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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Jul 09. 2024

양말

  친구가 빵구난 양말을 신은 자기 발 사진을 단톡에 올렸다. 자신감 있는 그 모습이 부럽다. 그 정도의 허물(?)은 그녀가 가진 매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안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 정도 경험은 있을 것이나 스스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몇 년 전 대학 동기 모임에 가끔 연락하며 지내던 친구들 네 명이 승용차 한 대를 타고 세종시로 내려갔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이도 있고, 가끔 만나는 이도 있다. 왁자지껄한 룸으로 들어가니 오랜만에 듣는 고향의 어투가 그대로 들린다. 

 “야, 인마, 오랜만이다.”  “멀리 오느라 고생 많았데이.”

 “이 자식은 신수가 훤하네”

 서로 자주 만나는 친구는 친구대로 반가웠을 것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그들대로 반가웠을 것이다. 나는 너무도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모임이 되었다. 그나마 가끔 만나던 여고 동기이면서 대학을 함께 간 친구들을 보게 되니 다행이었다. 그 시절, 안동에서 교육대학에 입학한 친구들 대부분은 서울의 웬만한 대학은 입학할 정도의 성적이 나오기는 했으나 서울이나 대구의 4년제 대학까지 유학 보낼 만한 상황이 안 되는 친구들이 입학했다. 입학 후 불편한 마음으로 자기 생활에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무난히 졸업하여 교사로 임용이 되었고, 나름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졸업 후 처음으로 가게 된 나는 그 모임에 이방인이었고, 낯선 얼굴들을 마주치고 어색한 인사들을 해야 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친구도 있었고, 이름을 먼저 알려주는 친구도 있다. 기억의 저편으로 돌아가 현재의 얼굴 모습에서 젊은 시절의 얼굴 모습을 유추하며 시간여행을 함께 해야 했다. 

  50대 이후 얼굴은 그 사람의 살아온 모습을 보여준다고 사람들은 말하지 않던가. 대부분 학창 시절의 깡마르고 꾀죄죄하던 모습은 아니다. 크고 작은 굴곡들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모두 교육계라는 울타리에서 교사로, 관리자로, 더러는 교육장까지 지내며 평탄 한 삶을 살아서인지 얼굴들이 덕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보이고 얼굴의 주름도 없지는 않으나 그 모습 그대로 젊은 시절의 얼굴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기조차 한다.  교육장을 지냈다는 한 친구는 과거에 자기가 좋아했던 내 친구를 들먹이며 어떻게 지내냐고 하더니, 자기가 좋아했었다고 하면서 본인과 결혼했으면 지금 훨씬 좋았을지 모른다는 뉘앙스의 말까지 한다. 이렇게 불편해지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반가워지는 사람이 더 많으니 그날 하루 그 모임에 섞이기로 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룸에서 오랜만에 만난 낯선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나의 모습을 살펴볼 여력은 없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로 한참을 보내다 무심코 아래쪽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내 양말 끝부분에 야들야들한 모습이 보이더니 발가락이 살짝 보인다. 빵구난 양말을 신고 온 것이다. 갑자기 이 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발가락을 오므려 보았다. 그랬더니 잠시 구멍 난 부분이 안보였다. 그러다 잠시 후에 보면 또 발가락이 보인다. 발가락을 계속 오므리고 있으려니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 그때부터 친구들과의 대화를 어찌 이어가는지 나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신경은 온통 발가락에 가 있지만, 모임이 끝날 때까지 그 부끄러움으로 인해 미안해야 할 내 발가락을 모른 체했다. 숨기기에 급급해하고 있었다.


 그날 내가 취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어? 발가락이 나오려고 하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니 너도 보고 싶었구나!”

 빵구난 양말을 있는 그대로 내 보였었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을 것이고, 더 당당하고 스스럼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당당하게 자기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내적 강점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도 된다. 빵구난 양말을 신었던 경험을 단톡에 올린 어느 친구의 당당함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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