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란 경제 체제는 자유 경쟁과 이윤 추구를 기반으로 한다. 이 체제에서는 성과가 곧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성과를 내는데 필요조건이라고 여겨지는 ‘능력’에 높은 요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본주의가 찬양하는 ‘능력’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줄곧 개개인들이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이러한 능력주의가 지니고 있는 맹점이나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개개인들이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기를 호소하고 있으며 또한 사회적으로도 제도적인 변화가 뒤따라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를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마이클 샌델의 주장(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을,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반反능력주의’로 과대 해석하고 ‘유전자 만능론’을 내세우며 노력을 부정하고 있다. 빈부 간 격차가 심해지고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풍토가 사회에 점차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고, 노력과 유전(운)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시점이다.
상황이 이러할지라도 사실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유전(운)과 노력이 조화롭게 작용해야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라는 것을 갖출 수 있고, 이것이 또 좋은 성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원하는 분야나 목표에 따라 ‘유전과 노력’의 어느 한 쪽이 더 중요해질 수는 있어도, 둘 중 한쪽으로만 완전히 기운 시소의 형태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원하는 바에 따라 유전과 노력의 중간 점을 잘 찾아야 하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겠는데, 나는 그 균형점을 찾는 방법에 ‘메타인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메타인지란 크게 ‘인식에 대한 지식’과 ‘인식에 대한 규제’ 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합하여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자신의 인지 과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모두는 성공을 꿈꾸고 있다. 성공은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있으나,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분야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은 명백한 사실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으로 성실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다들 이 시작 단계인 방향 설정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그저 자신을 ‘고문하는 수준’의 노력만 쏟아붓는 것이 문제이다.
노력을 쏟아붓기 위해서는 어떠한 능력을 개발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능력을 개발시킬만한 재능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즉,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파악(메타인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인지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노력은 당신을 괴롭게 할 뿐이다.
본인이 공부나 축구에 남다른 재능이 없는데, 의사나 축구선수가 되기를 단지 ‘희망’한다고 하여 단순히 노력만 쏟아붓는다면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공부나 축구만으로 소위 말하는 ‘성공’을 하려면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성공이라는 단어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국내 상위 1%로 국한하겠다. 단순한 계산을 해보아도 재능의 필요성을 바로 알 수 있다. 100명 중에 1명이 되려면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노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재능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노력 X 재능=성과’에서 모두가 비슷한 노력을 쏟아붓는다면 결국 재능에 따라 성과가 갈리고, 그렇게 줄 세우기가 끝난 성과는 결국 재능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무서운 재능의 영역을 무시하고 노력을 하면 너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한다면, 객관적으로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인생을 허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노력만 하면 줄곧 꿈꿔왔던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며 행복회로를 돌리게 하고 이 악물고 버티라며 소리치지만, 이렇게 해서 원하는 결과는 얻을 리는 만무하다. 이렇게 두세 번의 실패를 반복하면 결국 염세주의자나 비관주의자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개인에게 메타인지를 하라는 것은, 지레 겁먹고 꿈을 작게 꾸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지닌 재능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내가 점한 비교우위를 찾아 그 능력을 개발하고 노력하라는 뜻이다.
자신이 할 수 있음과 없음을 명확히 구별하고,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의 나의 모습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자신이 노력을 했을 때 이뤄낼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최적의 선택을 내려 올바른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꿈꾸고는 그 모습을 목표점으로 삼아 자신을 거기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우愚를 범하곤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정확히 이와 반대로 사고해야 한다. 현실의 모습을 출발점으로 삼고 거기서부터 미래를 기획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메타인지가 이뤄진 상태에서의 노력은 정말 무섭다. 이것은 마치 사이클 선수가 맞춤형 자전거를 탔을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과 같다. 정확한 메타인지는 어쩐지 당신의 행동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것이며, 또한 당신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주고 효율을 끌어올려 주며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손에 쥐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프레임’ 안에서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각자의 능력에 맞는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쉽사리 패배자로 전락하지 않고 자신만의 성공을 이뤄낼 수 있으며, 기회가 된다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길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이처럼, 작게는 사소한 다짐부터 크게는 거대한 인생 계획까지, 우리는 무언가의 목표를 세울 때는 원하는 목표점에만 시선을 고정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이 서 있는 시작점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당신이 어떤 능력을 개발하고 싶던, 그 첫 시작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니 말이다.
2024/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