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크기가 아니라, 마음으로 채워진다.
어린아이들이 왜 의자와 의자 사이를 이불로 덮고 안에 들어가서 노는 것을 좋아할까?
나도 어릴 때 참 이렇게 자주 놀았었다. 아늑하고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이 생긴 기분이랄까?
한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이유는 간단했다. 아이들은 어릴 때 엄마 뱃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듯이, 자신의 몸집에 비례한 작은 공간에서 아늑함과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 이러한 놀이는 몸이 커질수록 안 하게 되는 것도 그 이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 나의 집을 엄청 크게 기억하고 있다. 사실상 10-20평대의 작은 빌라였지만, 어릴 때 내 기준에서는 엄청 크고 넓어서 집안을 마구 뛰어다녀도 남을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키웠던 '둘리'라는 강아지도 엄청 크다고 기억해서 기억 속에서는 레트리버 보다 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께 물어보니 그 강아지는 지금 키우는 강아지보다도 작은 중소형견에 속했다. (6kg 정도)
이렇게 공간과 크기는 나의 몸에 비례하여 상대적이란 걸 알았다.
독립을 하고 싶던 20대 초반의 나는, 4명의 가족과 함께 살던 작은 빌라가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
차라리 작은 원룸이라도 혼자 사는 게 나에게는 더 숨통을 틔워주는 듯했다. 사실 그때는 나만의 장소를 가지고 싶었다기보다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독립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와 동생은 같은 방을 쓴 적이 많았다.(가끔 나 혼자 방을 쓸 때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거실이라곤 없어서 보통 안방에서 같이 tv를 보곤 했다. 이때는 이게 당연한 건 줄 알고, 가족들과 함께 잘 지냈다.
그런데, 왜 갑자기 20대 초반에 이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였을까? 갑자기 지난날들의 내가 너무 부족해 보이고, 우리 가족이 참 작아 보였다. 그때 나는 몸이 큰 걸까, 머리가 큰 걸까?
혼자 독립을 알아보던 찰나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우리 같이 이사 가자"
가족을 두고, 나 혼자 독립해서 잘 산다고 내 인생이 행복했을까? 이 생각은 못하고, 나만 살아보려고 애썼다.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우리 가족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비록 20년을 넘게 산 동네를 떠나야 했지만, 이전에 살던 집의 몇 배는 큰 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직장인이 된 나는 우리 가족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만큼 큰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난 행복해졌는가?
넓은 집에, 거실도 있고 내 방이 독립적으로 있는 곳에 살면 나는 더 이상 불행할 일도 없고,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사실상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작은 집에서 살 때가 불행하지도 않았다. 작은 공간인 만큼 우리를 더 가까이 함께하게 해 주고, 자주 웃게 해 줬다.
나이가 들면서인지,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지 가족들과 같이 살면서도 얘기할 기회가 흔치 않다. 오히려 톡으로 더 자주 얘기하곤 하는데, 이건 집이 넓어져서 멀어진 것도 아니고, 집이 좁힌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만 더 사랑하고, 더 아끼는 마음을 이제는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공간, 집을 탓할게 아니라 모든 건 마음으로 채워진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작은 집에 살 때, 나를 미워했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도 이 친구가 나를 미워하는지 몰랐는데(?) 같은 빌라에 살면서, 우리 집에서는 늘 웃는 소리와 가족들이 함께 이야기하는 소리가 밖으로 들리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네서는 아무 소리도 안들리거나 누군가 혼나는 소리가 자주 들리곤 했다.
같은 작은 집에서 살면서, 공간을 채우는 건 사람이고, 마음이었다. 집의 크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그 친구는 이런 우리 집이 부럽지 않았을까? 나중에 와서 생각해 봤다.
공간, 집이란 몸에 비례하여 상대적이기도 하지만, 이를 채우는 건 마음이구나.
엄마 뱃속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진 아기처럼, 우리는 공간을 마음으로, 사람으로 채워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된 요즘이다.
여러분은 어떤 집에서 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