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이 없는 삶에 대하여
나는 슬픔보다 걱정이 먼저 오는 사람이다. 아플 때도, 죽음을 마주할 때도, 내 안에서 가장 먼저 고개를 드는 건 늘 슬픔이 아니라 걱정이다. 그 사실이 마음을 서글프게도, 단단하게도 만든다.
혼자 일하는 사람은 병가를 쓸 수도 없고, 나를 대신해 줄 사람도 없다. ‘이날은 아플 예정이니 미리 비워둬야지’ 하고 계획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독감이나 코로나 같은 상황이 닥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래서 평소에 몸을 아끼는 편이다. 주말에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깊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날씨가 추워질 것 같으면 겉옷을 하나씩 챙겨 다닌다.
“내 몸이 가장 큰 재산이다.”
이 말은 내게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원칙이다.
혼자 일하면서 아픈 건, 정말 버거운 일이다. 그래도 너무 심할 땐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누구라도 내 공간을 잠시나마 운영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두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최대한 빨리 병원에 다녀오고,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쉬며 회복에 집중한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순간이다.
그중에서도, 장례식.
가족의 죽음 앞에서조차 나는 모든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 일에 치여 무력함을 느끼고, ‘이게 맞는 걸까’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근조화환을 대신 보내줄 소속도 없고, 내 자리를 대신해 줄 동료도 없다. 장례식장에서도 급한 상담 전화를 받고, 발인을 앞두고 다음 날 스케줄을 걱정한다.
죽음을 앞두고는, 그 누구도 준비할 수 없다. 그 당사자도, 그 곁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항상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 늦게서야 실감이 난다.
얼마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는 부산에서 치러졌고, 서울에 있던 우리 가족은 급히 짐을 챙겨 내려갔다. 그나마 병원에서 “오래 버티시긴 힘들 것 같다”는 연락을 종종 받았던 터라 일정을 빠르게 정리하고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 내 머릿속은 슬픔보다도 내일 예약은 어떻게 처리하지, 다시 서울 올라와서 정리할 일은 어떻게 하지…이런 생각들이 먼저 지나갔다. 할아버지가 수요일에 돌아가신 것도 다행이라는 위안이 들었다.
“그나마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평일이라서, 장례를 함께 지킬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그날, 나는 ‘그나마’라는 말에 기대어 마음을 붙잡았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그 순간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올 기억이 되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서울 쪽에 급한 연락이 오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누구든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회사원에게도,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어떤 순간의 외로움과 막막함은 꽤 비슷할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준비하던 순간, 전화기에서 진동이 울렸다. 예약 고객이었다. 도어락 비밀번호가 안 열린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벽에 기대어 목소리를 낮추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채 비밀번호를 다시 알려주었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이 내 안에 오래 남을 상처가 되리라는 걸, 그때 나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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