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시기에 맞춰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새 봄과 여름을 지나 열매가 결실을 맺는 계절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저곳에서 낙엽이 떨어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황빛, 붉은빛으로 단장한 산봉우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풍요롭고 든든한 계절, 하지만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외로운 계절, 가을은 그런 계절 같다.
봄은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시작의 설렘과 희망찬 분위기, 여름은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생명력을 과시하는 뜨거운 분위기, 가을은 추수의 계절로 풍요롭지만, 추수를 앞두고 점점 시들어가는 모든 것들이 느껴지는 조금은 씁쓸한 분위기, 겨울은 모든 생명이 잠에 들고 1년의 시간이 하얀 백지로 돌아가는 외롭고 고요한 분위기, 계절마다 피는 꽃도, 자라는 식물도, 즐길 수 있는 활동도 각기 다르다. 시간의 흐름을 가장 직관적이고 와닿게 보여주는 지표, 그것이 바로 계절이라 하겠다.
옛 우리 선조들은 계절에 맞춰 살았다. 봄에는 씨를 심고 여름엔 냇가에서 더위를 식혔으며 가을에는 한 해 농사에서 맺은 결실을 추수하고 겨울에는 비축한 양식으로 다시금 봄이 오길 기다렸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때와 시기에 맞춰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다.
마음이 무척 편하다. 모든 것에 때와 시기가 있다고 한다면 그때와 시기가 올 때까지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된다. 봄에 씨를 뿌려 가을 때 추수를 준비하고, 가을에 맺은 결실로 긴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그런데 가끔, 때와 시기에 맞지 않는 준비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약 추수를 빨리 하고 싶어서 한겨울에 씨를 뿌린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추수 때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땅에서 씨앗이 얼어 죽는 바람에 추수 때가 되어도 그 사람은 아무 결실도 맺을 수 없을 것이다. 겨울은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리며 1년간 고생한 몸을 쉬게 하는 계절이다. 모든 것을 멈추고 잠시 쉬어야 할 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을 계속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수도권에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심하면 유치원생 때부터 10년 후 배워야 할 내용들을 미리 학습하지만 그중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보이는 아이들이 극소수인 것도 위와 같은 이유다. 아이들은 그 나이대에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또, 그 나이대에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미적분 수학, 고전 문학의 독해 같은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시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억지로 때와 시기에 맞지 않는 준비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사를 망치는 제일 빠른 방법이다.
물론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유치원 때부터 중등, 고등 수준을 마스터하고 대학에 조기 입학하는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으니까. 그들은 남들보다 자신에게 맞는 때와 시기가 빠르게 찾아온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개인의 인생에게 찾아오는 때와 시기는 결국 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에게 똑같이, 공평하게 찾아오는 계절과는 달리 우리 인생에서 씨를 뿌려야 할 봄이 언제인지, 더위를 피하고 밭의 잡초를 관리해줘야 하는 여름은 언제인지, 농사를 마치고 추수를 시작해야 하는 가을이 언제인지, 추수한 곡식을 쌓아놓고 한 해간 고생한 몸을 쉬게 할 겨울은 또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각자 인생의 계절은 모두 다르게 찾아온다.
누군가에게는 5살에 씨를 뿌려야 하는 봄이 찾아올 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15살, 혹은 20살에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을 비유할 수 있는 단어는 참 많다. 누군가는 기나긴 여행이라고도 말하고, 누군가는 한 권의 이야기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뿌린 만큼 거두는 거대한 규모의 농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맨 처음, 그러니까 인류가 최초로 농사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인류는 단순히 본능에 의지해 계절을 보내는 것을 넘어 조금 더 풍족하고, 조금 더 안전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때와 시기를 준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단순히 몸으로 직접 겪으며 즉각적으로 계절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학습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정한 징조를 보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시간의 단위다. 초, 분, 시, 일, 월, 년 까지 우리는 11월 즈음에는 나무에 있는 잎사귀가 색을 바꾸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알고 있다. 수 천년, 아니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반복된 법칙, 그 패턴을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우리의 인생을 농사에 비유했는데, 농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하면 바로 때와 시기를 알려주는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언제 씨를 뿌려야 할지 모르고, 언제 결실을 맺은 작물을 거둬야 할지 모른다면 농사를 할 수 없다. 행동할 때와 시기를 아는 것이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하겠다 마음먹는 것은 농사로 치면 재배할 작물을 정한 것이다. 내가 벼를 심기로 마음먹었다면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싹을 틔워 미리 만들어둔 모종을 논밭에 심는 모내기 작업을 해줘야 하고 6월부터 시작되는 여름에는 무성해진 잡초와 벌레로부터 계속 보호해줘야 한다. 그리고 11월 중순쯤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갈 때 비로소 한 해간 땀 흘린 보상을 받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겠다 마음먹었다면 이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때와 시기에 맞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감이 안 잡히기도, 이해가 잘 안 되기도 한다. 심지어 운이 나쁘면, 아니 거의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목표를 이루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 인생의 농사는 정말 망한 것일까? 겨울이 오더라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기다리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봄은 돌아온다. 다시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을 수 있는 계절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그때 실패를 밑거름 삼아 다시 시도하면 그만이다.
항상 점검해야 할 것은 내가 나에게 맞는 때와 시기를 알고 있을까?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을 다 준비했는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류가 살아온 기나긴 역사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축적된 빅데이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본인이 모르는 대부분의 의문들은 그 빅데이터에 이미 정답이 기록되어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맞는 때와 시기를 찾는 것에 집중하고, 그때와 시기를 알았다면 무엇을 심을지, 즉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한다. 이 두 가지 작업을 완료했다면 그다음부터는 계속 시도해 보면 된다. 누군가 수천 수백 년 전부터 시도하고, 수없는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찾아낸 빅데이터에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는 이미 너무 많이 존재하니까.
한 번, 두 번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다음 농사를 준비하며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약점을 보완하며 다시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면 그만이다. 농부들은 매년 농사를 짓는다. 우리 외가만 해도 벌써 50년은 넘게 농사를 짓는 중이다. 만약 우리 외조부와 외조모께서 한 해 농사를 망쳤다고 다 때려치우셨다면 무슨 수로 우리 엄마를 포함한 자식들을 전부 훌륭한 어른으로 키워냈겠는가.
몇 년 동안 흉년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실패가 연속될 수도 있다. 그때는 작물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배추 농사를 5년 동안 지었는데 5년다 흉작이라면 이번에는 상추를 키워보는 것이다. 가끔은 상상치도 못했던 분야의 목표가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이끌어주기도 하는 법이니까.
모든 것에는 때와 시기가 있다. 모든 일이 잘 되고 생활에 부족함이 없이 풍성하다면 인생에서 가을이 왔다는 뜻이니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자원을 비축한다면 겨울조차 풍족하고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인생이 힘들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면 그것은 인생에서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그럴 때 엎어져 있으면 얼어 죽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하자. 씨앗을 사 모으고 다음 해 농사 계획을 세워보자.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 봄이 왔을 때 다시 힘을 얻어 그 해 가을에는 분명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계절이 봄이던, 여름이던, 가을이던, 겨울이던, 해야 할 일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다가올 다음 계절을 열심히 준비해서 성공했다면 그 성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패했다면 그 실패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계속 준비하고, 시도하고, 보완하자. 그렇게 언젠가 곳간에 곡식이 가득 차서 평생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을 때까지 나도, 여러분도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