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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Feb 15. 2023

환대

                                               

  어린이집 입구에서 205번을 누르고 

  “오시아, 데리러 왔습니다.” 

하고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2층에서 선생님이 3살짜리 귀여운 우리 손녀와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시아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엄마, 아빠 아냐~~ 엄마, 아빠 아냐!! 엉엉~”

 어린이집 현관 바닥에 쓰러지듯 펄썩 큰 대자로 엎어져 소리 지르며 운다. 당황해하는 선생님과 주변의 몇몇 학부모,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참, 난감하다.  

  ‘만나면 반가워할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손녀도, 선생님도 엄마인 줄 알고 내려오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엄마‧아빠 아니라고 바닥에 펄썩 엎어져 우는 것이다. 


  일곱 달 만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고 태어난 시아는 둘째 아들의 딸이다. 우리도 두 아들을 키울 때 부모님께 극성스럽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아들 며느리는 우리가 아들을 키울 때 보다 더 극성스럽게 시아에게 대한다. 남편이 가끔 TV를 보다 불편한 말을 하면 아들이 싫은 눈치를 주기까지 한다. 그것도 시아 몰래…. 우리는 천상의 선녀 앞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런 시아가 나를 완전히 녹이는 일이 있었다. 

  아들 며느리가 퇴근하여 우리 집으로 온다고 한 어느 날 저녁, 독서 모임이 있어서 밤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늘 아이들이 올 때는 집에 있었는데 그날은 내가 없었다. 손녀는 집에 오자마자 가족을 하나하나 찾다가 내가 없으니, 한참을 ‘할머니 할머니’하고 찾았을 것이다. 남편이 없을 때도 시아는 이방 저 방 다니면서 ‘할아버지 할아버지’하고 찾곤 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며느리의 “할머니 오셨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현관까지 마중 나온 시아가 두 손을 들고 뱅글뱅글 돌면서 “할머니! 할머니!” 신나게 춤을 추며 반겨 주었다. 무대 위 많은 사람 앞에서 환호와 환영의 박수를 받으며 나타나는 가수도 이보다 더 기쁠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온몸으로 표현하는 환대를 받기는 정말 난생처음이다. 시아를 꼭 안아 주었다. 

  ‘엄마아빠 아니야~~?, 할머니인데? ㅎㅎ~~ ’ 

  내가 어린이집에 시아를 데리러 갔을 때, 낯선 사람도 아니고 거의 매일 보는 친할머니인 나를 보고 아빠‧엄마 아니라며 큰 대자로 뻗어 울면서 대놓고 망신을 주었던 그날의 시아가 아니었다. 오직, 아빠‧엄마만 찾는 시아, 그런 시아가 할머니를 기다리다 나타나자 춤을 추며 환대를 한 것이다. 

  ‘이런 신기한 날도 있구나.’

  ‘이것은 엄마‧아빠가 옆에 있을 때, 시아의 모습이로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을 환대할 줄 아는 시아는 엄마‧아빠가 옆에 있을 때이다. 모든 게 편안함 그 자체다. 시아의 마음도 넉넉해진 것이다. 


   작은아들이 네 살 시아 나이 즈음 일이었다. 학교에서 장기간 숙박을 하며 교육받는 출장 연수가 있었을 때였다. 고민 고민을 하다가 작은 애를 친정에 맡기기로 했다. 아이를 친정에 두고 내가 떠나는 것을 보면 울 것 같아서 아들 몰래 친정집을 빠져나왔다. 그날 밤과 다음날까지 아들이 잠을 못 자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전화로 아들이 운 이야기를 듣고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교육을 마치고 아들을 데리러 가자 아들의 표정이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그제야 변명하며 아들의 이해를 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서럽게 우는 아들을 한참을 안아주며 함께 울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화장실을 갈 일이 있어서 무심코 일어났다. 그때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아들이 깜짝 놀라듯이 발딱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화장실까지 따라다녔다. 나는 그날의 상황을 잊지 못한다. 

  ‘쪼그만 아들이 엄마가 또 사라질까 봐 이러는구나.’ 

  이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엄마에 대한 불신을 자녀에게 주는 것이라고….’

  아무리 아이가 울어도 설명하고, 최대한 이해를 시키고, ‘빠이빠이’ 인사를 하면서 헤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항상 그때 일을 생각하면 미안하다. 가끔 아들과 같이 그 일을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아직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들도 그날의 상황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네 살 때의 일이지만 그 일이 아들에게 얼마나 큰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었는지 내가 그때 일을 이야기하면 또렷이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몰래 가버렸다고….

  ‘아들, 미안해’

  그래서 그런지 아들은 자기 딸 시아에게 못 알아듣는 나이인 것 같은데도 끝없이 설명하고 이야기한다. 아들은 내가 했던 좋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반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래, 좋지 않은 모습을 보고도 배울 수 있는 게 있다고 하지 않던?’

 시아가 할머니인 나를 환대한 건 엄마‧아빠인 너희들이 옆에서 편안함을 주었기 때문이지     

                                                                                                             2022. 7. 19.

                                                                   에세이스트 연간집  <가을 숲에서 수화를 듣다>  수록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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