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러 당산역에서 9호선 급행을 타고 가다가 완행으로 갈아타기 위해 염창역에 내렸다. 선로 건너편을 보니 여의도-강남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회사가 공항 방향에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건너편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이 줄을 서려고 이동하는 게 보였다.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전동 휠체어로 지하철을 어떻게 탈까 걱정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공항에서 노약자나 유아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비행기를 먼저 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처럼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에서도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가 먼저 탈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체로 지켜지지 않는다. 두 다리로 잽싸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타지 못하거나 뒤로 밀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건너편 선로의 전동 휠체어에 탄 사람도 서 있는 사람들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 같았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전동 휠체어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나는 농인분이 거는 영상전화를 전담해서 받았는데 자주 전화를 하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었는데 휠체어의 배터리에 문제가 있었는지 A/S 업체에 대신 전화를 걸어 달라는 부탁을 자주 하셨다. 그분이 내게 영상전화의 화면에서 수어로 궁금한 내용을 말하면 나는 옆에 있는 유선 전화를 귀에 대고 서비스 센터 직원과 통화를 하면서 영상전화 화면 속의 그분께 통화 내용을 수어로 전달해드렸다.
영상전화를 자주 하다 보니 그분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는데 60대 중반 정도의 연세이고 새벽에 일찍 일하러 나가 오후에 퇴근하는 직업을 갖고 계셨다. 전동 휠체어로 이동하는 청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넓지 않아 무슨 일을 하시는지 혼자 상상해보곤 했는데 직접 묻는 건 실례인 것 같아 여쭤보지 못했다. 그분은 자신의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계셔서 새벽에 일하러 나간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셨는데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분 같았다.
장마철이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오후면 가끔 그분의 전화가 오곤 했다. 짜장면은 왜 비 오는 날 더 맛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분도 그랬는지 어느 비 내리는 오후에 전화하셔서 중국집에 주문 전화를 해달라고 하셨다. 직장에서 퇴근했는데 비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밖에 돌아다니기는 어려워 친구와 같이 집에 계신 것 같았다.
주문 내용은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에 참이슬 한 병. 처음엔 술을 같이 주문하는 게 생소해 참이슬이 맞냐며 다시 확인했는데 중국집에 전화하니 자주 받는 주문인 듯 직원은 그분 이름만 대도 주소를 척척 알아맞혔다. 주문했다고 전해드리고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하며 영상전화 속의 얼굴을 보니 세상에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런 날은 그 행복이 나한테까지 옮아온 듯 남은 하루가 괜히 넉넉하고 푸근했다.
업무로 연결된 관계라 따로 연락을 드릴 순 없었지만 비가 오는 날 전동 휠체어를 보면 그분 생각이 난다. 어제 같이 반가운 비님이 오시는 날, 맛있는 짜장면과 참이슬 한 잔을 친구와 나눠 드시며 늘 밝고 건강한 모습을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