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떄마다>를 읽고
독서를 시작할 때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이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작가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꺼린다. 독서모임을 들어가 보면 어떨까 생각은 여러 번 해봤지만 한 번도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래서 현실 관계에서는 독서 취향과 좋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친구가 없었다. 그럼 뭐 온라인상에는 책 이야기 할 친구가 있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익명일지라도 나는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겁내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동진 작가님의 추천을 통해 좋은 책을 접할 수 있었고, 책을 고르는 안목을 길러갔다.
고1 때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알게 됐다. 요즘 세대는 라디오 세대가 아니라서 장시간 오디오를 듣는 행위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팟캐스트를 한 번도 안 들어 봤을 뿐만 아니라, 팟캐스트가 뭐야?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듯하다. 굳이 팟캐스트의 정의를 인터넷에 찾아보지 않고 써보자면, 내가 느낀 팟캐스트란 생방송이 아닌 라디오, 녹음된 라디오를 내가 원할 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산책하면서 빨간 책방을 들었고 소개된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곤 했다.
계속해서 영화당, 파이아키아 등 유튜브 채널과, 왓챠피디아 계정을 통해서 이동진 평론가의 시선을 따라갔지만, 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2023년 12월, 유튜브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채널에서 23년 올해의 책 콘텐츠를 시작으로 2024년부터는 매달 이달의 책 콘텐츠를 통해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의 책 추천 콘텐츠는 큰 반응을 이끌어 냈다. 올해의 책 콘텐츠에 소개된 책들이 각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를 차지했고, 서점에는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한 책, 으로 별도로 구획된 매대도 있다. 나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편인데 이동진 작가의 추천도서는 계속 대출 중이고, 예약자도 많아서 빌려보기 어렵다. 이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라 아직도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면 그의 추천 도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의 영향력이 큰 것도 있겠지만, 도서출판산업 자체가 이토록 영세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이 현상을 비판적인 논조로 쓴 기사를 본 후였던 것 같다. 제목은 아마 이런 식, 문학평론가는 어디에? 영화평론가에 좌지우지되는 출판시장. 확실히 흥행은 전문성보다는 화제성, 스타성이랄까. 독서력, 이라는 말을 방금 생각해 냈는데, 만약 독서력이라는 게 측정가능 하고 수치화할 수 있다면(도대체 독서력이라는 표현을 무슨 의미로 쓴 거냐고 묻지 말길, 나도 모르니까) 이동진 평론가도 내공이 보통이 아닌데 말이야. 생각해보니 기분 나쁜 기사야.
베스트셀러 순위를 따라 책을 접하는 걸 싫어하는데, 잘 팔리는 책들 중에 물론 좋은 책도 있지만 속 빈 강정 같은 쓰레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음원차트, 넷플릭스 top10, 영화 박스오피스를 참고하듯 베스트셀러를 참고하는 건 물론 자연스럽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본인만의 취향과 안목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휘둘리기가 쉽다는 게 문제다.
그 목록이 이동진 평론가가 추천해 주는 양서들로 채워지는 건 정말,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도 이동진 작가의 추천 목록을 찾아볼 만큼 그의 안목을 신뢰하는데, 책을 처음 접하면서 베스트셀러 위주로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알게 되는 게 있을 테니까.
요즘 이동진 평론가 추천 목록의 책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완벽하게 좋지는 않지만, 절대 실패는 없는 선택. 이런 성공확률만 존재하는 뽑기가 세상에 또 있을까.
근래 읽은 책중에 가장 와닿은 책은 마거릿 렌클의 에세이,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나는 죽음, 상실 같은 것을 다루는 책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동식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구글에 이미지를 검색해 보면서 읽었는데 이 과정이 번거롭지 않고 너무 재미있었다. 동물, 식물, 공룡 그림책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언제부터 이것들에 관심을 끄고 살게 되는 걸까. 문장과 삽화가 아름답다, 관련 교육을 받았을 리가 만무한 나로서는 이런 아름다운 글을 볼 때, 혹은 뛰어난 영화나 음악, 미술등을 마주할 때 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은 이것이다. 이건, 예술이야! 그래 이 책은 예술이다. 표현력이 부족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다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인간의 언어로는 부족하다. (사실 언어 타령하기엔 그냥 내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다)
도서관에 예약 걸어둔 다른 추천 도서들을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