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라 회사에서 직원과 직원 가족을 초대해 연극을 보여준다고 한다. 가족이 없는 사람은 친구와 같이 와도 되고 혼자 봐도 된다. 이렇게 회사 차원에서 문화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생기면 업무 능률이 높아지고 연극인들에겐 관람객이 많아져서 좋다.
가족이 모두 바빠서 같이 갈 사람이 없는 나는 아는 언니와 같이 가기로 했다. 늘 그렇듯이 대사를 알아들으리라는 기대는 접었다. 연극은 대사가 많아 배우들이 빠르게 말한다. 무대가 멀어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다. 간혹 운이 좋으면 연극을 보기 전에 대본을 구할 수 있을 때가 있다. 영상자료원 같은 곳에 대본이 있으면 그걸 빌리거나 친절한 연극 관계자와 연결되어 혼자 보는 조건으로 대본을 받아서 미리 읽고 연극을 본 적이 있다.
대사를 화면에 따로 띄어주면 나 같은 청각장애도 연극을 볼 수 있겠지만 연극은 대체로 청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다. 나 같은 사람까지 배려하자면 비용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번거로운 일이 한둘이 아닐 게다. 그래도 한 번 시도나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회사의 행사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대본을 구해달라고 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 담당자는 대본을 연극 관계자가 주지 않을 거라고 한다. 지레짐작이다. 내가 받아본 적이 있다고 말하며 안 되더라도 부탁이라도 한 번 해봐 달라고 했다. 혹시 아는가, 나 같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 대본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을지. 그냥 얘기하지 말고 청각장애가 있는 직원이 있어서 그런다고 꼭 말해달라고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일이니 생각한 대로 안 돼도 상관없다.
지난주엔 아는 분이 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했다며 상영관을 빌려 영화를 같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사를 알아듣기가 어려워 멍하니 앉아 끝까지 보고 나왔는데 누군가 내게 내용을 알아들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나중에 영화감독을 붙잡고 하소연하며 내용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고 하니 그분도 아쉬워하며 영어자막이라도 띄울 걸 그랬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같은 동포 중 못 듣는 사람은 안 챙겨주고 외국의 영어 쓰는 사람만 챙긴다고 투덜거리니 그냥 웃는다. 다 이해한다. 해외 영화제에 출품할 생각으로 영어자막을 넣었을 테고 한국에 있는 나 같은 청각장애인이 영화를 알아듣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입장을 바꿔 나라도 그랬을 거 같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영화나 연극을 듣고 같이 감상을 나누고 싶다. 그런데 한국말로 나오는 대사는 못 알아들으니 꼭 봐야 할 것 같으면 혼자 갈 수밖에 없다. 한국 영화를 청인과 같이 보게 되면 영화가 끝난 후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물어보느라 바쁘다. 그래서 괜히 미안해진다. 극장에서 하는 영화 중에 잘 만든 해외 영화가 많아서 다행이다. 영화 자막이 있으면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 남들과 똑같이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가치봄 영화’나 ‘동시관람 영화’ 같은 게 생겨서 한국영화도 수어 자막 영상을 넣거나 자막이 보이는 안경을 쓰고 관람하는 식으로 청각장애인이 한국영화를 어려움 없이 보는 제도가 생겼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영화관에 가서 볼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지만 곧 가능해질 거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 좀 더 늦게 태어났다면 여러 가지 좋은 복지혜택을 받고 덜 차별적인 세상에서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거라도 어디냐 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