같은 걸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그리고 고등학생일 적엔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 꽂혀 버렸고, 나는 그런 사람은 예술가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여러 해가 흘러 좌절감과 우울함에 고통받던 어느 날,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가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만났고, 그 책에서 시키는 대로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그 시기를 이겨냈다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벌써 몇 해 전 이야기이므로 정말로 위의 모든 걸 이야기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 그때 나는 그와 비슷한 걸 이야기하거나 떠올렸다. 그리고 글쓰기 모임과는 별도로 나의 편지친구들에게 함께 <아티스트 웨이>의 미션들을 실천해 보자고 제안했다. 물론 그 시도도 흐지부지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고, 나는 다시 모닝페이지를 쓴다. 충실하게 책에 나온 미션을 다 클리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 책을 다시 펴보지도 않았지만 새해에 책상정리를 하다가 모닝페이지를 잘 써보기 위해 사놓았던 노트를 발견했고, 즉흥적으로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날 이후로 정말로 다시 쓰고 있다. 매일매일 쓰는 걸 목표로 하지만, 이미 빼먹은 날들도 많고, 심지어 오전에 쓰지 않은 적도 있다. 문제 많은 도전이지만 그래도 기왕 시작한 거 노트 한 권 끝날 때까지는 거창한 목표 없이 그저 써보겠노라고 마음먹고 실천 중이다.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20일을 썼으니 썩 나쁜 결과는 아니다. 언젠가는 한 달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쓰는 때도 오겠지라는 태도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쓰는 것이 현재의 마음가짐이자 다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바란다면 이런 소소한 것들이 조금씩 쌓여 내 삶을 하나의 길로 이끌겠지.. 라는 그 정도.
독서모임에 참여하던 최근의 어느 날. 소소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날. 나는 아침에 아이가 깨기 전에 일어나 물 한잔하고 글을 쓰는 그 시간이 좋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 분이 글을 쓰시는 분이라고 대단한 듯이 치켜세워주셨다. 나는 좀 부끄러워져서 일기 같은 글이라고 했다. '나의 모닝페이지'에는 싫은 사람 욕이 적힐 때도 있고, 지난날의 반성이 적힐 때도 있으며, 그날 해야 할 일정들이 체크리스트처럼 적힐 때도 있다. 정 적을게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책상 위의 물건들을 묘사하거나 그때 그때 떠오르는 망상들을 암호처럼 풀어 늘어놓기도 한다. 시간이 촉박할 때는 써야 할 양의 반도 쓰지 못한 채 끝맺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쓴다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고나 할까.
조금 더 내 마음을 들춰보니 욕심이 없지는 않다. 나는 '그저 쓰는' 이 삶이 끝까지 지속되기를 원한다. 아침에 일어나 느끼는 내 자유의 시간 30분. 내가 내맘대로 무엇이든 생각하고 욕하고 칭찬하고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시간. 적다보니 문득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나는 계속해서 모닝페이지 적기를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