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LD콘서트 홀 음악회에 갔다. 나름 근사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일찍 도착해서 티켓을 받고 주변에서 저녁도 먹었다. 시간이 되어 입장하니 앞자리에서 네 번째 가운데 자리다. 공연 음악가들의 얼굴표정 하나하나 너무도 잘 보인다. 최고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쏟아지는 음악비에 맞아 나른해지는 내 몸을 어쩌지를 못하겠다. 이 시간이 좋은데, 나갈 수도 없고 미안한 마음만 든다.
남편은 옆에서 창피하다고 자꾸만 나를 쿡쿡 찔러 대었지만, 콘서트 음악은 나를 소파와 점점 더 밀착시키고 있다. 내 몸은 점점 소파 아래로 내려갈 듯하기까지 한다. 음악비에 흠뻑 젖어 비몽사몽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겨우 음악회를 마치고 나른 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쏟아지는 사람들 속에서 밀려 나오다시피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을 타려고 하니 또 화장실을 가고 싶다. 한 시간 이상을 타고 가야 하니 다녀와야 한다.
늘 나의 화장실 사용시간은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생각해서 서둘러 화장실 밖으로 나오니, 남편이 큰 캐리어와 짐을 잔뜩 가진 조금은 남루한 행색의 웬 낯선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주 진지하게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은 가려져 있으나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여자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남편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누구? 무슨 일이에요?”
“뭐, 힘든 일이 있다며 도와 달라는 것 같아. 잠 잘 곳이 없다는….”
내가 다시 그 여자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제가 갑자기 너무 힘든 일이 생겨서…. 지금 배도 고프고….”
요즘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쳐 오고 싶었다. 남편에게 잠잘 곳이 없다고 하며, 잠자리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남편이 화장실에서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며 혼자 서성이고 있으니 그 여자가 접근을 한 것 같다. 낯 모르는 여자와 가까이했다가 낭패난 사람들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떠올랐다. 성과 관련 된 일로 연루되기도 하고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또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전문적으로 구걸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멀쩡이 잘 살면서 직업적으로 구걸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에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이 사람도 그런 사람 중 하나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진짜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젊은 여자애가 오죽하면 그 늦은 시간에 낯선 남자에게 도움을 청할까 싶기도 하다. ‘저런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구걸하는 그런 버릇을 들여서도 안 된다.’는 생각과 ‘그래, 어쩌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지나쳐 가려니 바로 옆에 빵가게가 보인다. 정말 배가 고팠으면 이 빵을 얼마나 먹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백을 들여다보았다. 마침 만 원짜리가 있었다.
‘그래, 속아 보았자 만원 짜리 하나이다. 그만큼은 속아 줄 수 있다.’
만 원짜리 하나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로 했다. 되돌아가서 만 원짜리 하나를 건네주었다.
“빵가게에서 빵이라도 하나 사 먹어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힘들다고 손을 내민 사람을 그대로 지나쳤을 때 내 마음의 불편함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남편에게도 도움을 요청했고, 나에게도 그랬다. 남편도 도움 주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비를 맞고 나른 한 몸이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의 불편함을 갖고 가고 싶지도 않다. 내가 건넨 지폐 한 장은 그 불편함을 없애주는 나의 선심이기도 하다. 이 또한 나의 또 다른 이기심일 수 있다.
잘 모르겠다. 내가 건넨 만원이 그녀에게 허기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 줄 수 있었을지, 아니면 내가 어리석게 당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