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중학교 친구 중 유일하게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다. 세 친구가 있었으나 몇 년 전 한 명은 유명을 달리했다. 술 때문에 아내와도 헤어지고 혼자 지내다 그리되었다 한다.
남편이 그 친구의 마지막 길에 다녀와서, 한동안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이제 단 한 명 남은 이 친구는 더 애틋한 친구가 되었다. 부부동반해서 만나는 날도 잦다. 자동차 정비공장을 하고 있으니, 차 수리 할 일이 있으면 믿고 자주 가기도 한다. 언제나 진심으로 자기 차처럼 고쳐준다. 그의 아내와도 친해져서 가끔 둘레길이나 높지 않은 산행을 함께 하기도 한다. 여자들끼리도 가까운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 친구는 만나면 손이 많이 거칠다며 손을 내기를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그 손을 보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보기에 그 손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더 존경스럽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지의 발 모습을 보며 망가진 그 발이 더 아름답게 보이듯이.
부부는 닮는다고 했나? 부부의 마음이 한결같다. 열심히 일하더니, 그들 말로 조그만 건물을 샀다고 한다. 서울 시내 번화가에서, 3층 건물 건물주니 조그만 건물이라 할 수 없다. 큰 건물이고 출세했다고 봐야 한다. 애들이 어릴 땐 애들과 함께 종종 만나기도 했고, 친구의 아들과 우리 큰애는 동갑이라 더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오늘은 우리 부부만을 위한 집들이이다. 남편이 지하철 5호선 한 번만 타면 되니 지하철을 타고 가자고 한다. 다소 불편하지만 선물꾸러미를 들고 친구의 집으로 갔다. 친구의 집은 건물 3층에 위치했다. 1층은 자동차 정비사업장이고, 2층은 세를 주고, 3층에 본가가 있는 것이다. 깔끔하고 정갈함이 그대로 보이는 집이다. 건물주에 대한 부러움도 있고 남편 친구가 편안해 보이니 좋기도 하다.
친구의 와이프는 솜씨가 좋아 직접 요리를 해서 집들이를 했다. 등산을 함께 할 때도 늘 나는 간단한 것을 사서 쉽게 준비해 가지만 친구는 요리를 해서 도시락에 담아 오는 것이 생각났다. 친구가 맛있는 술을 꺼내와 함께 술 한 잔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왔으니 마음 편하게 술 한 잔을 할 수 있다. 나는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하고 있었지만 술을 잘 못한다. 아니, 잘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술 한 잔이 몸에 들어가면 얼굴이 풍선처럼 부푸는 느낌에 온몸의 실핏줄이 확장되는 느낌이어서 술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회식을 할 때면 늘 다른 사람들의 기사 노릇을 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지하철로 오기도 했고 친구가 너무 권하니, 한 잔을 받아 맛을 보았다. 중국술인데 신기하게도 달콤하고 맛있다. 술 취할 까봐 겁이 나기도 해서 조금씩 조금씩 안주삼아 다른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조심해서 먹었다. 결국 한 잔을 다 먹었다. 기분이 좋다. 취한 것 같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다.
‘아. 나도 술 한 잔 정도는 해도 되는 사람이구나!!’
지하철을 다시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 좋게 왔다. 5호선을 한 번에 오는 것이니 더 즐겁고 편안하게 올 수 있다. 오목교역에서 1분 거리 바로, 우리 집이다. 오목교 역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왔다. 그런데 지하철을 막 내려서 개찰구를 통과하자마자 팔다리에 힘이 빠지며 바닥에 팍 주저앉아버리게 되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집인데 갈 수가 없다. 남편이 옆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부축을 하였으나 소용이 없다. 축 쳐져버린 몸은 가눌 수가 없고, 양손으로 부축하려다 도저히 안 되니 뒤쪽에 서서 내가 쓰러지지 않게 내 등 뒤쪽에서 받쳐 주고 있다. 나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상하게 부끄럽지도 않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봐도 아무렇지가 않다.
‘아, 저 사람들이 나를 보는구나.’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더구나 남편이 등 뒤에서 받쳐주고 있으니 걱정도 없다. 참으로 희한하다. 한동안 그렇게 나는 앉아 있고 남편은 뒤쪽에 서 있었다. 추위를 엄청 많이 타는 내가 바닥이 찬 것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나는 오히려 드러눕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 몸이 자꾸 뒤로 가자 남편이 나를 더 바짝 세우며 눕지 못하게 받쳐주었다. 남편은 나를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남편이 조심조심 나를 부축하니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옆에서 부축하며 집까지 가는 동안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창피함도 모르겠고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기분이 좋을 뿐이다. 남편이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툭하면 화를 잘 내는 남편이 화도 내지 않고 묵묵히 나를 부축하며 데리고 갔다. 내 몸은 말짱하지 않았지만, 정신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고 말짱했다. 사람들의 표정, 남편의 모습이 다 기억이 난다. 나는 술 취해 널브러진 모습이고, 남편은 사람들의 묘한 시선을 받았을 수도 있다. 난감한 그런 상황에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며칠 후 길을 가면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전 같았으면
‘이런, 술을 먹으면 적당히 먹어야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먹다니…. 쯧쯧’
‘어떻게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먹어대는 건지!’
라고 하며 제대로 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휴…. 기분 좋겠네. 그럴 수도 있지요 뭐…. 너무 취하지나 마세요. 건강 생각하고, 술 취한 사람 해코지 하는 사람에게 안 당할 정도로만 드세요.’
나는 내 마음속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다른 마음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동병상련, 같은 경험을 함께 해 봐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