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주점의 미러볼 아래에서 상담하는 사장님

별이 빛나는 밤 속에서 더 빛나는 5만 원

by 나머지사장

퇴근이 뭐였더라, 6년째 기억이 안 난다. 한 때는 나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18시가 넘어가면 오늘도 야근이네~ 하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했지만, 출근이 곧 퇴근이고 퇴근이 곧 출근인 이 농담같은 삶을 살고 있다.


퇴근이라는 단어는 내 삶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가장 바쁜 시즌은 10월부터 1월 말까지다. 할로윈부터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까지 모임, 행사가 많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보통은 밤 10시까지 상담을 진행하지만 이 시기에는 간혹 새벽 2시, 3시, 심지어 4시를 넘어오는 연락에 실시간으로 답변하기도 한다.


나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옆에 있던 친구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너 지금도 일하는 거야?"


응… 18시 퇴근은 저세상 직장인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더라. 어릴 때 읽은 동화 같달까..?


그렇다고 일이 전부인 삶만 사는 건 아니다. 주말의 북적이는 한강 대신 평일 낮의 한산한 산책을 즐기고

오픈런이 필수인 빵집도 이른 오전에 가볍게 들러본다. 뭐든지 장단점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사실 나는, 밤의 유흥도 좋아한다. (그렇다고 업텐션 인간은 아니다. 커피보다 녹차를 좋아할 정도로 카페인에 취약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취미가 다도.) 하지만 한때는 클럽과 감성주점에 진심이었다. 얌전한 친구들을 꼬셔서 이태원과 강남의 밤을 소개했다. 나중엔 친구들이 먼저 “또 가자”라고 제안하곤 했는데 꽤 뿌듯한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토요일 밤이었다. 일에 지쳐 있었고, 필요한 것은 휴식보다 스트레스를 풀 창구였다.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고자 감성주점에 갔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소맥을 나눠 마시며 ‘별이 빛나는 밤’에 취해가고 있었다. 싸이, 쿨, 에스파, 뉴진스의 음악이 교차하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몸을 흔들어 댔다. (나는… 춤을 아주 못 춘다. 참으로 아쉽다.)


그때였다. 핸드폰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공간을 이용하고 싶다는 상담 요청이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시끄러운 음악, 싸이키 조명 아래에서 틴트 자국으로 엉망인 벽에 붙어 열심히 공간을 안내를 했다.


그 모습이 남자친구에게는 꽤나 불만스러웠던 모양이다. “너 진짜 이 시간까지 이래야 해?”라는 말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왔다. “일인데 왜 이해 못 해줘?”라며 맞받아쳤다. 사실은 나도 미안한 마음이 컸다. 식사 중에도 운전 중에도 상담을 받아야 하는 때가 많았으니.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사장님들은 자고 있을 이 시간, 나만 깨어 있다는 건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장 내야 할 고정지출도 있었고 5만 원이라도 벌 수 있다면 그건 놓치기 싫은 돈이었다.


결국 그날, 조명 아래에서 대판 싸웠다. 5만 원은 벌었지만 기분은 엉망이었다. 감성주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길에 눈이 내렸다. 대화는 없었지만 그 하얀 눈을 보며 서로 조금은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그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18시 땅, 치면 퇴근하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기를. 주말 밤 상담을 하다가 문득 그날이 떠오른다. 그 시끄럽고 눈부신 조명 아래, 한 손에는 술잔을,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던 나를. 싸이의 챔피언을 배경음으로 일하는 나… 진짜, 퇴근이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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