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성찰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by 박동현

[마음속으로 깊이 반성하여 살피는 것. 순화어는 `돌이켜 봄', `깊이 살핌'.] 성찰의 사전적 정의다. 자신의 행동, 심리,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며 개선점을 찾아나가는 깊이 있는 행위, 모든 생명체는 이 과정을 겪으며 진화를 거듭했다. 성찰의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인간이라는 종은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었다.


아름 프로젝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다면 바로 성찰일 것이다. 나에게 성찰이라는 행위는 결국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타인의 말이 되었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되었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곧 성찰이며 이 성찰을 통해 몰랐던 나 자신의 새로운 부분을 알아갈 수 있다.


벌써 3개월이 지났다.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관람하고 그것에 대한 해석과 감상을 글로 옮겨 적은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부터 시작해서 생전 관심 없던 방송 작가의 삶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지켜보고 나만의 해석을 풀어나갔다.


지난주 금요일인가, 쇼팬하우어의 인생 수업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신의 마음, 육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가치 있게 사용하라는 것이다. 좀 더 쉽게 풀자면 나 자신을 사랑해 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오늘의 주제인 성찰이 필요하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대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랑할 수는 없다. 대상을 알고 있기에 그 대상의 특정 부분에서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의 요지는 결국 이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을까? 아예 모를 수도 있고 단편적인 부분만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썩 좋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특정 부분만 보고 하는 사랑은 금방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짝사랑 상대의 얼굴만 보고 좋아하다가 그의 더러운 성질머리에 상처를 받고 쉽게 떠나가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알고 있다면 무심코 튀어나온 본모습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폭넓은 성찰은 나조차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오늘 진로 상담을 받으면서 다양한 선생님의 질문들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뭔가 욕구도 있고, 분명한 의지도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구체적으로 그게 뭔지 물으면 제대로 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선생님은 내 안에 무언가 불안 요소들이 존재한다고 했고, 파국화라고, 상황을 극단적으로 인식하는 기질이 보인다고 알려주셨다. 그 자리에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고 지금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현재로서 추측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원인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무지에 있다.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오늘 다시 느꼈다. 솔직한 내 욕구, 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무엇을 할 때 보람찼는지 막상 이야기하려 해 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금요일에 읽었던 소팬하우어의 책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 뭔지 흐릿한 비전을 떠올렸다면 오늘은 그 흐릿하고 투박한 비전이 조금 더 기틀은 잡았다고나 할까.


성찰이 아직도 부족하다. 조금 더 나 자신을 연구하고 공부해야겠다. 수많은 내 고뇌와 고찰의 시간들이 알려주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스스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지에 있다고 말이다.


결국 인생이란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인간이 한평생을 살아도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 대화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경험 상 그런 행위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과 다른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함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


내가 계속 새로운 이야기들을 감상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나 자신을 계속 성찰하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 아름 프로젝트 관객 편도 8화째 왔다. 슬슬 목적의식이 불분명해지기 좋은 시기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잡을 계기가 마련된 김에 성찰을 주제로 글을 썼다.


오늘 받았던 상담은 결국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생각보다 아직 나는 나 자신과 그렇게 친한 것 같지 않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분명히 해두자.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결국 나 자신의 성장이며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기 위함이다. 이쯤에서 2차 정의를 내리겠다. 동시에 오늘 관람한 나의 대한 한 줄의 감상평이다.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그리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에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정말 많은 사람이다. 흡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가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조차 너무 과도하게 받아들여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본을 따라 좋은 것은 흡수하고 나쁜 것은 배척하는 자세를 조금씩 배워나가는 중이다.


나는 느린 사람이다. 배움도, 이해도, 설명도, 모든 것이 느린 사람이다. 하지만 느린 만큼 확실하고 또 단단한 사람이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도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니 개인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수십, 수백, 수천 명에 의해 계승되고 계승된 것이 지금의 지식이다. 그 지식을 공부한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고 또 증명할 수 있다.


새로운 목표, 아니 동기가 생겼다. 무슨 일을 하든,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라 여긴다면 더욱 열심히, 또 의미 있게 그 과정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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