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왕이면 나는 궁녀인가요?

3만 원어치의 전투

by 나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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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이지. 나도 손님이랑 욕하면서 싸우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욕조차 안 나올 만큼 화가 턱까지 차올라서 숨만 부들부들 쉬게 되는 순간도 있다.


물론 모든 손님이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있다. 분명. 그리고 꽤 많다.


이 글을 읽는 다른 사장님들이라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거다. 나도 유튜브나 콘텐츠에서 진상손님 썰을 푸는 사장님들을 보면


“아, 저 사장님도 참 고생하네” 싶다가도 한편으론 “그래도 그게 당신 일인데 어쩌겠어…” 하게 된다.


... 맞다. 이게 내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일이라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일들은 있다. 아니, 너무 많다.




진상손님 에피소드 1.


“내가 유리를 깼지만, 그건 네 잘못이다. 사장 나오라 그래!”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음주운전은 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 급의 명대사다. 지금도 회고하면 뇌가 정지된다.


회사용 워크숍으로 온 손님들이었다. 포멀한 모임에 어울리는 팀이었기에, “오늘은 무사히 지나가겠구나” 안심했었다. 해당 사용 목적은 주류반입이나 파티 등의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깔끔하게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다음날 공간 청소를 하러 갔더니, 장식장에 놓아둔 유리 소품들이 산산조각 나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어제 사용하신 손님께 전화를 드렸다.


“혹시 사용 중 유리가 깨진 일이 있었을까요? 바닥이랑 장식장에 깨진 유리가 많아서요.” 그랬더니, 너무나 태연하게, “아, 제가 깼어요.”


...?


그럼 말씀이라도 해주셨어야죠. 누가 밟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아님 치워 놓으시기라도..


유리 조각은 매일 청소를 하는 공간이라도 정확히 깨진 장소나 유리 종류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야 제대로 치울 수 있다. 혹시라도 내가 다 못 치운 유리 조각 때문에 다음 손님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깨진 장식품이 하나도 아니었다.


공간 이용 수칙을 잘 모르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대응했다. 다른 손님들의 안전도 지켜야 한다고 말씀드리면서 “저희가 마저 깔끔하게 처리하겠다”라고 안내했다. 그리고 배상비가 어느 정도 발생할 수 있으며 최저가 기준으로 찾아보고 다시 안내드리겠다고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했다.


사실 나도 한 덜렁하는 성격이라 청소하다 와인잔을 종종 깨기도 한다. 그래서 남의 실수에 더 관대하려고 했던 건데,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제가 유리를 깬 건 맞는데, 그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왜 유리를 거기에 두셨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니, 내가 유체이탈이라도 해서 그분 몸에 들어가 유리를 밀기라도 했다는 건가? “유리는 떨어졌지만, 이건 내 손이 아니야. 내 영혼은 조종당하고 있었어!”라는 급의 논리가 튀어나온 거다. 정말이지, 뇌가 잠시 정지됐다.


당연히 창문만 열면 장식장이 흔들리거나 부주위한 위치에 둔 것이라면 운영자 잘못이다. 하지만 유리는 코너 쪽 벽 장식장에 쉽게 떨어질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것이 아니었고 이용 중 사진을 찍으신다고 창문과 장식장 등 위치를 임의로 변경하시다가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다시 한번 안내드렸다. 실제로 나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예약 시 주의사항 부분에 명시하고 있다.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는 부분이라 파손을 우려해 지나치게 비싼 소품은 들이지 않는다.


이용 수칙 등을 재안내했다. “배상은 최저가 기준으로 찾아서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그게 왜 내 잘못이냐고. 유리를 그렇게 둔 게 잘못이죠?”



반복되는 답 없는 대화는 무려 10시간 넘게 이어졌다. “난 잘못이 없다.”, “왜 내가 배상을 해야 하느냐.”, “사장 나오라 그래.”


다 합쳐서 3만 원 남짓한 비용이었다.


나는 그날, 3만 원짜리 전투를 벌였다. 정신비용은 마이너스 백만 원. 결국 받은 건 13,000원.


사실 그 금액은 그냥 포기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그냥 돈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지킬 건지 내 원칙을 세우는 문제였다. 그래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캡처해서 보여주고 말로 설명하고 또 보여주고. 그러다 결국 듣게 된 말,


“그럼 깎아주세요.”


그래, 결국은 깎아줬다. 속 시원한 결말은 아니다. 누군가 보면 미련하게 왜 그 고생을 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한 번은 필요하다. 나의 원칙을 지키고 세우는 일이 나의 마음을 다루는 일과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저녁으로 소곱창을 먹기로 한 그날, 식당 근처 야구장 불빛이 식당 안까지 들이치고 사람들 함성 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소맥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뜨거운 불판 앞에서도 나의 3만 원짜리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날은 야구장 한복판에서 “아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연습 중이다.


“죄송하지만, 저희 공간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이번 예약은 어렵겠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손님, 갑질, 무례한 태도에 나를 지키는 말과 행동이 필요하다. 물론 수익도 지키면서.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혹시 지금 마음이 휘청이고 있다면 혹시 오늘도 말도 안 되는 일로 자존감이 깎였다면 한 가지는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손님이 왕이라면, 나는 궁녀가 아니라 사장이다. 이 공간의 주인이자, 이 일의 전문가다. 그러니 우리, 마음을 지키며 오래오래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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