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바지를 세워라!

바지, 입지 말고 세워라! 감정노동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전략.

by 나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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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진상 손님과 싸우며 10시간째 감정 노동 중인 당신께. 꼭 해야 하는 말인데, 불편해서 2시간째 어떻게 돌려 말할지 고민 중인가? 그게 일이라면,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알다시피, 나는 1인 사장이다. 동료도 직원도 대신 전화를 받아줄 사람도 없다. 불편한 말과 감정은 전부 내 몫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바지를 세워라!

바지를 세우라고?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입고 다니는 바지가 아니고 사장 위에 세우는 사장, 바로 ‘바지사장’을 세우라 말하고 싶다. 바지사장은 원래 실권은 없지만, 겉으로는 리더인 사람이다. 이 바지사장 전략을 야무지게 써먹어야 한다.


우리에게 바지사장이란, ‘진짜 나’를 감정 소모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하나의 페르소나다. 즉, 내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바지’를 앞세우는 것이다.


이건 손님에게 거짓말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칫 오해할 수도 있지만, “난 거짓말은 안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꼭 알아야 할 방식이다. 불편한 상황에 적당히 솔직하고 동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심리적 방패를 만들자. 나 자신 위에 내가 필요한 모습을 가진 사장을 세워보자.




“손님에게 거짓말하라는 건가요?”


아니다. 이건 손님을 속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규정과 손님의 마음,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작은 장치이다.


나는 불편한 상황을 '내가 곧 사장이다'라는 태도로 정면돌파하지 않는다. 정면돌파는 늘 상처를 남긴다.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그래서 바지를 세운다.


내가 아닌 다른 페르소나의 목소리로 유연하게 공손하게 상황을 정리한다. 이 바지사장전략은 나의 약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사장인데, 사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20대에 갑작스럽게 사업을 시작했다. 전공도 사회경험도 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밖에 나가면 ‘사장님’보단 ‘알바생 1’처럼 보이기 일쑤였다. 무시를 당하는 일도 많았고 그게 일상이었다. 이 때문에 일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또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금은 손님을 마주쳤을 때, 부동산중개인을 만났을 때, 나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굳이 “제가 이 공간의 사장입니다~” 할 필요는 없다.


스타벅스에서 “제가 ○○회사 대리인데요” 하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없다. 그냥 주문하는 거다.


바지를 세울 때는 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을 응대할 때이다.


간혹 “1시간 정도 서비스 시간 안 될까요?”라고 말하는 손님이 있다. 사정이 있어서 예산이 부족하다 하면 나는 상황을 보고 어느 정도 조율해 준다. (매정한 사장이 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소비자이다.)


그런데, 대화가 점점 ‘떼쓰기’처럼 느껴질 땐 이렇게 말한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요. 내부 규정상 어렵습니다. 저희 대표님께서 확정하신 부분이라… 조율이 어려울 듯합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말의 핵심은 하나다.


나도 도와주고 싶지만, 못 도와준다.


정중하지만 확실하게 거절할 수 있다. 대부분의 손님은 이 말을 들으면 수긍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내가 사장이 아니라 그냥 일하는 직원쯤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체면을 지키고 상황을 부드럽게 넘길 수 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규정도 있고 더 이상의 조정이 불가함도 사실이다. 그저 표현을 돌려했을 뿐이다. 그리고 진짜로, 나는 혼자 일하지만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가끔은 친구, 지인, 부모님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내 속의 ‘대표님’이 되기도 한다.


땡스 투, 바지사장.




불편한 말을 해야 할 때, 직접 부딪히며 감정을 소모하지 말고 상황을 완충해 줄 바지를 하나 세워라.


굳이 “저는 무능한 알바생이에요ㅠㅠ” 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내가 모든 걸 안고 맞서 싸울 필요도 없다.


부장님께 “15분 늦잠 자느라 지각했습니다…” 말하는 것보단, “오늘 차가 좀 막혔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는 게 덜 아프지 않은가. (부장님의 권위도 산다.)


우리 모두, 불편한 일을 부드럽게 해내는 ‘바지’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래야 마음이 덜 찢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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