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시트콤이라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안 웃김

개그는 망해도 마음은 지켜야 하니까

by 나머지사장

웃기고 싶다! 그 마음이 왜 이렇게 간절할까?


일에 치여 마음이 다칠 때.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한 에세이를 쓰려고 앉았는데, 이상하게 손끝이 간질간질하다. 뭔가 심오한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할 것 같은데... 자꾸 개그 욕심이 든다. 이건 마치 참선하러 절에 갔는데 갑자기 마이크 잡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 나는 지금 글로 사람들을 웃기고 싶다! 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솔직히 말하자.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에게 워킹 노하우와 위로를 주고 싶고, “마음은 이렇게 지켜야 합니다!”라는 팁도 주고 싶다. 그런데 내 속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튄다. 웃겨야 한다. 우선 웃겨야 한다.


희극인의 철칙이 뭔지 아는가? ‘자기는 웃지 않는다.’ 그래야 사람들이 웃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웃기고 싶다는 욕망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이미 망했다. 개그의 기본을 깼다. 어쩌면 이 글은 실패한 개그다. 그런데도 웃기고 싶다. 왜?




그건 우리의 일상이 안 웃기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다큐다. 매일이 24시간 동안 플레이되는 아주 느린 다큐멘터리.


거기엔 편집도 없고 배경음악도 없고 감동적인 내레이션도 없다. 가끔은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다. 일상을 보내다가 피식—하는 그 순간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인위적인 유쾌함을 갈망한다. 어딘가에서라도 빵 터지고 싶은 것이다.


1인 사장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주변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침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듯이, 나도 나만의 일상을 산다.


혼자 일한다고 마음대로 일하고 싶은 시간에 출근할 수 없다. 나도 아침에 나름의 유니폼을 입고 바지 뒷주머니에 핸드폰을 꽂고 이어폰을 낀다. 겸허한 마음으로 오늘 청소시간에 어떤 유튜브를 ‘들을까’ 고민한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새 영상은 이 순간을 위해 아껴둔다.) 중요한 건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외국어 번역 영상이거나 시각 정보가 중요한 영상이라면 패스.


이렇게 선별된 몇 명의 유튜버들과 함께 오전을 보낸다. 11시가 넘었는데, 오늘 누구랑 한 마디라도 나눴나? 없다. 양치도 아직 안 했다.


편의점에서 까르보불닭을 사서 후루룩 먹고 청소하면서 밀린 상담을 하고 내일의 안내 문자를 보내고 월세 걱정을 하며 저녁까지 버틴다. 중간중간 청소하고 배달로 저녁을 때우고 모든 손님이 퇴실하면 내일 스케줄을 점검한다. (시간은 벌써 오후 10시가 넘었다.)


하루가 대부분 이렇게 흘러간다. 이런 하루를 보내면 웃을 일도 말할 일도 극적인 사건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평온함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웃긴 장면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5일 연속 제육덮밥이 나왔다~" 같은 농담을 하며 퇴근 30분 전부터 몸을 배배 꼬면서 금요일 저녁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KakaoTalk_20250523_201214415.jpg


누군가의 한 줄 농담이 무너진 하루를 붙잡아준 경험이 있는가?


전세사기를 당한 친구가 있다. 회사 점심시간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1시간씩 짬 내어 매일 은행에 다닌다.

오늘의 점심이라며 편의점산 빈약한 햄 샌드위치와 오렌지맛 팩주스 사진을 보내줬다.


“무슨 운동회 간식처럼 먹냐. 잘 좀 챙겨 먹자.”


그게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친구는 은행에서 회사로 돌아가는 내내 낄낄거렸다고 했다. 자기 처지도, 상황도, 내 멘트도 다 블랙코미디 같았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기고 싶다. 누군가의 무너진 하루를, 그 한 줄로라도 붙잡아주고 싶어서.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는 이 무료한 하루 속에서 어딘가에서 날아올 누군가의 한 줄 농담이 나를 잠시라도 웃게 해 주길 바라며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 본 콘텐츠에 첨부된 이미지는 대부분 직접 제작한 것이며 일부는 라이선스 범위 내에서 무료로 활용 가능한 이미지입니다.

이전 05화감성주점의 미러볼 아래에서 상담하는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