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지와 게이지 May 07. 2024

서른여덟 또는 마흔, 쓰기와 뜨기.

옷을 뜨는 마음.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뜨개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옷을 만들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뜨개 하는 시간 중 대부분을 옷을 만드는데 쓰고 있다. 항상 옷은 사 입는 거라고 나는 절대 만들어 입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절대 안 하는 건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냥 나는 대바늘을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코바늘을 먼저 배우고, 대바늘을 배운 지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된 후 처음 바늘을 잡은 건 대바늘이었다. 패브릭얀이라는 것이 유행하던 한 때, 친목계를 함께 하는 친구가 헤링본바네가방을 만들고 싶어 하던 것이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패브릭얀을 사고 대바늘을 사고 유튜브를 보면서 헤링본무늬를 뜨고 바네를 꽂았다. 아직 아이가 없을 때여서 시간이 여유롭기도 했고, 손목이 튼튼하기도 했다. 그리고 뜨개와 가방은 둘 다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단어들이었으므로 내 거 하나 어머니 거 하나 그렇게 2개를 만들었다. 완성하고 신나서 한동안 카톡 프로필사진에 걸려있기도 했던 그 가방 덕분에 뜨개자신감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대바늘 푸프가 예뻐 보여서 뜨는 법을 한참 뒤져 미니푸프를 셀프로 만들기도 했고, 그 당시 출간되던 핸드메이드 잡지를 구독하기도 했으며, 그 잡지의 이벤트에 응모해서 당첨된 대바늘키트로 또 하나의 가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임신을 생각 중이기도 했던 터라, 아이옷을 만들기 전에 한번 연습해 볼까 하며 인형옷 뜨는 함뜨에 참여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함뜨가 문제였을까. 그전에는 영상을 보고 뜨거나 그렇지 않으면 글도안을 보고 떴다. 쉬웠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아예 못 뜰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함뜨에서 제공된 도안은 대바늘 기호도안이었고, 그 당시 기호도안을 아예 볼 줄 모르던 나는 홀수단과 짝수단을 읽는 방향이 다른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므로 완전히 잘못된 작품을 생성해 냈다. 그러곤 좌절.


 그렇다고 아예 단념할 순 없었다. 집에서 드라마 볼 때 살살 만들 생각으로 사놓은 수세미실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티브이를 보며 수세미를 하나씩 만들곤 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뜨개를 시작하며 어머니에게 물어 코바늘을 배우게 되었고, 매직링과 한길긴뜨기를 할 수 있게 된 후에 코바늘 도안 정도는 얼마든지 혼자 보고 해석할 수 있었으므로 열심히 수세미를 만들곤 했었다.  수세미함뜨에도 많이 참여했고 공동구매로 실도 많이 사 모았다. 그렇게 수세미함뜨에 참여하는 나날을 보내곤 했는데, 그러던 중 함뜨를 주최하곤 했던 블로거가 대바늘에 빠져들었고, 대바늘 배색차트를 나눔 하는데, 너무 예뻤던 거다. 좌절의 순간을 잊고 집에 넘쳐나는 수세미실과 실 사며 사은품으로 받은 대바늘로 배색 뜨기를 하는데, 손바닥만 한 편물 하나 만드는데 무려 3시간이 걸렸다. 세 시간이라니!! 세 시간!! 수세미처럼 작은 것만 만들던 시절의 나는 용납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손바닥만 한 거 2개 만드는데 6시간!! 나는 다시는 대바늘을 손에 들지 않겠다고 그 시점을 기준으로 마음먹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예쁜 대바늘 작품들은 넘쳐났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익숙하지 않아 손이 느린 탓이라며 컨티넨탈을 연습하겠다고 겉 뜨기만 있는 대바늘 블랭킷키트를 샀다. 겉 뜨기만 하는 게 정말 즐거웠고, 속도가 붙는 것도 즐거웠지만, 고르게 뜨기란 너무 힘들었다. 콧수가 작을 때는 훅훅 커지는 것 같던 편물도 어느 정도 크기에 이르자 하루 한단 뜨는 것도 벅찼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시간을 거치며 그 블랭킷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처박혀 버렸다.


 시간은 흘렀고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정도로 커버렸다. 유치원 등원버스를 태울 때마다 만나는 엄마 중 한 명이 뜨개공방에 다니는 걸 알게 되었고, 나를 뜨개의 길로 인도했던 그 친구를 꼬드겨 같이 공방을 다니게 되었다.


  공방에 전화할 때만 해도, 보그라는 체계적인 배움을 택할 때만 해도, 대바늘 기호도안을 읽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들고 싶은 걸 발견했을 때 도안을 보고 만들 수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다니게 되었고, 그 사이에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코바늘보그도 배우게 되었다. 보그과정 중에 옷 만드는 게 필수로 포함되어 있었기에 만들었을 뿐인데, 어느새 스스로 도안을 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또 코바늘로도 옷을 만드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아무래도 공방 다니기 직전에 옷 만드는 키트를 하나 샀던 걸 보면 그즈음엔 뜨개옷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이 핸드메이드의 특성인지 뜨개의 특성인지는 몰라도, 못났다 못났다 하며 만든 옷은 입어보면 생각보다 그럴싸하고, 예쁘다 예쁘다 하며 기대하며 만든 옷은 입을 수 없어 화가 절로 난다. 옷 만드는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과 나의 정성을 생각하면 정말 풀고 싶지 않은데, 입었을 때의 꼬락서니와 입지도 못할 옷에 소모된 불쌍한 실들을 생각하면 풀어서 얼른 다른 것으로 재탄생시켜주고 싶기도 하다. 이 번에 만드는 옷은 코바늘모티브가 주된 바탕이되 마무리는 대바늘로 하는 코바늘대바늘 조끼다. 가지고 있는 실 중에서 편하면서도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색들로 조합하느라 많은 공을 들였다. 거기다 지겨운 모티브 뜨기를 끝내고 열심히 이었을 때만 해도 어찌나 예쁜지 얼른 완성해서 입고 싶은 생각에 바라보기만 해도 뿌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대바늘 마무리하며 그 마음이 짜게 식어버리는 거다. 밑단을 뜨고 입어봐도 그럭저럭 나빠보이기까지는 않았는데, 소매를 뜨고 입어보니 이건 정말 나빠 보인다.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던 시점에서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의욕을 상실하고 바늘을 놓아버리게 된다. 갑자기 공방도 가기 싫고, 바늘이란 것은 코바늘도 대바늘도 쳐다도 보기 싫어진다. 진짜 나는 왜 이런 걸 뜨기로 마음먹어서는..


 그렇지만 나는 안다. 이걸 입지 못할 옷이든, 어떻게든 손을 봐서 입을 수는 있는 옷으로 만들든, 나는 완성할 것이란 걸. 지금 내 책상에는 가로 3센티 세로 5센티 정도의 '미리걱정금지'라는 글자가 적힌 흰 종이가 놓여있다. 실패든 성공이든 어떻게든 귀결된다. 걱정은 실패 후에 하자. 아니, 실패하더라도 '걱정'이라는 선택지를 고를지는 알 수 없는 문제이니 그것도 그 때가서 생각하자. 처음 대바늘을 잡았을 때부터 수없이 번복해 온 나의 태도만 봐도 그렇다. 뜨던 옷이 실패할까 봐 적었던 글은 아니었는데, '미리걱정금지'가 이런 상황에도 통하는 걸 보니 진리는 어디에나 통하는 것인가 보다.


 일단 뜨자. 절대 안하겠다 마음먹은 것도 언젠가 하게 되는 걸 보니, 새삼 부정보다 긍정의 힘이 강함을 느낀다. 일단 하는 거다. 이 실들이 옷이 되든 넝마가 되든.. 아무튼 뜰 수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바늘을 잡는다.


 

작가의 이전글 서른여덟 또는 마흔, 쓰기와 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