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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Mar 04. 2023

도반

창밖으로 푸른 나무들이 뒤로 달려간다. 멀리 구름은 여유롭게 떠 있다. 나는 자유를 만끽한다. 식사 시간은 내가 먹고 싶을 때이다. 내 옆자리도 나다. 나의 백백이 자리 잡고 있다. 아주 간단한 소품만 갖춘 채 부산으로 향하고 있다. 부산까지 가는 동안은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 것이다. 돌아올 때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부산에 도착해서는 함께 하고 싶은 벗이 있다. 

  그녀는 부산에 살고 있지는 않으나 부산에서 만나자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올 것이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마산에서 근무할 때 함께 했던 그녀, 5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동학년을 하면서 친해진 나에게는 단짝 친구. 내가 서울로 올라온 후 우리는 전화 통화를 자주 했다. 한 번 통화를 하면 우리는 할 말이 너무 많았다.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 이야기, 양쪽 집의 자라는 아이들 이야기, 너무 친절하시고 헌신하시던 그녀의 시어머님 이야기, 개인적인 사사로운 이야기들, 통화를 하다 보면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시간이 부족했다. 늘 그리운 분이었으니 나는 그녀가 더더욱 궁금했다. 최근에는 몇 년 전 창원에서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서기 위해 내려갔을 때 만나고 아직 만나지는 못했다. 요즘 전화 통화도 뜸해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 통화하면 우리는 끝없이 이야기하게 되는 친구다.

 

  집도 가까워 아이들과도 친했다. 그 당시 우리는 종교가 같아서 성지순례도 함께 하고 학교 근처에 있는 J 사 절에도 함께 다녔다. 그리고 J 사의 본사는 해인사인데, 그녀는 해인사 백련암을 먼저 다니면서 가끔 1박 2일 3,000배를 하고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주말을 이용해서 3,000배 기도회가 열린다고 한다. 어느 날, 그곳을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나도 3,000배 기도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욕이 무엇엔가 이끌리듯 생겼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고 그 기도를 하고 나면 개운해지는 어떤 기운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절을 좀 하다가 가야지 그냥 가면 힘들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궁금증이 막 생기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고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의욕이 앞선 것이다. 

“한번 해 볼게요.”

약속하고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는 즉시, 우리는 버스를 갈아타고 택시를 타고 또 다른 일행 두 명과 함께 백련암에 도착했다. 백련암은 조그만 암자가 아니었다. 제법 큰 절이었고 벌써 많은 사람이 넓은 법당을 가득 채워서 108 참회 기도문에 맞추어 한 목소리를 내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넓은 법당 외에 작은 법당들도 여기저기 있는데 곳곳에서 기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익숙한 그녀를 따라 옷을 갈아입을 방으로 가서 법복으로 갈아입고 법당으로 향했다. 어색한 내 모습이 보이지만 ‘3,000배 기도를 하고 가리라.’ 마음먹고 왔으니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있는 그림 속에 나도 스며들고 싶었다. 그녀도 나를 최대한 편안하게 해 주려고 하는 듯 하나하나 세세히 알려주었다. 오랫동안 절을 하다 보면 몸이 아주 힘들 텐데 힘이 덜 들게 할 수 있도록 방석을 찾아 깔고 앉는 방법, 여러 사람이 쓰는 방석이니 그 위에 큰 수건을 깔고 사용하는 방법 등. 나도 눈치껏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자리 잡고 스며들었다. 젊은 사람부터 노년의 할머니까지, 간간이 남자들도 있었다. 처음엔 아주 쉬웠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도 하는데 나는 당연히 쉽게 하리라 생각되었다. ‘그 까이끼’ 자신 있게 해 낼 것 같았다. 108배를 다섯 번쯤하고 나니 다리가 후들후들하고 힘들었다. 잠시 쉬고 다시 시작했다. 열 번을 하고 나니 ‘3분의 1을 했으니 나머지는 어떻게 하든 해야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억지로 쉬어가면서 20번을 했다. 처음 3,000배를 하고 나면 큰스님 친견을 하고 법명도 받게 되고 명상을 위한 화두도 준다고 한다. 아주 깊은 밤이 되었다. 새벽이 되는 듯했다. 이제 10번만 하면 되니 멈출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남은 108배 10번을 마무리 지었다.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걷기조차 힘들었다. 밤새 절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무 대견했다. 무엇인가 큰일을 한 것처럼 뿌듯하기 조차했다. 108배 30회를 마쳤다고 큰 스님이 계시는 곳으로 박 선생님이 안내해 주었다. 문 앞에는 나처럼 처음 3,000배를 마무리한 사람들이 줄지어 준비하고 있었다. 차례대로 질문을 하더니 혹시, 빠뜨리거나 부실하게 한 절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자리에서 108배 2번을 더 하라고 한다. 여기까지 했으니 안 할 수도 없었다. 정말 마무리를 하고 ‘요명인’이라는 법명과 화두를 받았다. 감개무량한 하루였다. 잠시 누워서 쉰 후 새벽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걷을 수가 없었다. 함께 간 분들이 양쪽에서 부축해 주었다.

 

  그 후, 우리는 함께 퇴근하면서 학교 가까이 있는 J 사에서 108배를 3~5회 꾸준히 하며 3,000배를 하러 다녔다. 우리는 힘든 3,000배를 함께 한 '도반'이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항상 그리운 사람이고, 설렘이 있는 분이다. 참! 우리 큰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기도 했다.

   “K야, 잘 있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내가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 달려올 수 있다고 믿어지는 그녀가 있어서 좋다. 부산에서 만나 해운대 백사장을 걸으며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이가 드니, 최근에 건강관리에 관심이 커지고 있고 맨발 걷기 ‘어씽’에 대한 좋은 점을 많이 듣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줄 요량이다.

  "박 선생님, 우리가 이젠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108배 대신 ‘어씽 도반'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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