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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Dec 20. 2023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남편은 예쁜 걸 보면 내가 생각난다고 한다. 탐스럽게 핀 벚꽃을 보거나 불그스름하게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거나 파란 하늘에 구름이 몽실몽실 떠다닐 때마다 나와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나에게 보내준다. 내게 온 건 사진 몇 장인데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해진다. 참 낭만적인 사람, 일상의 반복이 나조차도 무뎌져 안 궁금 한대 그는 내 하루를 궁금해한다. 나를 귀하게 여겨준다고 느낄 때면 항상 고맙고 기쁘다.」

     

 이 글의 댓글로 내가 쓴 글이다.      

-와우! 글을 보기만 해도 두 분께 박수 보내고 싶습니다. 부럽습니다. 울 남편 미워지는 날입니다. ㅎㅎㅎ-     


  이 글을 읽으며 늘 자상하지 않고 감성 빵점인 남편이 떠올랐다. 남편은 한 번도 나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거나 짧은 말로도 표현해 주지 않았다.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에게 그런 말 하는 사람에 대해 ‘팔불출’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요즘 남자로 말하자면 빵점보다 더한 마이너스 점수를 주어야 하는 사람이다. 댓글을 쓰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가 진심으로 부러웠고 그 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랑스러웠다. 내 남편을 생각하면서 “쯧쯧~”거리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남편이다. 기분이 상해서 ‘또 무슨 일이지?’ 하면서, 뭔가 귀찮은 일을 시키려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자 반갑지 않게 퉁명스러운 말로 받았다.      


  “왜요?”

  “아, 아, 여기 관악산인데, 첫눈이 와, 당신 생각나서 전화했어. 같이 보고 싶어서….”

  “…….”     


 평소와 다른 좀 들뜬 목소리의 남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표현한다면, “헐~~”이다. 내 남편 답지 않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까지 하니, 어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진정하고 겨우 생각해 낸 말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정말 친구 남편과도 비교되는 울 남편이다. 단톡에 자기 남편에 대한 글을 자주 올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남편은 아내에 대한 감성적인 글을 자주 올린다. 남편이 기차를 타고 가다 내 친구가 떠오른다며 아내 예찬 글을 올리기도 하고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도 자기 아내의 손맛이 최고라고 글을 올린다. 내가 봐도 그녀는 영리하고 솜씨 좋고, 부지런하고, 다방면에 능력이 뛰어나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칭찬 들으며 음식하니 신나서 더 잘하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나는 ‘그런 칭찬 못 들으니 뭐, 대충 한다’는 논리다. 실제 어떤 게 맞는 말인지 모른다. 나는 음식하고 살림살이 살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모르듯, 칭찬 못 들어서 살림살이 재미가 없는 것인지, 살림살이 잘 못해서 칭찬 못 듣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살림살이를 잘 못하기도 하고 재미도 없다.      

그 친구 남편의 감성적인 표현이 단톡에 올라오는 날 나는 답 글을 종종 이렇게 단다.     


  “울 남편 오늘 나한테 이유 없이 갑자기 뒤통수 맞는 날 일 것 같다.”     


단톡 친구들은 재미있다며 와글와글 거린다. 이게 내가 느끼고 있는 나의 남편이다. 그런데 첫눈 오는 모습을 보며 나를 떠올리고 전화를 주었다. 남편이.     


  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는 자동차를 타고 장거리를 갈 때면 반드시 부부싸움을 한다. 지난주 금요일 밤 9시 넘은 시간 출발해서 1박 2일 여정으로 대구에서 친정동생 집을 거쳐 안동에서 또 다른 행사에 참석한 후 밤늦은 시간 서울로 올라왔다. 이번 여정 중 절반의 시간이 운전하는 시간이었다. 평상시 운전하며 오갈 때면, 싸우고 서로 자기가 잘했다 하고 서로 상대가 운전을 잘 못한다며 탓을 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서로 상대 탓을 하지 않았다. 혹시, 상대가 잘 못할까 봐 염려하고 신경을 써 주었다. 서로 운전하겠다고 했지만 상대가 잘 못하니 내가 운전하겠다가 아니라 상대가 피곤할까 봐 미리미리 서로 운전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남편이 최근에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던 어느 날 이후, 나의 태도가 좀 바뀌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내 태도가 바뀐 것이 먼저인지, 남편 태도가 바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나도 감성적인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남편 흉본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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