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노오란 금계국이 행길을 따라 피기 시작한 6월 중순. 득무는 그날도 어김없이 이상득씨네 논과 밭 이곳저곳을 다니며 김을 매고 북주기를 하고, 식사 때에는 찬을 만들고 밥을 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듬더듬 제 하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을 말하는 형철이가 종종 거리며 시종일관 득무를 따라다닌다는 것 정도다.
재원은 과히 넉넉한 편인 이 씨 집안의 논과 밭을 관리하는데 집중하라는 상득의 말은 듣지 않은 채 여전히 공사가 다망하였다. 그런 모습에 시모는 혀를 끌끌 차며, 동리에 소작농들에게 아들 공부 많이 시켜봐야 소용없다는 이야기를 줄기차게 하곤 했다.
“아 그래도 이 동리 서 편지글 쓸 때, 경찰서나 동사무소에 문서 내야 할 때 죄다 재원이가 글을 써줬는디유.”
사람 좋은 웃음을 한 한 씨가 새참을 입에 들이밀며 시모 김 씨를 다독인다. 시모는 그런 말이 아주 듣기 싫지는 않다. 명필가로 유명한 재원의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아들이 얼마나 일찍 천자문을 떼었는지 자랑이 이어지고 득무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얼른 일어서서 밭으로 나가려 한다.
“얘, 너만 먹으면 끝이니? 형철이 좀 봐주지 않고.”
시모의 말에 득무는 입술을 깨문다. 형철은 정말로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병치레도 잦았다. 얼마 전 형철이 고뿔이 심하게 걸려, 밤새 간호를 하느라 득무는 며칠 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득무는 밥을 먹으라고 형철을 부른다. 하지만 아이는 논에 댄 물에 뜬 개구리 알을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득무는 형철을 번쩍 든다. 형철은 그런 득무의 팔을 마구 때리며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득무는 화를 꾹 참고 아이를 앉힌 다음 밥술을 입안으로 들이민다. 아이는 득무를 노려보다 세차게 도리질을 한다. 득무는 자기 마음을 아이가 이미 알기 때문에 더더욱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둘의 본 소작농들이 너 팔자 좋은 줄 알아라! 하자 아이는 씩 웃는다. 아이의 웃음이 해사하기 때문인지 득무의 속에서는 더 불이 난다.
“그나저나 인공군이 밀고 내려온단 소문이 있는디…”
“에이 설마.”
소작농들끼리 주고받는 말에 득무는 귀를 기울여 본다. 이윽고 득무가 입을 연다.
“북한군이유?”
“어제 시장 갔다 역 앞에서 담배 한 대 빌려주다 들은 말이디, 서울 쪽 사람들이 난리통에 밑으로 피란 오고 있다고 말여…”
“그럼 전쟁이라도 났다는 말씀이셔유?”
하늘 위로 새가 휘 지나갔다. 청명한 바람이 불어와 나무 그림자 안에 앉은 그들의 머리칼과 주변의 나무들을 흔들어 댔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평택 동리의 낮이었다. 전쟁이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 형철이 재치기를 한다. 입 안에 있던 밥풀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득무는 형철을 노려본다. 한 씨가 고놈 큰 눈망울이 제 어미랑 똑같구먼!이라고 말한다. 한 씨는 말을 하지 마자 실언을 했음을 표정으로 드러낸다. 좌중이 일순 조용해진다. 시모는 득무를 한 번 쳐다보다가 급하게 일어서서 논으로 먼저 걸어간다. 곧 형철과 득무만이 남는다. 득무가 다시 한번 밥술을 들이밀자 형철은 입 안에 밥이 아직 있다고 그녀의 손을 저만치 밀어버린다. 득무는 주변을 한 번 살피다 형철에게 세게 꿀밤을 먹인다. 아이가 와앙 하고 운다. 놀란 득무는 조용히 하라며 아이의 입에 손을 가져다 댄다.
오후가 되어 명자가 도나쓰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득무를 찾아왔다. 득무는 부엌에서 일을 하다 말고 버선발로 반갑게 명자를 맞이한다. 달콤한 도나쓰가 입안 가득 들어차자 그제야 득무는 기분이 조금 나아짐을 느낀다.
“득무야 너도 들었지? 참말로 서울이 점령당한 건가? 국군 차들이 지나가면 곧이어 피란민들이 떼로 지어 나타난다 그러던디. ”
“설마…”
“지금 동리 경찰서가 싹 다 비었다는 얘기도 있더라.”
“… 전쟁이 났는데 도나쓰는 어떻게 가져온겨?”
“이상하지, 여전히 시장에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물건을 평소처럼 팔고 있어. 우는 아이들, 딱지 치기를 하는 코흘리개, 노점상들도 여전히 북적여. 길가에 핀 들꽃들도 그대 로고. 그냥 소문이었으면 좋겠는데”
명자는 울상이 되었다. 며칠 전 고모가 개울가에서 크게 넘어져 집에 누워만 있는 상태였다. 피난은 고사하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몸.
“일단 내가 서방님 오면 물어볼게. 정말 전쟁이 났으면 진즉 난리통이 됬겄지.”
밤이 되었다. 형철은 누워 자고 득무는 호롱불 아래에서 옷을 기우고 있다. 재원은 밤이 늦어져서야 집에 돌아왔다. 재원이 방으로 들어서서 헛기침을 한다. 득무는 재원에게 인공군이 내려왔다던디요? 라고 묻는다. 재원은 대꾸를 하지 않고는 세숫물을 받아 씻기 시작한다. 득무는 재원이 옷 옆에 놓아둔 책 표지를 바라본다. <<노력인민>>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선다.
며칠 뒤 국군 차량이 물밀듯 평택 동리 행길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술렁인다. 아이들이며 어른들 할 것 없이 국군 차량의 행렬을 바라본다. 더러는 박수를 친다. 득무 역시 논일을 하다 말고 요란하게 엔진 소리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국군 차를 바라본다. 득무는 선글라스를 쓴 운전병과 철모를 쓴 젊은 군인들의 모습에서 전쟁의 다급함 보다는 이상한 자유함을 느낀다.
“명자야 정말로 피란민이 올까. 군국이 정말로 쫓겨서 내려가는 거였을까?”
명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말로 그날 오후부터 피란민의 행렬이 평택 동리에도 들이닥쳤다. 돈을 받고 짐을 지어주는 지게꾼들도 있었고, 나무 바퀴차에 아이들과 짐을 가득 실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옷을 산처럼 꿰입고 단출한 짐을 들고서 제 발로 걸어오는 지치고 또 지친 사람들이었다. 피란민들은 서울 서부터 이곳까지 어떻게 내려왔는지, 어떻게 한강 다리가 폭파되었는지, 어떻게 제 어미를 잃어버리고 자기 아이와 헤어지게 되었는지를 사람들에게 전했다. 동리 사람들은 참말로 전쟁이 난 것이 맞다며 무서움에 떨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피난민들에게 헛간과 마당을 내어주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주었으며, 주먹밥을 지어 나누어 주었다. 아낙들은 낡은 옷을 찢어 상처가 가득한 아이들의 발을 감싸주기도 했다.
이튿날이 되자, 피난민 대부분은 다시 길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도 누군가는 벌써 짐을 싸서 피란길에 올랐다더라, 대구까지 가는 기차가 아직은 움직인다더라, 인공군이 이미 수원을 점령하고 오산으로 밀고 오고 있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재원은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일언반구도 없었다. 시모와 시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논밭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만 골몰해 있다. 득무는 찡찡대는 형철을 업고 마당을 계속해서 서성였다. 붓꽃이 소담하게 울타리마다 피어있었다. 계집애들은 득무네 마당 바깥에서 공깃돌을 가지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저들끼리 웃으며 장난질 중이고, 부뚜막에 올려놓은 장국에선 방금 넣은 풋고추의 시원한 냄새가 났다. 어느새 등허리에 업은 형철의 고개가 득무 등에 바싹 붙으며 쌔근쌔근 고른 숨소리가 났다. 새가 울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누군가는 동리를 급하게 떠나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 일이 없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50년 7월의 초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