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우유급식이 있던 시절, 초등학생 사이에서 제티가 유행이었다. 제티를 갖고 온 아이는 그날 인기스타가 된다. 다들 그 제티 가루를 코딱지만큼이라도 얻어보고자 온갖 플러팅을 한다.
나도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어보고자 제티를 몇 번 가져갔다. 역시나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샀다. 그날 점심시간 맛있는 것이 나왔고, 그걸 조금이라도 더 얻어먹겠다고 급식당번 아이와 제티로 협상을 했다.
다음날, 제티를 사다 준다는 것을 깜빡했다. 1개 주기로 했던 제티는 2개로 늘었다. 엄마에게 용돈을 타야했기에 일주일이 늦었다. 마치 불법 사금융처럼 1개였던 제티는 금세 10개 이상으로 불었다. 내가 주기로 약속했던 건 1개라고 항의하며 1개만 주고 이자(?)로 불어난 개수는 주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생이 됐다. 예비소집일날 걔는 많은 애들이 보는 앞에서 날 발로 찼다. 입학을 하고 매일 같이 돈을 내놓으라며 우리 반을 찾아왔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늘어난 제티 빚 때문에 불법추심과 같은 학교폭력을 당해야만 했다. 그 아이는 우리 집에도 찾아올 기세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집에 찾아오는 것이 더 나았다. 된통 부모님한테 혼났더라면 일이 커지지도 않았을 것 같다.
매일 같이 협박 당했고, 나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또 엄마가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혼자 울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나는 내 통장을 꺼냈다. 부모님 허락도 없이 혼자 은행에 가서 20여만원을 인출했고, 걔한테 건넸다.
500원짜리 제티가 20만원으로 불었다. 나는 돈을 빼앗겼단 분함 혹은 무서움보다 그 괴롭힘에서 해방된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도 없다고 했나. 며칠 지나지 않아 엄마한테 걸렸다.
지금도 우리엄마의 취미는 자식 가방 탐방이다. 내 가방엔 온갖 엄마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 많다. 가끔씩 나에게 눈빛을 보내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키링이나 펜을 주기도 한다.
그날도 엄마의 기습 가방점검이 있었고, 그 속에 들어있던 내 통장을 걸렸다. 나는 잽싸게 숨겼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통장 속 얼마 남지 않은 잔고가 들통났다.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한테 수없이 혼났지만, 그때 정말 많이 혼났다. 그리고 같이 많이 울었다.
엄마가 걱정할까봐 숨겼던 사실이 도리어 엄마에게 상처를 줬다. 그렇게 나의 학교 폭력 사실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나는 보복이 두려웠다. 이제야 괴롭힘에서 해방이 됐는데. 다시 지옥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학폭위 소집이 결정되기 전, 모두가 모였다. 나, 그 아이, 동조했던 아이, 걔네들의 부모님, 우리 부모님, 선생님까지. 그 아이 부모님은 본인들이 잘못 가르쳤다며 내 앞에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우리 아빠는 그 아이를 혼냈다.
"너가 잘못한 건 돈을 뺏고 괴롭혔다는 것도 있지만, 너희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거다"
내 앞에서 당당하게 괴롭히고 일진 행세를 했던 걔는 어른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겁 먹은 양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아이도, 그 아이의 부모님도 진심으로 사과했다. 우리 부모님은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또다시 협박을 하거나 보복을 하게 된다면 가중처벌을 하되 학폭위는 열지 않기로 했다.
보복을 두려워했던 나를 걱정한 부모님의 결정이었다.
그렇게 난 빼앗겼던 20만원을 돌려받았다. 모이기 전, 애들에게 헛소문을 퍼트리고 협박을 했던 그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서로 봐도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그렇게 3개월의 지옥같았던 생활이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