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이야기
-오영-
커피 한 잔을 들고 내 오피스텔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일 잘하는 덩치 큰 사내가 준 노란 서류 봉투가 놓여 있었다.
“자~ 이제 직접 만나봤으니 서류를 찬찬히 뜯어볼 시간인가?”
일 잘하는 덩치 큰 사내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나의 친부와 친모 그리고 친부와 결혼한 여자, 그러니까 이영의 새엄마에 관해 아주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영이 태어나고 2년 뒤, 그러니까 갓 태어난 나를 두고 두 사람은 이혼했고, 그로부터 2년 뒤 친부는 새 아내를 맞았다고 적혀 있었다.
이영은 친부와 새엄마 사이에서 자랐으며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내가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제 사정이 매우 어려웠다고 적혀 있었다. 늘 빚에 허덕이고 있었고, 이영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상당한 빚이 그녀에게로 떠넘겨지듯이 넘어갔다고 적혀 있었다.
“이런 우라질.”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사회로 뛰어들어서 떠안은 빚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핸드폰이며 신용카드도 모두 이영의 명의로 쓰다가 체납되어서 이영은 사회적으로는 신용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이영은 상당히 밝았다. 음…… 뭐랄까? 이런 경제 사정 따위에 기죽지 않았다고 할까? 빚을 많이 진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특유의 어두움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 관계가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티 없는 그녀의 밝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이영의 서류를 받아보고 나서 그녀의 행적을 파악한 뒤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려 노력했다. 이영에게 미안하지만 소개팅 씨는 내 작전이었다. 이영의 친구와 소개팅하기로 한 남자는 바로 나였다. 그러니 친구는 당연히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이영이 말하자 놀랐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이영과 좀 떨어진 테이블에서 그녀가 무슨 책을 읽는지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어하면서 읽는지 이따금 음소거된 폭소가 터지기도 하고 또 처량하게 질질 짜기도 하는 모습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창피해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가히 가관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호주에 있는 우리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니 집 전화가 울릴 일은 거의 없다. 종종 한국에서 친척들이 걸려 오는 전화만 간간이 벨을 울리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전화벨이 울리고 아빠가 받으셨다. 먼 친척 누구와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것 같더니 이내 표정이 어두워지시곤, 방으로 들어가서 받으시겠다고 조용히 들어가셨다.
아빠가 내 앞에서 통화 내용을 숨기려 한 적은 살면서 거의 없었지만 가끔 있었다. 그 가끔마다 나는 궁금할 때면 몰래 전화를 엿듣곤 했었다. 그리고 그날, 왠지 쌔한 느낌이 들었다. 이 전화 내용만큼은 꼭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빠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거실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오영이는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까요. 저도 그렇게 말했는데 이 사람이 너무 막무가내라서요. 오영이가 자기 딸이라고, 그러니 연락처 좀 알려달라고.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겠다고요.”
“흠……. 예전에 다 정리된 사항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하무인이군요. 그래도 저와 제 아내의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당고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절대로 영이가 아빠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도 받았으니 제가 그냥 묵인할 수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다시 한번 단호히 전달하겠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너무 괴롭히는 사람이네요. 이 사람은. 그럼 모쪼록 잘 지내세요. 또 안부 전하겠습니다.”
아빠의 먼 친척이라고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이분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데, 늘 이 목소리로 전화가 오면 아빠가 서재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내가 입양되었다는 것도, 내게 언니가 있다는 사실도 모두 이렇게 엿듣는 세계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친아빠라고 하는 존재가 나를 찾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 마음을 먹었다. 내게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이 질기고 질긴 인연을 내가 찾아가 주겠노라고.
그로부터 일 년 뒤, 나는 학교에 입학하고 한 학기가 끝난 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진짜 그냥 호텔에서 괜찮겠어? 엄마 친구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떠니 우리 딸?”
“괜찮아, 엄마. 나 이제 성인이잖아. 그냥 한 달만 재미있게 지내다 올게. 요즘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 우리 딸 용감하지. 아빠는 믿어. 그런데 ‘술’만큼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어디서 술 마실 일 있으면 꼭 엄마에게 위치라도 알려주고. 알았지? 호주와는 달리 밤에 돌아다닐 수 있는 안전한 나라라지만 누구에게라도 위험은 닥칠 수 있는 거야. 내 딸은 현명하게 잘 행동하리라 믿는다.”
그때 엄마 아빠는 알지 못했다. 내 핸드폰 메모장에 흥신소 연락처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갈 거란 사실도.
이영을 만나고 나니 사실 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얘는 왜 이렇게 밝은 거야? 뭘 믿고?”
나는 비록 입양되었지만 나를 키워준 엄마 아빠는 나를 낳아 준 친부모보다 더 좋은 진짜 부모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담뿍 먹으면서 자랐기 때문인지 나는 꼬인 것 없이 반듯하게 잘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늘 마음 구석 어딘가에 우울함이 자리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하고, 살아남기 위한 눈치발을 내세워야 했다.
“검은 머리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지.”라는 소리를 한국에 있는 어른들은 곧잘 뱉었다. 나는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고, 우리 엄마가 아빠가 가장 듣지 말았으면 했다.
“집안을 이어 줄 사내도 아니고 계집애라니, 그 집은 자식도 없으면서 왜 그랬대요?”
어른들은 뒤에서는 당연히, 때로는 앞에다 대놓고 이런 소리를 했다. 그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마음 아파하셨지만 내가 상처받을까 봐 드러내 놓고 싸우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더 많은 기부를 하셨고, 더 많은 선행을 베풀며 사셨다.
이렇게 좋은 부모님과 사는데 왜 나는 이영보다 어두운 걸까? 아무리 좋은 입양 부모를 만나도 친부모와 사는 것이 아이에게 더 나은 걸까? 왠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티 없이 당당한 이영을 보면 왠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입양되어 자란 나는 움츠러든다. 나는 이런 내가 정말 짜증이 난다.
이영과 만나는 동안 찾아내고 싶었다. 너를 밝게 만든 면들을. 너와 내가 왜 이렇게 다른 건지.
나는 애초에 태어난 것부터가 이렇게 되먹은 것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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