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새책방 둥지의 문장들
마법이란 간절한 염원을 담아 물건이 원래 가지고 있는 용도와는 다른 힘을 갖게 되는 것.
나는 마법사다. 그것도 영험한 신력이 깃든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는 높은 차원의 마법사다.
줌바를 할 때는 내 몸을 가볍게 해주는 주황색 운동화를 신는다.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떤 선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줄 빨간색 라미 만년필을 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어디서든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다.
나에게는 마법이 봉인당한 채 화장대 서랍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탱고 반지가 있다. 젊은 시절(?)의 무용담에 빠지지 않는 것이 탱고 이야기다. 사실 탱고를 시작했던 시간을 순수하게 합산해 본다면 3년 남짓의 짧은 시간이다. 글을 쓴 시간이나 그림을 그린 시간. 심지어 노래를 부르고 줌바를 한 시간보다도 짧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다 합쳐도 탱고 3년의 시간을 이길 수가 없다.
이 반지를 처음 발견한 곳은 신사동 가로수길의 유명한 빈티지 샵이었다. 유명한 스타일리스트들이 소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 빈티지 샵에는 프랑스에서 들어왔다는 레이스 원피스와 스카프, 가방들이 가득했다. 모름지기 누군가 사용했던 중고 제품이라 함은 원 가격의 반값에서 시작해야 함에도 빈티지 샵의 물건들은 눈이 휘둥그레 지는 가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석에 내 반지가 있었다.
꽃을 물고 나무 가지에 앉은 세피아색 앵무새.
보석이 군데군데 빠져서 털갈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반지를 보다 마자 나는 사야 한다는 마음에 사로 잡혔다. 저 반지를 사서 왼손에 끼고 천천히 아도르노를 해야지. 우아하고 고혹적으로 발을 움직여서 춤을 추어야지. 저 반지만 있으며 나를 선택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거야.
앵무새 반지를 끼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우아한 동작으로 팔을 뻗던 나를 보고 오빠들은 절대반지냐고 웃었다. 하지만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삶에 치였던 학원문을 닫고 음악이 둥둥거리는 지하 계단을 내려가 탈의실에서 몸을 들어내는 옷을 입는다. 붉은색 슈즈를 신고 향수를 뿌리고 반지를 끼면 나는 낮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게 서른둘이었다.
마흔넷, 나는 9cm 높이의 힐은 더 이상 신을 수 없다. 어떻게 리드를 받고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좋아하는 댄서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음악을 듣는다. 아직도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그때 친구들의 인스타를 돌며 그들이 여전히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음에 안도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화장대 깊숙이 자고 있는 앵무새 반지를 꺼내본다. 이제는 빛을 잃고 반짝이지도 않는. 그 사이 굵어져 버린 손가락에 맞지도 않는 반지를 여기저기 끼워본 뒤 다시 서랍에 넣는다.
가끔은 생각한다. 아이를 다 키워 독립을 시키면, 내가 다시 나로 살게 된다면 한 번은 꼭 탱고를 추러 가고 싶다고. 밀롱가에 가려면 한 달은 바짝 개인 레슨을 받아야겠지? 수영처럼 음악을 듣고 플로어를 밟는 순간 내 다리가 기억을 되살려내지 않을까? 그러면 자신의 몸속에 마법을 봉인한 채 잠들어 있던 나의 앵무새 반지를 깨워 이제는 세월과 함께 익어버린 나의 농염한 매력을 뽐내 봐야지.
내 생각을 읽었는지 화장대 서랍을 닫는 순간 빛바랜 앵무새의 눈이 반짝했다. 나는 마법사 반지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