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 땐 노 젖기보다 젖은 사람부터 살핍니다

폭우 속에서 살아남기

by 나머지사장

일을 하다 보면 피치 못할 상황이 생긴다. 특히 자연재해 앞에서는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예외가 없다. 어렸을 적엔 폭우나 폭설이 내리면 은근히 휴교령을 기대하곤 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일기예보에 '비'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1인 사장으로서 가장 취약한 점 중 하나는 안전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책임을 오롯이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 중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상황을 설명하고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상의 위급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처가 늦으면 작은 일도 일파만파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지역은 특히 비 피해가 잦아 매년 장마철이면 가슴을 졸인다. 예약일 직전에 ‘비가 온다’는 이유로 취소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취소 수수료가 발생함을 안내드리지만 국가 차원의 호우주의보가 내려질 땐 최대한 유연하게 대응하려고 한다.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노쇼 금액보다 손님들의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몇 해 전, 큰 폭우 피해가 있었던 날이 있다. 처음엔 그저 비가 오는 평범한 저녁이었다. 손님들도 안심하며 도착했고 오히려 밖보다 실내에서 만남을 가지는 걸 다행이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비가 점점 거세지더니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고립! 산중턱 우연히 발견한 산장에서 눈보라로 인해 고립된 것이 아니라 도심 한 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용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지만 안전해질 때까지 공간을 내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한 공간만이 아니라 여러 공간에 손님들이 있었기에 부지런히 연락을 돌렸다. 물이 현재 어디까지 찼는지, 집은 어디인지 확인하고 교통편은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안내드렸다.


“나가지 마시고 편히 쉬고 계세요. 안전할 때까지 공간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혹여나 귀가하시다가 위험하시면 이 공간으로 돌아오셔도 됩니다.” 건물 전체가 정전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손님들이 놀라지 않도록 안내드리고 마지막 한 분이 떠날 때까지 나는 밤을 꼴딱 새웠다.




다음 날 아침, 다행히 모든 손님들은 무사히 귀가했다. 폭우의 최고 수위는 허벅지를 훨씬 넘었다. 나는 출근길 40분 거리를 3시간을 넘겨 겨우 도착했다. 버스는 침수차로 인해 중간에 멈췄고 나는 온몸이 젖은 상태로 도로를 걸었다. 거리에는 침수된 차와 쓰러진 표지판이 널려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나는 사장이자 방파제였고 안내 방송이었으며 구조대였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내 손님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 들어올 땐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물에 젖은 사람부터 살펴야 한다.


손님들은 “덕분에 안심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무사히 귀가했다. “공간은 물이 새지 않았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주기도 했다.


나는 오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올 장마철도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면서. 큰 구름을 올려다보면 무력감과 동시에 누군가를 지키고 있다는 이상한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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