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 잔 마셔볼까?

- 스파이 글 쓰기 3주 차 -

by 로오렌

나는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 알코올에 대한 나의 취향을 굳이 따지자면 곡류다. 과일이 섞인 건 맥주도 사케도 와인도 싫어한다. 반면 위스키나 소주 같은 증류수는 독하게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술은 시원하거나 독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나도 한 때는 와인을 마셨다. 2010년대에는 와인바가 유행했다. 신발을 벗고 좌식으로 앉아서 와인을 시키면 멋스럽게 차려입은 웨이터들이 와인을 가져다주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테이블 주변은 가벽이 둘러져 있었고 푹신한 방석과 큰 쿠션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다. 비스킷과 치즈 그리고 와인 한 병. 절대 배부를 수 없는 조합을 시켜놓고 모자란 양은 와인 한 병 더 시키는 걸로 채웠었다. 2명이서 앉으면 와인 한 병씩. 소주병을 세워놓고 즐거워하는 것 마냥 와인병을 둘러놓고 무식하게 마셔댔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던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며 깔깔대곤 했던 게 기억난다.


물기 없이 잘 닦여진 와인잔에 빨간 와인이 담기면 두 손가락 사이에 와인잔을 끼우고 와인을 살짝 흔든 후에 코로 한 번, 부드러운 목 넘김으로 한 번 마시는 거라고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12병의 위대한 와인과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한 병의 와인을 맞추는 내용인데 재미가 없어서 보다가 말았다. 대체로 만화책은 다독하는 편이었는데 '와인'이라는 소재는 정말 나와 맞지 않았구나 다시금 느끼게 된다.


2010년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친구 B양과 와인바에 앉아있었다. 와인바는 결코 저렴한 술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녁도 거른 채 씹을만한 안주거리를 시켜놓고 놀고 있었다. 대학 동아리 선배 J가 우리를 찾아온 건 이미 와인을 각 1병씩 마신 후였다. 나와 B양은 와인을 한 병 더 시켰던 것 같고 술값은 누가 냈는지 모르겠다. 누가 냈던 다음날 우리는 똑같이 나누어 다시 계산하는, 부채 없는 사이였다. 거나하게 와인을 마신 후에 노래방은 필수였다. 노래방에서 놀다가 술이 깨면 저렴한 소주집이나 국밥집으로 가는 게 우리의 코스였다. 저녁을 거른 탓이었을까. 나는 노래방에서 <별>만 세 번을 완창 했다고 한다. 선배 J와 친구 B 양 덕에 어찌어찌 집에는 갔던 것 같고. 다음 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검은 똥을 쌌다. 새카만 똥덩어리에 깜짝 놀랐다는 것도 지금 처음 고백한다. 그때 이후로 와인바에 간 적은 없다.


그때 와인바에 들러서 노래방까지 함께 했던 선배 J는 나와 썸을 타다가 남자친구가 되었고, 지금은 남편이 되었다. 와인을 엄청 마시고 취한 핑계로 <별> 노래를 세 번이나 부르면서 플러팅 했던 것이 먹혀서 썸이 시작되었고, 그 해 겨울에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사실 둘이서 한 병은 모자라고 혼자서 한 병은 다음날 꼭 머리가 아팠기 때문에 와인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와인 마시기를 즐기지 않지만 앞으로 와인을 꼭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와인을 마시는 내 뒷모습이 이왕이면 우아하고 여유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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