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하고 신입직원 교육이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한 친구는 인터넷을 뒤져 작은 마이크와 연결하여 핸드폰 메모장으로 자막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기기를 사주었다. 덕분에 아주 요긴하게 썼는데 100% 완벽하지는 않아서 버퍼링이 걸릴 때면 이상한 문장이 길게 나오기도 한다.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업무를 하기 때문에 바쁠 때는 전화가 많이 온다.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직전 옆자리의 착한 과장님한테 업무를 배웠다. 그러고 얼마 후 그분도 바빠져 더 이상 일에 대해 물어보기가 미안해졌다. 전화가 많이 오면 다른 사람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일을 배울 수도 있다. 입사 초에 옆자리의 동기에게 '당신이 통화하는 내용을 내가 마이크로 연결해 자막으로 봐도 되겠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동기는 자신이 업무를 잘 모르는데 쩔쩔매며 통화하는 걸 들려주기가 창피했는지 안된다고 거절했다.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주위에 있는 사람이 다 듣는 내용이니 내가 마이크를 대고 자막으로 본다고 뭐가 다르랴 생각한 건데 동기의 입장은 달랐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고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리를 과장 옆으로 옮겼는데 이 분은 표준말을 또박또박 쓰는 데다가 아주 부드럽게 통화를 하는 분이라 옆에서 목소리가 아주 좋다고 생각하곤 했다. 전에 업무를 가르쳐주면서 자신이 민원인과 통화하는 걸 보고 배우라고 몸소 통화하는 걸 옆에서 보게 해 준 적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 분이라면 마이크로 자신의 통화 내용을 듣는 걸 허락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내 업무를 다 마쳐놓은 후 과장님한테 "제가 마이크로 과장님이 통화하는 내용을 녹음해서 자막을 보며 업무를 배우고 싶은데 괜찮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분은 망설이지도 않고 그러라고 괜찮다고 했고 마이크를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서 옷의 앞섶에 꽂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직원들의 자리 사이에는 높은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있는데 나는 옆 자리의 정리되지 않은 물건을 보면 정신이 산만해진다는 이유로 가림막에 종이를 덕지덕지 붙여 독서실 칸막이처럼 만들어 놓았다. 내가 그렇게 하자 과장님도 이런저런 자료들을 붙여놓아 각자 자기 자리에 앉으면 옆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핸드폰의 메모장을 열었다. 메모장의 마이크 표시를 누르면 과장님이 말하는 내용이 메모장에 저절로 기록이 된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통화 상대방의 말은 기록이 되지 않으니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과장님의 설명을 자막으로 읽고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안내를 하는지 배운다. 세 통화 정도를 그렇게 학습하고 과장님한테 메모장에 기록된 내용을 보여주니 처음엔 이게 뭔가 하고 읽는다. 나중에 본인이 말한 내용이란 걸 알고 어떤 민원인이 뭘 물었는지 내게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땐 어떻게 해서든지 일을 배워야 한다는 결기에 다른 사람을 귀찮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싸늘한 반응이 날아온 적도 있다. 하지만 아쉬운 사람이 나여서 털어버리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됐다.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고민했을 것 같다. 도와준 분들 덕분에 나는 귀가 안 들린다는 걸 크게 의식하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듣지 못하면 써서 보여주면 반응할 수가 있기 때문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먼저 알려준다.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말은 ‘저는 청각장애인이라 잘 듣지 못한다’는 말 뿐이지만 길게 말하거나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면 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단어 외에 다양한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사람들은 나를 재미있어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나도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세상에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