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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Oct 10. 2023

조상님 해외여행

여기는 호주 골드코스트, 큰아들 가족과 해외여행을 하면서, 추석 차례도 해외에서 지내기로 했다. 명절 차례는 시부모님이 계셨던 그 시절에 비하면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종손 며느리인 나에게는 늘 부담이 된다. 종갓집이라 명절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올해는 남들이 말하는 ‘명절 해외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말하자면 조상님 해외여행이다.


  큰아들 내외가 해외 유학을 하는 동안, 작은아들내외와 함께 미국을 다녀오느라 딱 한 번, 차례 부담 없는 명절을 보낸 적이 있다. 대신 심적인 부담은 갖고 갔다고 할 수 있다. 직장 생활하고 있었던 때였으나, 추석 명절 전후로 재량 방학이 있어 열흘간의 여행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 기간 아니면 큰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곳을 가 볼 수 없으니, 추석을 기회로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녀왔다. 더구나 시골 계시는 시숙부모님께 차례를 대신 올려주시기를 부탁까지 한 후 허락받아 다녀올 수 있었으니 종가 며느리가 정말 큰맘 먹고 다녀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례 자체를 우리가 해외에서 지내기로 했으니, 별도로 부탁할 필요는 없다. 작년 추석 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면서, 나와 아들 며느리의 공수 작전(?)에 남편이 말려들었기 때문에 이번 명절 여행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아버님, 내년 추석은 긴 연휴가 이어져요. 우리도 명절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

큰며느리의 말에 내가 거들었다. 

 “내년엔 벌초 때 미리 인사 다녀오고, 차례는 조상님 해외여행도 시켜드리면서 지내는 것 어때요? 아버님, 어머님은 해외여행 한 번도 못 하셨는데….”

 큰아들이 또 덧붙였다. 

 “한 번 알아볼까요? 일찍 예약하면 비행기 삯도 싸요.”

 우리 가족은 ‘값이 싸다’고 하는 말에 잘 녹는 남편의 약점을 잘 안다. 

  “일단 예약은 해 두는 게 좋겠죠?”

 작은아들 내외도 합세하였고, 내년은 긴 연휴라 하루라도 빨리 예약해야 좋은 가격에 할 수 있다는 말까지 하니, 남편의 표정도 부정적이지는 않다. 그 기회를 포착해서 갑자기 장소를 여기저기 알아보게 되었고, 호주로 장소가 결정되었다. 


  20여 년 전, 남편의 회사에서 보내 준, 장기근속 기념 여행으로 호주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여행에서의 골드코스트 바닷가 특별한 해변이 떠올랐다. 너무 깨끗해 보이기도 하고, 여태 어디서도 보지 못한 부드러운 흙 같은 모래가 끝없이 이어져 있어 너무 신기했었다. 몰래 양말에 넣어 가져온 모래 한 줌은 아직도 갖고 있다. 내심 나도 골드코스트를 떠올리고 있었다. 


  남편도 엉거주춤, 날짜를 의논하는 아들 며느리 의견에 합세하는 모양새가 되어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해 두었다. 그 사이 작은아들 내외는 둘째를 갖고 출산하게 되어 함께 가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호주 여행에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을 받았으니 아쉬움은 뒤로 하기로 했다. 이번 추석은 멀리 해외에서 지내니 둘째네도 너무 조용한 추석을 보내게 되었을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남편은 지방과 간단히 갖고 갈 수 있는 제기를 챙겼다. 그냥 접시를 사용하면 된다고 했지만, 제기라도 갖고 가야 마음이 편한가 보다. 북어포도 하나 갖고 가야 한다고 하니 서둘러 다시 마트에 가서 준비해 왔다. 차례를 해외에서 지낼 수 있게 마음을 열어 둔 남편의 뜻이니 따르기로 했다.  

  ‘병풍을 가져가자고 하지 않은 것에 고마워해야 하나?’ 


  문제는 시드니 공항에 내릴 즈음에 생겼다. 방송으로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호주는 환경보호를 위해 해외 반입 농수산물에 관해 엄격한 규제를 하나, 사전 신고를 하는 경우 반입 제한만 하고 벌금이나 엄격한 통제는 완화될 수 있다고 한다. 북어포를 가져온 것이 걱정되어,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그건 괜찮을 거야.” 한다. 반복해서 안내방송이 나오자, 갑자기 사전 신고를 하는 게 낫겠다며 내리기 직전, 검역신고서에 농수산물이 있다는 체크를 했다. 남편도 간이 작다. 

  공항에 내려 출국 심사를 하면서 농수산물 있다고 체크 한 남편은 북어포가 든 캐리어를 끌고 별도의 장소로 이동하고,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신고 출국장으로 나가기로 했다. 


  남편과 헤어지기 전, 아들에게 “모두 아빠랑 같이 가는 게 어떻겠니?” 하니 모든 가방을 다 뒤질 거라면서 아빠가 알아서 하실 테니 그냥 나가자고 한다. 현명하지만 ‘매정한 놈’이다. 다행히 영어 잘하는 며느리가 “제가 아버님과 함께 갈게요.” 한다. 안심이다. 

  공항 로비에 나와서 한참 동안 기다린 끝에 웃는 모습으로 나오는 남편과 며느리를 만날 수 있었다. 북어포는 건어물이라 괜찮아서, 캐리어를 열지도 않고 통과했다고 한다. 성격 좋고 영어 잘하는 며느리 덕분이리다.      

 시드니 여행을 마치고, 골드코스트의 마지막 날 아침, 추석날이 되었다. 전날 준비한 간단한 과일과 고기는 접시에 담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울에서 공수해 온 북어포는 제기에 올려놓았다. 멀리서 날아온 제기 잔으로 술 대신 차를 올리며 마음을 모아 차례를 지냈다. 


   ‘아버님, 어머님, 살아계실 때 해외여행 못 해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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