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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28. 2023

인생책이 좀비물인 사람

독서 : <세계대전 Z>를 읽고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마 엄마의 의견이 아니었을까 싶다. 동네서점에 네 가족이 같이 가서 책을 한 권씩 골라서 샀다. 그리고 저녁마다 한 시간씩 같이 읽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많은 일이 그러하듯이 얼마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됐다. 그때 내가 골랐던 책이 <세계대전 Z>다. 벌써 십 년은 지난 기억이다. 그 순간을 종종 떠올리는데, 내가 계속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된 분기점이라고 느낀다.


 전에 한번 엄마에게 이 일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어제 한번 더 물어봤는데 그 일은커녕 그걸 과거에 물어봤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한데?) 나도 다른 이가 나와 있었던 사소하지만 인상적이었던 한 순간을 말했을 때, 기억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공통된 경험을 간직하고 추억하는 관계에서도 서로가 받는 순간의 인상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이제는 가족 중에서 나만 책을 읽는다. 자녀는 책을 읽는 부모를 보고 따라서 책을 읽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는데, 나는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독서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님 덕이다. 만화책을 본다고 꾸중하는 스타일의 어른이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때만 해도 동네에 많았던 만화책대여점에 데리고 가서 요금을 충전해 주셨다. 원하는 만화를 마음껏 고를 수 있었다. 또, 읽고 싶은 책을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두면, 별말 없이 사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세계대전 Z>는 좀비물이다. 나는 만화책과 장르소설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자기개발서, 인문사회철학, 과학교양서, 고전으로 점차 넓혀가며 계속 독서를 하게 됐다. 누구도 내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많은 책들을 처분하면서도 <세계대전 Z>는 처분하지 않았다. 이 책을 오랜만에 발견하고는 반가워서 책장을 넘겼다. 다시 읽어도 너무 재미있었다. 좀비를 소재로 한 현재 출판된 거의 모든 소설을 읽어봤는데 이만한 책이 없다.

역시 난 보는 눈이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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