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사업자의 인생, 주차장에서 가구 줍다 피어나다

나홀로 사장의 고군분투 생존기, 지금 시작합니다.

by 나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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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기도 하고, 청소부이기도 하고, 고객센터이기도 한 나. 마케터이자 기획자이자 회계팀이자, 홍보 담당이자 감정 쓰레기통이기도 한 나. 나는 1인 사업자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코로나와 주차장. 대학생 시절 나는 복수전공과 교환학생 등 '학생일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뒤, 다른 전공의 필수 수업을 따라가느라 분주했고 그럼에도 6학년 1학기가 되어서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초등학생이냐”라고 장난스레 말했고 나도 어서 ‘만년 대학생’ 타이틀을 떼고 ‘쓸모’ 있는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막상 주위를 보면 모두가 서툰 사회초년생이었고 그마저도 유예 중이거나 준비 중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느껴졌다.


그 시기,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했다. 사회 전체가 조심스럽게 전염병의 심각성을 인식해 가던 즈음, 엄마가 임대 계약을 도와주던 사무실에서 문제가 생겼다. 계약자는 갑자기 사라졌고, 매달 나가는 월세는 그대로였다. 우리 엄마는 건물주도 아니었고, 집주인도 아니었다. 단지 좋은 마음으로 소개를 도왔을 뿐인데 어느새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그야말로 야반도주에 코가 꿰인 것이다.


그때 엄마는 나를 봤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어떤 존재. 그게 나였다. 엄마는 ‘작업실’이라는 말로 나를 꾀기 시작했다. 월세 한 번 내본 적 없던 나는, 눈 떠보니 덜컥 작업실을 갖게 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 나만의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은 있었다.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본 미대 오빠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가가 싱어송라이터 친구들과 화이트와인에 연어 샐러드를 곁들이며 프로듀싱하는 장면들.


그런 게 다였는데, 나는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작업실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된 거, 내 작업 공간을 나누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독서실에 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공부하고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면 상부상조 아닐까? 그렇게 어느 겨울날, 코로나가 창궐하던 그 시기에 나는 사기 당한 엄마의 사무실을 운영하게 되었다. 1인 사업자의 시작이었다.


그다음 떠오르는 키워드는 ‘주차장’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나는 매일 주차장을 다녔다. 내 공간을 꾸며야 하는데 아무 가구나 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없었다. 알바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내 선택은 ‘주차장 쇼핑’이었다. 나도 그곳을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싶었고 방문하는 사람들도 편하게 느끼길 바랐다. 그렇게 시작된 주차장 쇼핑은 그 건물, 옆 건물, 종량제 봉투 수거장까지 이어졌다.


상판에 스크래치가 몇 개 난 멀쩡한 테이블, 사무실 이전하며 내다 버린 흰색 의자, 당근마켓에서 얻은 무료 나눔 스툴… 그 모든 것들이 모여 공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상판엔 시트를 주문 제작해 리폼했고 의자 나사를 조여 정비했으며 스툴 위엔 공간과 어울리는 몬스테라를 올려두었다. 그렇게 내 공간은 소박하지만 애정이 담긴 것들로 채워졌다.


가끔은 친구들을 초대해 노오란 전구 밑에 앉아 화이트와인 대신 4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나눠 마시며 막연하지만 분명히 있던 로망을 채우기도 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하루에 몇 번씩 무너졌다가, 다시 ‘안녕하세요 :)’로 시작하는 날들의 연속. 이 생활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않았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이 고민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그들은 또 어떤 고민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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