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가 쓰는 말과 고객이 듣는 말은 다르다
전시회에서 설명된 스펙, 속도, 용량 같은 숫자들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새벽 7시, 전시회장 바닥이 반짝거렸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은 공간에 쌓인 조명, 철제 구조물, 커피향,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
전시회 준비가 한창이던 그 순간, 저는 그 넓은 공간 한가운데에 작게 서 있었습니다.
그날은 AID 2025 (Automotive Innovation Day),
저에게는 인턴 2주 차 만에 처음으로 ‘현장에 투입된 날’이었습니다.
부스 한가운데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양옆에는 실제 자동차 ECU 모형과 시연용 키오스크가 줄지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이렇게 크고 화려하게 준비될 줄은 몰랐다’며 약간 압도당했습니다.
막 배너를 부착하던 선배가 제 어깨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기술은 저기 있어.
우리는 그 기술을 어떻게 보여줄지가 문제야.”
그 말이 귀에 꽂힌 채로, 저는 한참을 키오스크 앞에서 멍하니 부스를 바라봤습니다.
글자 수, 아이콘 배치, 제품 이름의 폰트 굵기… 평소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들이 그날은 전부 진지한 고민거리로 다가왔습니다.
"이 글자를 보는 사람이 이해할까? 이 이미지가 전달하려는 건 뭘까?"
행사가 시작되고, 첫 번째 고객이 부스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시연에 투입된 엔지니어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역할이었지만,
사실은 머릿속에서 계속 “이 설명을 내가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까?”를 되뇌고 있었습니다.
엔지니어가 AUTOSAR 기반 솔루션의 구조를 설명하는 동안,
고객은 시선을 스크린에서 점점 떼더니 결국 키오스크 데모와 실물 ECU 모형에 오래 머물렀습니다.그리고 그 순간,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이게 실제로 저희 차량에 적용되면... 아, 이 장면처럼 되겠네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사람들은 기술을 ‘듣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상상하고’ 싶어 하는구나.
그날 오후, 또 한 명의 고객이 부스를 나가며 남긴 말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이 데모를 보니까, 우리 차량에 바로 적용되는 그림이 딱 그려지네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꽂혔습니다.
전시회에서 설명된 스펙, 속도, 용량 같은 숫자들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적용되는 장면이 그려진다’는 표현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거든요.
마케팅팀에서 기술을 다룬다는 건,
그 기술이 고객에게 ‘경험’으로 연결되도록 번역하는 일이라는 걸 그날 처음 체감했습니다.
엔지니어가 만든 기술은 정교하지만,
고객이 가져가는 건 스펙이 아니라 자기 일에 적용되는 ‘그림’이었습니다.
전시회장에서 기술은 눈에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사 간 건, 가능성이었고, 자기 그림 속에 들어간 장면이었습니다.
- 문카로그 인턴 생존기 시리즈 中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