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아홉, 이름 모를 온기가 간절했던 나
나는 아직 종교가 없다.
지금 특별히 믿음은 없지만,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인간에게는 왜 믿음이,
그리고 어딘가에 기댈 곳이 필요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예전에 아마도 20대 때, 뉴스에서 명동 길거리 한복판에
'프리 허그(Free Hug)'라고 적힌 커다란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아무 조건 없이 팔을 벌려 모르는 사람을 안아주던 그들의 행동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 모르는 사람을 안아주는 걸까?"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저 낯선 풍경으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서른아홉이라는 숫자의 문턱에 섰을 때,
나는 비로소 그 절실함을 깨달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내 곁에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친한 친구들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외로움과 불안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늘 강하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이, 말 없는 위로가 너무나 간절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그제야 뼛속 깊이 다가왔다.
마음을 기댈 곳을 찾아 직장 동료 언니들을 따라 교회에도 가보고 기도도 올려보았다.
확실히 어딘가에 마음을 기대니 조금은 안정이 되는 듯했지만,
공부를 시작하며 바빠진 일상 탓에 나의 종교 생활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다 최근, 유튜브에서 또 다른 '허그'의 장면을 마주했다.
지하철역에서 한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경찰관 두 분이 그를 제지하며 경찰서로 연행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던 상황이었다.
아저씨는 오기로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던 젊은 남자 한 분이 조용히 일어나더니,
소동의 중심인 아저씨와 경찰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아저씨를 말없이 꽉 안아주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정말 믿지 못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슬 퍼렇던 아저씨의 고함은 어느덧 낮은 흐느낌으로 바뀌었고,
청년은 그 거친 등을 다독거리며 한참을 안아주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경찰관들에게
괜찮으니 가보라는 듯 손짓을 보내던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충격과 뭉클함을 동시에 느꼈다.
아무도 내 아픔을 몰라준다는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한 남자의 비명을
그 청년은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온기로 받아주었다.
만약 내가 저곳에 있었다면, 나는 저렇게 다가가 낯선 이의 고통을 안아줄 수 있었을까...
아니, 그 외로운 비명을 남모를 아픔을 알아챌 수는 있었을까...
그 청년의 행동은 나를 다시 서른아홉의 그 시리고 외로웠던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혹은 마음 편히 안겨 울 곳이 없어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외로웠던 그 시기 말이다.
인생의 반나절을 보낸 지금, 나는 이제 남은 여정을 위해 조심스러운 바람 하나를 품어본다.
나에게도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그리고 나 또한 그에게,
거친 세상에서 돌아와 따뜻하게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