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 가출 청소년과의 조우
나는 정말 그날의 일을 잘 해낸 걸까?
일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중에서도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몇 년 전 겨울, 내가 운영하는 공간 중 하나가 가출 청소년의 아지트가 되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동지를 앞두고 겨울의 한가운데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나는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부지런히 이 공간 저 공간을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겨울철, 공간 운영자로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단연 난방 문제다. 난방기가 잘 작동하는지, 먼지는 쌓이지 않았는지(화재 위험이 있어 자주 확인이 필요하다), 유독 추운 공간은 없는지, 찬바람이 드는 곳은 없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방문객들 중에는 난방이 되는지 여부를 묻는 분들도 많아, 미리 안내 문구를 준비해두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지하 공간을 점검하러 갔을 때였다. 내가 운영하는 공간 앞에는 다음 이용자들을 위해 기다릴 수 있도록 의자 몇 개를 배치해 두었는데, 그곳에 한 소녀가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세 개의 의자를 나란히 붙여 작은 침대처럼 만들어 놓고 자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예약 시간을 착각했나 싶었다. 종종 이용 날짜를 헷갈려 일찍 오는 손님들이 있기도 해서, 머릿속으로 급히 예약 상황을 되짚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오전에는 예약이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소녀를 깨우고, 혹시 예약자이신지 여쭈었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집을 나왔는데, 갈 데가 없어서요. 여기가 따뜻하길래 그냥...”
'그냥...'이라는 말에 너무 많은 사연이 생략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소녀는 10대 가출 청소년이었고, 추운 겨울 머물 곳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이 지하 공간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화장실도 있고, 비교적 따뜻하며 매일 청소까지 되니 이 소녀에게는 최적의 피난처였던 셈이다. 오늘은 내가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었고, 언제부터 인지도 모르게 여기서 잠을 자기 시작한 것이다.
소녀는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 정도로 보였고, 얼굴엔 피로와 고단함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감지 못한 듯 단발머리는 떡져 있었고, 헐렁한 백팩 하나가 그녀의 짐 전부였다.
이 아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잠시, 이 곳은 내가 지켜야 할 내 공간임을 떠올렸다. 오후엔 손님도 올 예정이었고, 손님이 이 소녀를 본다면 어떤 인상을 받을지, 앞으로 이 아이가 계속 이곳에 머문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갈 곳은 있는지. 소녀는 죄송하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고, 나는 막막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남았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내일도 또 이 아이가 온다면? 내가 밤새 기다렸다가 얘기를 나눠야 할까? 인근 복지기관이나 경찰서에 인계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음 날, 역시 검은 롱패딩을 입고 지하로 내려갔다. 소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순간 모든 생각이 멈췄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녀가 사라지길, 그래서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조심스레 소녀를 깨우고 다시 물었다. “어제부터 계속 있었던 거예요?” 소녀는 “어젯밤 늦게 와서 잠만 잤어요.”라고 답했다. 나는 이렇게 계속 있을 것이 아니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혹시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집을 나온 것이라면, 대화나 기관의 도움을 통해 해결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이렇게 오랜 시간 거리 생활을 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 사정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엔 일찍 손님이 올 예정이었기에 청소를 서둘러야 했고, 소녀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그 아이 생각 뿐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거지? 경찰서에 가야 할까? 복지 기관에 연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관련 전공으로 학위까지 받고 졸업한 나였지만, 막상 눈앞에 놓인 현실 앞에서는 당황스러움이 먼저였다. 무엇보다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밥 한 끼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그래, 일단 밥부터 먹이자'고 마음먹고, 근처 국밥집을 떠올렸다. 소녀를 데리고 갈 만한 조용하고 따뜻한 곳.
하지만 돌아섰을 때, 소녀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그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소녀는 그날 아침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추운 겨울, 과연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
부디 부모님과의 작은 다툼 끝에, 객기로 잠시 집을 나섰던 것일 뿐이길. 무사히 돌아갔기를, 지금은 따뜻한 곳에 있기를... 나는 지금도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란다.
지금도 날이 추워지면 가끔씩 생각이 난다. 내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혹시 내가 그 아이를 거리로 내몰았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 하는지.
나는 좋은 어른이었을까. 한명의 노동자로서 내 '일'을 잘 해낸 것일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잔물결처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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