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닌 때

by 운틴


호텔 같은 곳에 혼자 머물게 될 때 생기는 감정은 재난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다. 평소 화재 뉴스를 보면 ‘내가 저곳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숙소에 혼자 있을 때 화재 경보를 못 들으면 어쩌나 하며 밖에서 불이 났다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어 피신을 못하게 될 경우를 상상해 본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소리를 듣고 탈출했는데 타는 연기가 문틈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가 돼서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럴 때 화재감지기나 연기감지기의 소리를 핸드폰에 체크해 두면 비상시에 핸드폰의 알람이 작동한다. 그리고 그동안은 불이 났을 때 농인이 119로 신고하면 접수자가 수어를 통역해 주는 손말이음센터 직원에게 연락하여 3자 대화를 통해 화재신고를 접수할 수 있었다. 불이 번지고 있는 급한 상황에 화재를 접수하는 것도 바쁜데 소통이 안 돼서 통역사를 부르는 시간이 필요하면 그 사이에 화재가 더 크게 번질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농인도 바로 119로 신고가 가능하게 바뀌었다.


화재경보 외에 사이렌, 연기경보, 가전기기 소리, 초인종, 노크 소리에 핸드폰이 알람을 울릴 수 있도록 체크해 두었다. 이 외에도 유리 깨지는 소리, 주전자 물 끓는 소리, 흐르는 물소리(수돗물 틀어놓을 때), 아기 울음소리, 고함 소리에 반응하게 할 수 있고 그 외에 개인적으로 추가하고 싶은 소리가 있으면 따로 등록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시각장애인이라면 알림이 문자로 뜨지 않고 음성으로 들릴 텐데 이렇게 세세하게 말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면 안심이 될 것 같다. 매일 화장실 불을 켜놓고 나오는 남편에게도 불을 끄라고 말해주는 AI가 있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우리는 로봇 도우미를 곁에 두고 의지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우리 집 가스밸브에는 타이머가 설치되어 있는데 30분짜리다. 소방서에서 안전장치로 설치해 주었다. 가스밸브 타이머는 무슨 요리를 하던지 30분이 되면 저절로 잠긴다. 요즘은 사골 곰국을 끓여 먹지 않지만 냄비를 가스에 올려둔 걸 잊어버려 냄비가 탈까 봐 걱정할 일은 없다.


지금은 이 정도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어 실시간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문장으로 번역하거나, 언어장애인이 문장으로 입력한 글을 음성으로 바꿔주는 등 장애인이라는 걸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기기들이 우리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은 진정한 사이보그의 반열에 오르게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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