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다가도 다시
일하면서 가장 기운이 빠질 때는, 내 선에서 정성껏 친절과 서비스를 다 베풀었는데, 그게 그냥 허공에 툭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 때다.
며칠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공간 중 가장 큰 곳은 대형 세미나실이다. 워크숍, 강의, 밤샘 노트북 작업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처음 이 공간을 만들 때부터 어떤 분들이 올지, 어떤 목적 일지를 고민하며 책상 하나, 의자 하나까지 고심해 꾸몄다. 지금은 세미나 공간으로 제일 사용이 많은 공간이다.
이런 공간이다 보니 미리 예약을 하시며 문의를 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이지, 매일 수십 개의 질문을 보내오는 손님도 있다.
"정수기 있나요?"
"조명은 몇 루멘이에요?"
"책상 재질은 나무인가요?"
당연히 질문 자체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미 모든 정보가 예약 페이지에 잘~ 정리돼 있고, 질문을 한 번에 주시는 게 아니라, 친구랑 톡 하듯 뜨문뜨문 수십 개를 보내신다는 것.
시간대도 천차만별이다. 새벽 4시, 오전 6시, 밤 11시… 아마도 그분들은 내가 NPC쯤으로 보이시는 모양이다.
그날의 손님도 비슷했다. 문의가 잦았던 분이었는데, 직접 공간을 보러 오시겠다고 했다. 물론 오시겠다는 분은 종종 계시고, 나는 그런 분들을 위해 공간 안내 규칙과 Q&A도 마련해 놓은 편이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친절하게 맞이해 드렸다. 그런데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벽은 너무 흰데요?"
"에어컨 소리는 몇 데시벨인가요?”
"책상다리가 왜 이렇게 굵죠?"
"티비는 저 위치에 고정인가요?"
하나부터 열까지 시비 아닌 시비를 걸기 시작하셨다. 급기야,
"제가 모임을 하는 동안 혹시 문제 생길 수 있으니까… 여기 계속 계셔주실 수 있나요?"
"책상은 복도에 빼놓을 수 있죠?"
물론, 가능한 건 최대한 맞춰드렸다. 하지만 ‘직접 공간에 상주해 달라’는 요청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신 문제 생기면 즉시 대응드리겠다고 설명드렸다.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친절을 다 동원해 응대했다.
그런데 다음 날, 예약이 취소됐다. 플랫폼에 예약 중복 방지를 위해 등록도 다 해둔 상태였는데, 알림을 뜨자마자 알 수 있었다.
“아… 그분이구나.”
그 특유의 쎄한 기분.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그 감정. 기운이, 정말 쭉 빠진다.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뭔가 놓친 게 있었나?’
‘더 다정하게 설명했어야 했나?’
자기 의심의 늪에 빠진다. 이건 단순히 일이 잘 안 풀려서 드는 기분과는 다르다. ‘내가 뭔가 부족했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오전 내내 축 늘어져 있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뭔가 불편했던 게 있었겠지. 아니면 일정이 바뀌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경험을 업그레이드의 기회로 삼아 보기로 했다.
평소 마음에 두고만 있던 강의용 무선 마이크를 구매했다. 이미 마이크는 있지만, 이번엔 더 좋은 성능의 대형 엠프까지 포함된 녀석으로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런 경험은 나만 겪는 게 아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다. 기운이 빠져서 멍하니 앉아 있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해 보는 게 훨씬 건강한 대응일 것이다. 이렇게 글로 털어놓을 수도 있다. 다른 글들을 읽어보며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구나 하는 위로도 받을 수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마음만 상처받고 끝낼지, 아니면 뭔가 하나 더 배우고 나올지는 우리의 선택인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친절했지만 기운 빠졌고, 슬펐지만 웃으면서, 무선 마이크를 하나 더 가진 공간 운영자로 살아간다.
ⓘ 본 콘텐츠에 첨부된 이미지는 대부분 직접 제작한 것이며 일부는 라이선스 범위 내에서 무료로 활용 가능한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