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함에서 오는 초조함, 무한함에서 오는 용기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있다. 시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평등하게 주어진다. 1분은 60초, 1시간은 3600초, 1일은 86400초, 매일,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 관객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지도 어언 석 달이 다 되어가는데, 요즘 들어 가장 노골적으로 느끼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올해 4월, 70kg을 찍고 한껏 해이해져서 다시 8kg가 불어났다. 서서히 튀어나오는 배를 보며 3km가 넘어가는 거리에 위치한 국민체육센터 회원권을 다시 끊었다. 운동을 하다 보니 문득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된다. 작년 12월 중순, 나는 신체적 건강을 되찾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었다. 식단부터 운동까지 한 달간 죽을 만큼 열심히 했고, 내 인생에서 평생 되돌아봐도 반박할 여지가 없는 최고의 판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운동에 열중했고 체감되는 변화도 상당히 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측정하긴 했지만 몸무게를 측정할 때마다 1~2kg씩 빠져있었으니까.
지금은 마냥 그렇지도 않다. 살이 빠지는 건지 찌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운동을 해도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초조해진 마음 탓에 자꾸만 체중계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들고 못 이겨서 올라가면 끽해봤자 몇백 그램 감소한 미미한 결과에 실망하기 일쑤다.
2025년 한 해는 유난히 빠르게 지나갔던 것 같다. 이제 올해도 2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느낄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변한 건 없는데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만 한다. 강물에 나뭇잎이 힘없이 휩쓸려가는 것처럼,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 나는 너무나 무력하게 휩쓸린다.
결국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 이 사실이 우리를 시간의 흐름에 휩쓸리게 한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언제 끊길지 모르는 시간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또 빠져나간다. 그러니 막 쓰는 것이다.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때우든, 게임을 하든, 온라인에서 생산성이라곤 전혀 없는 문자를 주고받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다 지나서 후회하고 또 자신을 원망한다. 나는 안 그러냐고? 안 그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시점을 분리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서운 일이다. 시간의 흐름 자체를 감상한 대가로 정말 많은 시간을 허탕하게 날렸다. 2024년이 그랬고, 2025년이 그랬다. 2년 동안 나에게 남은 게 뭔가. 2년 동안 내가 찾은 건 무엇인가, 도대체가 어째서 맨날 반성만 죽어라 하고 변화는 하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다, 몸에 해로운 것을 끊고 싶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욕구를 향해 달려가는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하나같이 제대로 성공한 적은 없다. 여전히 스마트폰 중독, 군것질 중독을 달고 산다. 군것질 중독 끊기를 시작한 지 2주 차 되시겠다. 2주간 벌써 3번이 깨졌다. 또 언제 깨질지 알 수 없다. 스마트폰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오늘도 원래 도서관 도착하자마자 덮고 글을 써야 했지만 2시간을 스마트폰 보느라 날려버렸다.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는 게 현명하고 지혜로운 걸까, 시간의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면 고민조차 들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쪽이 마음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과 군것질, 그 외 의미 없는 오락, 쾌락을 위해 목적 없이 시간을 남발하는 행위, 그것은 내 자의로 이뤄지는 것일까? 우선순위가 압도적으로 높은데 대학생들은 과제를 할 시간에 술을 마시고 미팅을 하며 쾌락을 좇는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자의가 맞는 것 같다.
무언가를 남기면 의미 있게 사용한 것일까? 그럼 온라인 게임 기록을 새롭게 세우는 것도 분명 무언가를 남긴 것인데 왜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결국 정답은 없다. 빌어먹을 또 이 결론에 도달한다. 왜 궁금한가, 아무도 답을 모르는 문제를 붙들고 놓질 않는 이 미련함이 답답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불안하다. 인생 자체가 끝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렇게 마음 편하게 뭘 하면서 살까, 고민할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 불안한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보고 싶지 않다. 이번 이야기는 보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봐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난 그걸 조금 빨리 본 셈 치겠다.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운동이 제일 간단한 예시라서 자꾸 들게 되는데 1년 전에 나는 10kg을 뺀다, 그리고 몇 주쯤 지나서 해볼 만하니 4개월 만에 복근을 만든다는 목표를 또 세웠다. 명확한 목표와 기간을 설정하고 일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보니 처음 몇 개월은 끝내주게 열심히 한다. 거의 2달간 살도 많이 빠지고 몸에 근육도 붙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10kg가 빠진 그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초기 목표를 달성하자 한껏 해이해지고 긴장도 풀렸다. 운동 강도도 약해지고 식단도 허술해졌다. 한 번 무너지니 우르르 무너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쉽게 시작했다. 6시 기상부터 시작했다. 이것도 만만치 않은 목표지만 1년 전에는 의지 하나로 6시 기상, 개 산책, 아침 운동을 한 번에 병행했다.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때 즈음 강아지하고 집 근처 한 두 바퀴를 도는 것으로 아주 조금씩 강도를 높여나갔다. 그 짓을 한 달하다가 최근 들어서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평생 한다는 마인드로 뭐 10kg이 빠지던, 20kg이 빠지던, 아니면 오히려 살이 더 찌던, 그건 내 알바가 아니고 나는 매일 5시 50분에 기상해서 헬스장이던 공원이던, 집안이던 운동을 하루에 한 번은 꼭 하겠다. 그리고 하루에 한 끼 이상은 식단을 해보겠다. 기간은 죽을 때 까지다. 내게 주어지는 시간을 한 번 올인해 보겠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힘들다. 잘 안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이렇게 투정도 부린다.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만큼 몰입하기 쉬운 게 어디 있을까,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며 깊이 몰입했던 것 같다.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타인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나는 아직 내 삶에 대한 이야기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아직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훨씬 많다.
그래, 이번 이야기의 교훈을 정리해 보자면 시간을 한 곳에 올인해 보라는 것이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핑계다. 나에게는 시간이라는 자원이 있다. 관객이라는 역할을 받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으면 죽어라 열심히 감상하고 지켜보겠다. 모든 시간을 무언가를 보는 것에 투자하겠다. 유혹도 많고 흔들림도 많다, 주저앉아버리는 순간은 앞으로도 골백번은 넘게 닥칠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날에는 새로운 86400초가 주어진다. 그걸 받아서 계속 시도해 보면 된다. 미친 짓이 아니냐고? 언제는 안 미치고 살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