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는 목소리를 찾다
나의 혈액형은 A형이다.
요즘은 MBTI가 사람의 성격을 말해주는 도구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혈액형 하나로 그 사람의 성향을 짐작하고 묻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그 시절의 전형적인 A형처럼 지독하게 소심한 아이였다.
수업 시간, 내 생각을 발표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를 읽는 것조차 내게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면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랐고,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기어가는 벌레 소리처럼 희미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은 심정으로 간신히 책장을 넘기곤 했던,
참으로 부끄럽고 수줍음 많던 시절이었다.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내 안의 소심함은 묘한 방향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는 아빠의 가부장적인 권위에 소리 없는 반항을 시작했다.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남녀평등의 목소리가 커지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며 가족들 앞에서 조금씩 목소리를 내곤 했다.
하지만 막상 세상으로 나오면 나는 친구의 부탁에 거절의 말도 잘하지 못했다.
친구가 상처받을까 봐, 내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 봐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돌아서곤 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 매일 밤 잠들기 전, 마음속으로 연습했다.
'나는 오늘 친구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얘기해야 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내 가슴을 울렸던 명언이 하나 있다.
“좋은 생각은 좋은 행동을 낳고,
그 행동이 모이면 좋은 습관이 되며,
좋은 습관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든다.”
그 글귀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해머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한 깨달음이 있었다.
그것은 긍정적인 생각에 대해서 처음으로 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소심했던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한 큰 힘이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앞에 나서서 주목받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주어진 일만큼은 누구보다 당당하게 잘해 보이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목소리를 크게 내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그 노력이 쌓여, 이제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내 마음속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쥐구멍을 찾지 않는다.
세심하게 남을 배려할 줄 알면서도,
나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아는 당당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은 그 마음이 나를 부지런히 밀어 올린 덕분에,
나는 오늘도 어제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당당하게 세상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