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새 책방 둥지의 문장들
"하늘의 힘이 조금 필요합니다."
미실의 이 대사를 나는 참 좋아한다. 주님의 음성이나 계시, 소명 같은 종교적 단어로는 그 느낌을 다 표현하기 어렵다. 주님의 음성이 꼭 알아내 실천해야 하는 의무같이 느껴진다면 하늘의 힘이나 우주의 기운은 거저 주어지는 행운처럼 느껴진다
아주 오랫동안 하늘의 힘이 나에게 붙기를 간절히 원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엘리오의 한 장면처럼 하늘의 힘을 받기 위해서라면 넓은 바닷가에 픽미라고 적고 그려둔 원 안에 들어가 팔을 벌리고 누워 있을 수도 있다. (우주인이 자신을 선택하기를 기다리던 엘리오를 보며 눈물을 질질 흘렸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겠지.)
이번 주말에는 누워서 머리로 글을 썼다. 아니. 사실 지난 수요일부터 내내 쓰고 있다. 동화 스승님이 내주신 숙제를 풀기 위해서다. 마감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참 다행이다. 나는 쫓기고 쫓겨 결국은 오늘 저녁까지 이야기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아내겠지만 어쨌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머리로 동화를 쓰고 있다. (멀티는 뇌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던데. 가끔은 뇌가 두 개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쓸 때는 하늘의 힘과 우주의 기운을 모두 알아차리기 위해 안테나를 켜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안테나를 펼쳐서 뽑아 먹을 수 있는 것을 쏙 뽑아 글 속에 녹여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대단한 안테나를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고등학생 때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 이어폰을 끼고 길을 걸으면 내가 선곡한 음악과 거리의 풍경이 마법처럼 들러붙으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거 같은 기분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내가 영화를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천재는 아니지만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글감을 찾아내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니, 이것은 확신보다 자기 선언이다. 우주의 기운은 쌍방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늘 내 쪽에서도 기운을 보내야 한다. 그러니 나는 그런 사람이다.
수영장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온 세상 수영장 이야기가 내 앞으로 다가와 나를 써요! 나를 써요! 한다. 복도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세상 모든 복도들인 서로 자신이 글감이 되겠노라 나선다. 하지만 우주가 보내는 글감을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시 우주의 기운이나 하늘의 힘을 조합하여 글로 담아내는 것은 나의 역량이다.
나는 오늘도 공부하기 싫은 나의 공부방 학생처럼 지울 필요도 없는 공책을 벅벅 지워 지우개 똥을 모으고 있다. 모아진 지우개 똥을 뭉쳐 똥도 아니고 점토도 아닌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오늘 저녁 스승님께 숙제를 보내기 전까지 나는 그 모아진 지우개 덩어리를 가지고 조물조물거리다 말도 안 되게 툭하고 이상한 모양의 무엇을 던져 내리라는 것을.
나는 그럴 힘과 에너지를 가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