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1
유럽여행은 아직 한 번도 하지 못했는데, 승진을 위한 교육으로 여행으로 5박 6일의 북유럽 핀란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사전교육을 받기 위해 청주까지 내려가서 모였다. 대상자들의 나이는 대부분 50대 중반으로 전국에서 모였다. 혹시 누구 한 명이라도 여권을 안 갖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으니 갖고 온 여권은 미리 제출하라고 한다. 제출한 우리의 여권은 여행사 담당자가 받은 즉시 뒤쪽에 있는 바구니로 그대로 내던져졌다. 신신당부하며 주의사항을 교육했다. 시간을 지켜야 하고 만나는 장소는 어디이고, 그곳의 기후에 따른 옷차림이며, 화장실 사용, 호텔사용에 관한 세세한 내용들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이번 여행은 별무리 없이 한 사람의 낙오 없이 잘 다녀올 것으로 생각되었다.
당일 아침 이른 시간에 공항버스를 타고 약속시간 보다 이르게 도착했다. 나이 든 사람들인지라 모두들 시간 맞추어 왔다. 비행기 시간이 차츰 다가오는데 우리가 맡겨 둔 여권을 우리에게 주려는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단체일지라도 여권은 각자 가지고 들어가야 출국수속을 받을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아무래도 수상했다. 우리를 모두 한층 위 식당가로 몰고 가서 찻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차를 한잔 주문받고 나서 여기서 좀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심각한 그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청주 여행사에서 여권박스를 담당자가 안 갖고 왔습니다. 헬싱키 직항은 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최대한 빠르게 모두 갈 수 있도록 비행기를 수소문하고 있고, 도착하는 즉시, 여행도 코스별로 빠짐없이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를 꼭 믿어주십시오.”
연신 죄송하다고 하면서 연수일정에 차질 없도록 하겠다고 하니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항의를 해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을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여권 잊고 안 가져오는 사람 있을까 봐 대신 맡아서 책임지고 갖고 와야 할 사람이 몽땅 안 가져오다니!
이런 일도 있구나. 청주에서 인천공항까지 아무리 빨리 여권을 가지고 온다 해도 우리가 예약한 이른 아침 직항은 탈 수가 없고, 다른 비행기를 수소문 한다한들 40~50명이나 되는 사람들 비행기를 어떻게 준비한다는 것인지, 기가차고 코가 찰 노릇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을 하여간 출발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했을 것이다. 3파트로 나누어서 갈 수는 있게 예약을 다시 했다고 한다. 유럽에 있는 다른 나라를 거쳐서 핀란드 헬싱키로 간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은 13시간 타야 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공항에서 3시간을 대기 후 헬싱키로 또 3시간을 날아가야 한다고 한다. 각각의 팀별로 인솔자가 없으니 일행 중 임시 인솔자를 선발해서 가야 했다. 함께 출발하는 가이드 없이 불안한 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천에서 9시간 직항을 타고 갈 것을 4시간이나 뒤늦게 출발한 데다 독일을 거쳐서 가야 하니 족히 23시간 비행기 타고 간 것이나 진배없었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우리의 해외연수가 이렇게 황당한 상황이 되었다고 상급기관에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연수가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며 알리게 되었다. 좀 놀라긴 했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는 수습하느라 정신없을 테니 그냥 조용히 시끄럽지 않게 하면서 다녀오기를 바라는 투로 답을 주었다. 나 역시 그 방법 밖엔 대안이 없을 것으로 보여 가만히 있기로 했다.
독일에서 헬싱키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프랑크푸르트 공항 내에서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와중에 나는 독일 공항 면세점에서 세일을 많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작은 가방을 하나 골랐다. 다른 사람들도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황당한 상황에도 우리는 즐기며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은 참 신통하다. 아마 연수과정은 시간을 단축해서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수박 겉핥기로 원래 진행하려고 했던 내용들은 모두 거쳐 갔다. 나의 직장 생활 중 단 한 번 있었던 승진을 위한 해외 교육 연수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여권 2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난생처음 가게 되었다. 다른 일정으로 사전교육에 참가를 못해서 전화 통화로 대신했다. 날씨에 따른 옷차림에 관한 것과 소매치기 조심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물건도 거의 대부분 찾을 수 있는 나라이다. 우리나라 최고라는 생각이 들고 해외로 나가면 무조건 조심해야겠다는 각오를 하며 우리 부부도 참가했다. 부부 참가자가 많았고, 물론 자매가 온 분도 있고, 친한 지인과 온 사람이다. 그중 남자 혼자 온 사람이 눈에 띄었다. 말도 유머러스하고 귀여워 보이는 분이었다.
둘째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혼자 오신 분이 손가방을 두고 오는 바람에 다시 되돌아가야 하나 어쩌나 잠시 소동이 있었다. 마침 우리나라에서 온 다른 팀의 한 사람이 그것을 발견했고, 가이드끼리 아는 사람들이어서 일정이 중복되는 장소에서 만나 전해받을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가는 곳곳마다 우리나라 여행자를 만날 수 있으니 이런 기적도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분은 또 지갑을 분실했다. 우리가 이용하는 버스에 두고 내린 것 같다고 하는데 버스에서는 없었다. 여행지를 돌아다닐 때 잃어버린 건지, 버스에서 잃어버린 건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현지 가이드와 여행일정을 소화하고 그분은 한국 가이드와 함께 대사관으로 가서 임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날이 금요일이고,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그날 곧바로 가서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혼자 남아있어야 한다고 한다. 대사관에 갈 때도 다행히 우리나라 신분증이 하나 있어서 곧바로 발급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신분조회 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우리와 함께 출국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해외여행을 갈 때 가끔은 여권만 가져가고 우리나라 신분증은 모두 집에 두고 가곤 했는데, 가지고 가서 여권과 분리해서 보관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