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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Dec 19. 2023

노랑머리 갈색머리

노랑과 갈색으로 굵은 새끼줄처럼 땋은 머리가 나풀나풀 춤추며 가고 있다. 그 위에 송이버섯모양으로 얹어 놓은 듯한 검정머리색이 두드러져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머리 모양이다. 나는 남편의 코로나 예방접종에 동행하다 만난 눈에 확 띄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눈길이 쫓아가고 있다. 이른 아침 시간, 초·중학생쯤 보이는 아이이니 학교에 가나보다 하면서도 학교에 가는 모양새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교는 안 다니는 건가? 하긴, 요즘은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가 종종 있기는 하지’하는 생각이 든다. 학년 초가 되면 입학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서 매년 학교에서는 「의무교육관리위원회」를 열게 된다. 그 아이들은 대안학교를 가기도 하고 홈스쿨링을 한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는대 철저히 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는 것이다. 그에 해당되는 아이일 수도 있긴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편은 그 아이를 보더니 

  “에이…, 쯧쯧, 머리 꼴이라니….”

  “요즘은 자기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대로 하는 것이죠 뭐. 뭐라 말할 건 아니어요. 특이한 머리 스타일 많고 많은데 무슨….”

 혹시라도 남편이 하는 소리 듣고 서로 안 좋은 모양새가 될까 봐 걱정되어 얼른 다른 방향으로 남편을 끌고 갔다.

      

  30여 호 년 전 6학년을 담임하던 때, 우리 반 여학생 한 명과 기싸움(?)을 하듯 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 당시는 두발검사, 손톱검사 등도 수시로 했다. 당연히, 초등학교 학생이 머리 염색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시절이다. 염색을 하고 학교에 오는 아이는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오는 그 아이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노란색에 가까운 갈색머리로 교실에 들어오고 있었다.


  “머리가 그게 뭐냐? 엄마가 그렇게 해서 학교에 가는데도 아무 말 안 하냐?”

  “아무 말 안 했어요.”

  “국민학생이 머리에 염색하고 다니면 되겠냐?”

  “…….”

  “엄마도 그렇구나, 아무 말씀도 없다니…. 내일 당장 원래 머리로 해 갖고 오도록 해.”

  어찌 딸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여서 학교에 가는데, 엄마가 아무런 말이 없을 수가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또 그 아이는 평소에도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하지 않는 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날 오후 일기장을 검사하면서 본 그 아이의 일기장에는 머리염색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쓰여 있었다. 누군가에게서 맥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색이 갈색에 가깝게 이쁘게 나온다는 이야기들 듣고 언니와 맥주로 머리를 감으면서 재미있게 놀았던 내용이다. 나는 일기장 하단에 몇 글자 써 주었다.     

  ‘염색은 하지 않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민학생에 맞는 두발에 대한 생각만 하고, 6학년 사춘기 여학생 아이의 마음을 살피지는 못했다. 그 후, 그 아이와 나는 사이가 좋지 않아 졌다. 머리 염색은 한동안 그대로 하고 왔다. 그리고 일기도 아주 단순한 내용의 일기만 써 왔다. 선생님께 핀잔받을 것 같은 내용은 빼고 쓰느라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와 함께 맥주로 머리를 감으며 즐거워했고 변색되는 모습에 신기했을 수도 있다. 저녁에 엄마께 혼났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엄마와 함께 자유분방하게 즐거워했을 수도 있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께 핀잔주는 말을 하는 담임이었으니 그 아이에게는 좋아할 수 있는 선생님은 아니었을 것이다.  


  “00아. 머리 색깔 예쁜데? 그런데 너무 눈에 띈다….”

  ‘염색하지 않아도 이쁩니다.’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써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은 일기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있어, 학교에서도 일기장 검사를 하지 않는다. 그 당시 나는 방과 후가 되면 거의 매일 일기장 검사를 했다. 일기를 써 온 모든 아이에게 일기장 하단에 나의 코멘트를 작성해 주었다. 일기장을 보면 아이들의 마음도 알 수 있고 가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것은 생활지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일이 살펴보고 좋은 말도 써 주고 글 내용 수정도 해 주는 것에 대해 아이들도 학부모도 좋은 반응을 해 주었다. 그리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바르게 표시해 줄 수 있어서 학력 향상에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지혜를 짜내어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줄 말을 찾아 써 주려고 열정을 다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진실로 자기 마음을 쓰는 순박한 아이도 있었겠지만 선생님께 보여주기 위한 일기를 써 온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아이로 인해 나는 아이들의 일기장 댓글에는 좋은 말만 써 주게 되었다. 나에게 깨달음을 준 친구이기도 하다.        

  경력이 쌓이고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힘들어하는 관계가 되는 것을 보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때의 내 그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어려움이 있는 아이여서도 그럴 수 있겠지만, 선생님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생겨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쯤, 해외 선진 교육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교육현장 브리핑이 끝나고 우리는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가지 질문과 답이 있었지만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의 과한 행동 등으로 힘들어하는 교사들을 많이 보았기에 문제학생들에 대한 상담체계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였다. 학급당 학생 수는 십여 명 정도로 우리 교육현실과 차이가 많은 곳이었지만 그곳 교장선생님의 답변은 두고두고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 세상에 문제 어른은 있어도 문제 아동은 없다고 합니다. 상담을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심각한 문제 아동이 있다면 치료를 요하는 아이입니다. 병원과 연계해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학교에 상담사가 배치되고 있고, 힘든 아이는 학부모 동의가 있는 경우 병원과 연계하여 도움을 주기도 한다. 머리 염색 때문에 한 아이의 마음을 힘들게 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고백하건대 정말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나’이지 않았을까? 변명을 하자면, 교실의 학생 수가 적었으면 그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할 시간도 더 많아 아이와 관계회복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도 된다.

  그때 그 친구도 지금은 어였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만한 아들, 딸이 있을 수도 있다. 다시 만나면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잘 자라주어 고마워, 그땐 미안해.”


나도 성장해 가는 교사였다.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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