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애애~~ 앵~~~~~!!”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입주민 여러분께서는 비상구를 통해서 대피하시기를 바랍니다.”
화재경보 사이렌이 크게 울리면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AI 방송 멘트가 반복해서 나왔다. 저녁 7시가 좀 넘는 시간에 남편과 손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겁이 많은 다섯 살 손녀는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튀어 오르듯 나에게로 매달렸다.
허겁지겁 손녀를 안고 현관문을 열어보니 화재경보기는 번쩍거리고 있고, 사이렌 소리는 가까이서 더 크게 들린다. 긴박한 상황이 되자 화재가 난 집에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진 뉴스들이 떠오르며 너무 긴장되고 무서웠다. 연기나 불타는 냄새는 없었지만 계속 반복해서 사이렌 소리와 화재 발생 방송 멘트가 나오니 마음이 다급해진다. 이럴 땐 옥상으로 대피하라고 아이들에게 교육하기도 하고 교육받기도 했지만 위로 올라가면 옥상 문이 열려 있을지 알 수 없다. 문 앞에 사람들이 몰려서 참사당한 화재 현장 이야기까지 떠오른다.
남편은 손녀를 받아 안더니 내려가는 게 낫겠다고 한다. 우리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사람들은 두 사람만 나와서 보더니 “뭐지? 뭐지?”하고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또 오작동이라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는 조용하다. 지난번에도 대낮에 혼자 있을 때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린 적이 있다. 혼자 우왕좌왕하다가 복도로 나갔더니, 잠시 후에 경비 아저씨가 와서 오작동이라고 했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관리실로 전화했으나 받지도 않았다.
‘관리실에서도 긴급 상황으로 정신없이 바쁜 건가? 어디서 진짜 화재가 난 건가? 15층 아파트의 14층인데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지? 옥상으로 가야 하나?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은 열려 있을까? 엘리베이터는 타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계단으로 걸어서 아래로 내려가야 하나?’
손녀는 놀라고 있고 실제상황처럼 느껴지니, 허둥대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는 동안 퇴근해 온 작은 아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놀란 손녀는 얼른 제 아빠 품으로 가서 푹 파묻힌다. 계속 전화를 하자 한참 만에야 전화를 받은 관리실에서는 아마 오작동인 것 같다고 한다.
“오작동인 것 같다고요?”
너무 화가 나서 오작동이면 방송을 다시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잠시 있으니 오작동이니 안심하라는 방송을 해 준다. 화재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면서도 화가 난다. 벌써 두 번째다. 나중엔 사람들이 실제상황일 때도 오작동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어쩌려고 하나 싶은 마음에 부아가 치밀어 왔다.
세월호 사고가 있던 해 나는 안산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교직원을 비롯한 학부모, 아이들 그 어떤 사람도 그날의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식당에서 웃으며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적막한 도시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했음을 몸으로 마음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우리는 교직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안전에 관해 수시로 점검하고 지나치리만큼 강조하자고 다짐했다. 연간교육계획에 의해 추진하는 것이지만 대피 훈련계획도 더 철저히 세웠고 횟수도 늘어났다. 자체 점검도 더 까다로워졌다.
일상의 평화로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전에 관한 한 얼마나 철저히 해야 하는지 체득하면서 안전 교육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강조하고 강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갑자기 화재경보가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혼자 여기저기 다녀보다 시설담당자에게 갔다. 태연한 표정으로 오작동일 것이라는 것이다. 반복된 오작동 사이렌으로 ‘이번에도 오작동일 것이다.’ 하며 무감각해 왔던 것 같다. 그들 생각대로 오작동이었다.
그러나 ‘이게 실제 상황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자 끔찍했다. 긴급 안전 관련 해당자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를 소집하게 되자,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무조건 오작동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는 의견으로 마음들이 모였고. 혹시, ‘오작동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그때를 오히려 안전 훈련 한 번 더 하는 기회로 여기고 무조건 학생들 대피부터 하기로 했다.
그 후 한 학기 동안 두 번 오작동에 의한 전교생 화재 발생 대피가 이루어졌다. 화재 발생 사이렌이 울리면 무조건 교사들은 아이들을 인솔해서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나가야 했다. 오작동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어도 실제상황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화재가 진압되었다거나 오작동이라는 방송을 듣고서야 교실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로 계획에 없던 화재경보가 울리던 날, 아니 오작동에 의한 화재경보가 울리고 학생들이 대피하는 상황이 있었던 때였다. 성가시긴 했으나 대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대피하였고, 상황은 일찍 종료되었다.
그다음 날 교장실로 한 학부모가 항의 전화를 했다. 학부모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어제, 화재경보가 울려서 다른 반은 모두 운동장으로 대피하는데 자기 자녀의 반은 교실에 그대로 있었다고 들었다며 아이가 한 말을 전해 주었다.
“엄마, 우리 반만 세월호 배 안에 그대로 있는 것 같았어요. 세월호에서 그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방송했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자기 아이 반만 그런 게 아니라 또 다른 반도 있으니 알아보라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 알아보겠습니다. 놀란 아이를 잘 다독여 주세요.”
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그냥 기다리자는 말에 세월호의 배 안에서 대기하라는 말을 따르며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들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작동이겠거니? 사람의 삶에 있어서 오작동은 없다. 오작동도 작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