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지하철 타고, 인생도 돌아보고

나이 탓

by 이경란

<새벽감성 출판투고 작품>


나이 탓 1(잠실)

‘이번엔 실수 없이 지하철을 타고 가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스마트폰 앱으로도 시간을 확인했고, 네이버 지도로도 미리 검색해서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두었다. 잠실 종합운동장역에 내려야 할 것을 잠실역에 내려 당황했던 그날처럼 하지는 않으리라.

잠실에서 출발이라는 것만 기억하면서 이른 아침 지하철을 탔던 날이 있었다. 대절버스를 타고 1박 2일 여고동창에 가기 위해서였다.

잠실이라는 말만 뇌리에 박혀 몸은 잠실역을 목적지로 삼고 가고 있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건 이문세 공연이 있었던 종합운동장 주 경기장이고, 단 한 번 가 보았던 프로야구 경기장, LG와 두산의 경기가 있었던 곳이다.

TV로만 보던 야구장에 갔던 날 사람들 틈에 끼어 응원했던 시간을 떠올려 본다. 치어리더의 응원에 맞춰 함께 함성 지르고 몸을 들썩였을 땐, 온몸에서 열기가 나고 생동감도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응원하는 모습이 사라진 게 아쉬웠고, 부끄러움 따윈 없었다. 목청껏 소리 지르고, 그 속에서 함께 뛰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다시 프로야구 경기장 찾을 날을 고대하며 잠실역에서 내려 6번 출구를 찾아 나왔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그 신났던 야구장도 우리를 데리고 갈 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출발 장소를 확인해 보니 ‘아뿔싸’ 종합운동장역이다. 그나마 일찍 출발해서 다시 잠실역으로 갈 시간이 되었고,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어휴’

오늘도 대절버스를 타고 대구에서 하게 된 총동창회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또 잠실이란다. 잘 보니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이다. ‘이번엔 틀림없이 실수하지 않고 가리라.’ 영등포구청역에서 내려 환승할 때도 방향을 잘 보고 탔다. 시간도 딱 맞추어 제시간에 도착했다. 요즘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앱 <지하철 종결자>가 도움을 주었다. 몇 시에 출발하면 좋은지, 시간도 정확히 알려 줄뿐더러 어느 칸에서 타면 빠르게 탈 수 있는지 까지 알려준다. 참 좋은 시대다. 나 정도면 신식 할머니 아닌가.

“이 나이에 나도 스마트한 할머니이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고 갈 수 있다.”

당당하게 실수 없이 제시간에 도착했다. 잠실로 가지도 않았고 곧바로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로 왔다. 친구 한 명은 지하철을 반대로 타서 늦어졌다며 연락을 해 왔고, 우리가 전화로 확인하고 기다려 주었다. 나는 이번에 거꾸로 타지도 않았고, 엉뚱한 장소에 가지도 않았다. 실수 없이 하루를 잘 보내고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본 창밖에 가을이 보였다.

대구까지 가는 동안, 시간을 잘 지키며 무사히 갈 수 있었고 목적지에서의 행사도 별무리 없이 참여했다. 맛난 음식과 수성못 산책도 시간 맞추어 잘했다. 특히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인맥으로 이천에 있는 이문열 작가의 <부악문원>이라는 곳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문학계를 위해 사재를 털어 마련한 곳이며 집필활동에 전념할 어려운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더욱더 존경의 마음이 든다. 이문열 선생님과 사진도 찍고, 말씀도 듣고, 친절한 사모님께 덤으로 모과까지 두 개나 얻어 올 수 있었으니 따뜻한 마음까지 안고 가는 듯하다. “대부분 작가의 글은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고, 작가는 발로 뛰며 체험을 많이 해 봐야 한다는 어느 교수님의 강의와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

모든 게 순조롭다. 출발했던 종합운동장역에 도착한 시간이 예정시간이었던 밤 9시 정각, 딱 맞아떨어진다. 서로서로 헤어짐의 인사도 나누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우리 동네 사는 선배와 함께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면 된다. ‘정각 9시 잠실도착, 곧 가요.’ 남편에게 문자도 보내었다.

우리가 내려가자 말자 기다렸다는 듯 급행 지하철 도착이다. 우리 두 사람은 기쁨의 눈 맞춤을 하며 냉큼 올라탔다. 지하철도 늦은 시간이라 여유롭다. 빈자리가 많으니 앉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몸을 기대고 선배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 다음 정거장을 지나가는 동안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아무 생각이 없다. 무심코 들려오는 소리, 다음역이 올림픽공원역이란다.

“아고야!” 반대방향이다. 순간적으로 새벽에 출발하면서 탔던 중앙보훈병원 행 기차에 그대로 타고 말았다. 나이 탓을 해야 하나? 이 늦은 밤에 70을 바라보는 두 할머니, 다음 정거장에 무조건 내렸다. 갑자기 피로가 마구마구 몰려온다.


나이 탓 2(고속터미널)

강남고속터미널역으로 버스 택배를 종종 부탁했었다. 지인이 하는 고향의 00 한우, 신선도는 말할 것 없고 살짝 구웠을 때 맛과 향이 특별하다. 아침에 주문하면 당일 손질해서 서울행 버스에 올려주니 도착 시간에 맞춰 찾으러 가면 된다. 서너 시간이면 찾을 수 있으나, 불편한 건 당일 도착시간에 찾으러 가야 하는 것이다.

큰아들 집에서 집들이를 하게 된 날이다. 할매 할배 노릇 잘해보려는 마음에 주문해 놓고, 시간 맞춰 나갔다. 나는 차를 돌려놓고 기다리고 있고, 남편은 찾으러 갔다. 그런데 빈손으로 돌아왔다. 물건표를 보여주니 이곳이 아니라 했단다. 그제야 확인해 보니 동서울터미널로 되어 있다. 우리도 제대로 안 보고 왔다. 늘 고속터미널이었는데, 어찌 그곳으로 보내었단 말인가. 오늘은 토요일이다. 길은 온통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데, 고속터미널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다녀오려니 까마득하다.

고속터미널역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다시 다녀와 아들이 사는 곳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저녁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먹을 것인데 다녀오면 밤늦은 시간이 될 것이다. 어린 손녀들이 잠들 수도 있다.

공연히 그 먼 곳에서 배송까지 시켰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이 상황을 애들에게 이야기하고 동서울터미널을 다녀와야 하니,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해야 한다. 집들이 모임인데 우리 부부 없이 자기들끼리 먼저 먹으라고 하면 기다리겠다고 할까 봐 또 걱정이다. 진즉에 맛난 것 할배 할매가 고속터미널 가서 찾아서 간다고 해 두었으니 달리 둘러댈 말도 없다.

그냥 봉투 하나만 준비해 주고 가볍게 갈까 하다 이왕이면 봉투도 주고 손녀들에게 점수도 좀 따볼까 하는 요량으로 준비했는데 말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피로감도 몰려온다. 핸드폰을 들었다.

“아들, 고속터미널 왔는데 엄마 아빠가 다시 동서울터미널까지 갔다 와야 해.”

자초지종을 듣더니 아들과 옆에 있던 큰 며느리가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어머님, 지금 차가 너무 막히는 시간이라 힘드셔서 안 돼요. 그냥 오세요. 퀵으로 하면 돼요. 저희들이 알아서 할게요. 톡으로 배송표 보내주세요.”

남편이 반긴다. <퀵>이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나는 얼른 배송표를 아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었다. 아들 며느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동서울터미널까지 갔다가 되돌아 올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것을 해결해 주었다. 아들집으로 가는 길도 차는 여전히 막힌다. 남편도 진이 빠진 듯 옆에서 보니 피곤해 보인다. 느릿느릿 운전으로 아들 집에 도착했다.

식구들 모두 모여 시끌벅적하다. 모처럼 만난 손녀들은 사촌끼리 모여서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고 있다. 이 모습은 내가 바라던 모습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주문한 것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 환영받은 듯 보인다.

우리 부부가 아이스박스를 번쩍 들고 들어와 손녀들에게 “맛난 것 구워 먹자.” 하려던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두 배 먼 곳,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한 녀석이 먼저 와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역시, 젊은이들이 샤프하다. 공연히 나이 탓을 해 본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다면, 우리 부부는 낑낑거리며, 불평불만하며 동서울터미널로 향했을 것이다.


나이 탓 3 (용산역)

용산역은 호남선 출발역이다. 이곳에서 출발해서 목포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동남아 단체 해외여행에서 볼 수 있는 이름이 쓰인 팻말을 들고 우리를 맞이했던 목포역도 그려진다. 여행을 출발할 때, 북적임이 있는 그곳으로 시누이와 영화 보기 위해 모처럼 나갔다.

시누이는 창원에서 올라와 가수 임영웅의 영화를 보기 위해 일주일 동안 매일 영화관을 찾았다. 그날은 나에게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용산역 CGV영화관이다. 평소이면 지하철로 가겠지만 밤늦은 시간에 보는 것이라 마치고 나서 지하철을 못 탈까 봐 걱정되어 자동차를 가지고 나갔다.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 영화관 주차장으로 가까이 갈 수 있을지 헤매기도 했다. 이해하기 힘든 표지판만 있고, 물어볼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시누이는 용산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주차장 가는 길을 묻었다.

“나, 고모야, 엄마랑 영화 보러 용산역 왔는데 엄마가 주차장을 잘 못 찾는다. 어떻게 가야 해?”

시누이가 나를 못 믿고 불안해하니 아들이 설명해도 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돌다 보니 차가 큰길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길가는 사람에게 용산역 CGV주차장 맞는지 확인한 후에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 입구로 들어서면 사람은 없고 길은 밤하늘을 향하는 듯 올라가니 마치 우주에서 주차장을 헤매는 듯하다.

서해안 방향,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첫 관문인 용산역인데, 사람의 향이 묻어나는 용산역이 아니라, 미래도시역을 찾아온 듯하다. 길눈이 밝다고 자부심 갖던 내가 헤매고 있었다.

젊고 활기찬 곳, 거기서 헤맨 건 나이 탓. 또 나이 탓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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