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의 꿈

- 빨간약과 주판알 사이, 내가 놓지 못한 건반의 선

by 티앤티앤

유년 시절, 나의 장래 희망은 간호사였다.

무릎이 깨져 우는 친구가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구급함을 찾아내 빨간약을 바르고,

"호호" 입바람을 불어주며 위로하는 일이 내게는 참 자연스러웠다.

그런 나를 보며 어른들은 " 커서 나이팅게일 같은 훌륭한 간호사가 되겠네"라며 칭찬하셨고,

그 시절의 나는 " 난 간호사가 될 거야"라고 수줍은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더 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 시절의 나는 왜,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못해보았을까...

아마도 내 무의식 깊은 곳에는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라는

시대가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3대가 함께 사는 엄격한 가부장적 가풍을 지닌 곳이었다.

장유유서와 남존여비가 공기처럼 당연하게 흐르던 집안에서,

할머니에게 장손인 오빠는 늘 귀하고 대접받아야 할 존재였다.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나를 부르셨다.

"선영아, 냉장고에 반찬 꺼내서 오빠 밥 차려줘라."

나보다 두 살이나 많고 체격도 훨씬 큰 오빠였지만,

할머니에게 부엌일은 오로지 동생인 나의 몫이었다.

"왜 맨날 나 보고만 차려주라고 해!"라며 입술을 내밀고 작은 반항도 해보았지만,

할머니의 완고한 시선 앞에 나는 결국 체념 섞인 한숨을 내쉬며 냉장고 문을 열어야 했다.

누군가를 돌보고 치료하는 '나이팅게일'이 되고 싶었던 소녀의 순수한 열망은,

현실의 밥상 앞에서 '당연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지고 있었다.


부모님 또한 내가 거창한 야심을 품은 큰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저 사회에 나가 당당히 앞가림하는 사회인이 되길 바라셨다.

부모님의 2, 30대는 자리를 잡는 것조차 만만치 않던 척박한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딸자식만큼은 어디서든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는 간호사나 미용사,

혹은 은행원 같은 전문적인 직업을 갖길 원하셨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남들 다 다니는 피아노나 미술학원 대신, 나는 주판과 암산학원으로 향했다.

그 당시 긴 숫자의 나열을 암산으로 척척 해낼 때마다 느껴지던 뿌듯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실용적인 기술들을 익히는 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결핍 하나가 자라났다.

"손가락이 길어서 피아노를 치면 참 잘하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피아노 건반 한 번 제대로 눌러볼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의 나에게는 작은 꿈이 하나 있다.

인생의 치열한 파도가 조금 잦아들고 나에게 여유 있는 휴식의 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가장 먼저 어린 시절 배우지 못했던 피아노 앞에 앉아보고 싶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의 남은 여정에, 이제는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을 얹어,

그 시절 배우지 못해 아쉬웠던 그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늦게 배운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듯,

늦게 시작할 나의 연주 또한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제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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