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하면서 피아노나 오르간을 친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계속 피아노를 쳐왔던 나는 그냥 하던대로 하는 거라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쳤는데 문득 나같은 사람이 악기를 다룬다는 게 비장애인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주일 교회에 가면 오르간 앞에 앉는다. 이 오르간은 야마하 전자오르간인데 버튼이 오십 개가 넘고 밑에는 한 옥타브만큼의 페달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왔다. 오래 전에는 건반이 1단으로 된 오르간을 피아노 반주와 맞춰 쳤는데 누군가 이 오르간을 교회에 기증하여 내가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예배 장소를 서대문의 2층짜리 건물에서 바로 옆에 있는 오래된 옛날 건물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곳은 계단이 좁아 큰 오르간을 옮기기에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피아노만 옮기고 오르간은 옮기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때 나는 일종의 베팅을 했다. 오르간을 갖고 가면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오르간이 없으면 교회를 나올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강경한 내 태도가 이사를 준비하는 분들의 마음을 움직여 오르간은 좁은 계단을 통과하여 1920년대에 지어진 서울 문화유산의 2층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사 후 오르간은 좋으나 싫으나 매주 연주된다. 내가 쉬는 날 없어 열심히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르간의 바닥에 페달이 있는데 베이스 연주자가 없을 때는 페달로 베이스를 연주한다. 베이스 기타의 반주와 소리가 중복되면 연주할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주위의 악기에 따라 소리를 조율해야 한다. 악기가 전자오르간인만큼 다양한 소리를 변주할 수 있어 예배 때마다 그날은 어떤 분위기의 소리를 낼까 고민하면서 플루트나 재즈 기타 소리를 넣었다 빼기도 하고 곡에 따라 여러 개의 버튼을 누르며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선택한다.
피아노가 바로 옆에 있어 어떤 날은 예배를 준비하는 피아노 소리가 커서 오르간 소리를 정확히 듣지 못해 피아노 소리를 줄이는 페달을 밟고 연습해달라고 주문한다. 오르간 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없으나 내 청력이 닿는만큼 듣고 느낀다. 사람에 따라 청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모두 다르게 들리고 느낌도 다를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청력이 유난히 떨어질 때가 있다. 매주 예배가 끝나고 식사 전에 다음 주에 생일이 있는 교인을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데 이때는 오르간이 아니라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로 전주를 치면 “Happy birthday to you~” 노래가 시작되는데 내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낯설었다. 이어진 식사 노래도 음의 높낮이는 잘 들리지 않고 마치 드럼을 치듯이 건반을 박자에 맞춰 두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반주가 끝난 후 보청기가 헐거워진 채 꽂혀있는 걸 귀에 깊이 눌러 꽂아도 주위가 낯설게 느껴져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이렇게 컨디션에 따라 청력이 한없이 약해질 때 나는 죽음에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죽는다는 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상태인데 주위의 소리나 빛에 바로 반응할 수 없을 때 죽음을 느낀다. 그래서 늘 보청기를 뺀 상태로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잠들고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보청기부터 챙긴다. 이전보다 청력이 많이 약해져 전에는 어려움 없이 들리던 소리가 안들리는 걸 가끔 느끼지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보다 더한 청각장애인을 만나면 존경심부터 생긴다. 그 막막하고 조용한 세계를 어떻게 견디며 사는지 궁금하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우리 동네 농아인협회에서 하는 정기 총회에 참석할 계획이다. 자주 못나가서 아는 분은 별로 없지만 자꾸 얼굴을 내밀어야 익숙해지는 법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청각장애인분들과 수어로 많은 대화를 나누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