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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Sep 26. 2024

두 얼굴

2024 9 2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사일 실험 발사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고개를 가로 젓는 그 얼굴은, 단호히 아니라 말하지만 더 이상 어떤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음을. 그 침묵은 길었다.

 7월 14일,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죽음의 백조를 날게 한다. 앤더슨 공군기지를 떠난 B-1B 랜서가 태평양을 지나 동해 하늘을 날고 저 멀리 F15전투기가 오키나와의 땅을 떠나 합류한다. 우스운 건 그들은 그 물체들이 자신들 머리 위를 난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린 그게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건 꿈이에요."

 그 여자에게 난 말했다. 데이 워싱톤과 작업하는  영화감독이 된 후 항상 꿈꿔왔던 것이라고.

 언젠가는 그 성을 빼고 이름만을 부를 날을 기다리며.

 그도 언젠가 내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말했다 한다. 조지나가 내게 한 말이다.

 “그 날이 기다려지군요.”

 난 그날 뉴욕에서 네거티브 필름의 조지나를 만났고, 그곳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 위로 지하철 선로가 놓인 거리였다.

 그곳의 어느 카페였다. 철컹철컹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며. 열차는 떠나 사라진다.

 그 말이 그저 입술을 몇 번 움직이며 한 비위 맞추기는 아니었기를 바랄 뿐, 내겐 늘 그와 함께 하고픈 꿈이 있었고 그 순간을 그려왔다.

 7시간을 달려 동해로 왔고 어느 긴 해변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곳 한가운데에 쓰러지고 만다. 따가운 햇살에 눈이 감겼고, 태양은 내 온몸을 뜨겁게 데우고 있었다.

 해변을 걷는 그 걸음을 떠올렸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두고 싶은 건, 지난 일은 금방 잊히며 앞으로 다가올 날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갈 곳 잃은 빛이 닿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그의 걸음을 상상했다. 20m를 바닥만 보며 걷다 불현듯 멈춰 서는 그 남자의 모습을. 바다를 본다. 파도 소리와 셔츠를 흔들 만큼의 바람이 불어오며, 한 무리의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가는 모습도 있으면 좋겠다. 텅 빈 해변의 한가운데에 누워 그 모습을 그린다.

 눈을 떠 하늘을 본다. 그게 영화의 시작이 될지, 혹은 그저 사라지고 없는 장면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내 상상을 터놓는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한 남자가 해변을 거닐었고, 그가 사라지고 몇 분 후 난 어떤 이들에 붙잡혀 이끌려갔다.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건. 짧은 머리, 그리고 초콜릿 색의 피부.

 그의 걸음은 쓸쓸했으나 초라하지 않았으며 그 남자의 몸 형태는 그렇게 내 시선에서 멀어져 갔음에도 뚜렷하다. 그곳에 가면 해변 한가운데에 버려진 돗자리가 있을 것이다.

 목에 주사바늘이 꽂히고 순간 왼쪽 귀에서 날카로운 음이 들리며 기억을 잃는다.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두 남자의 모습을 지만 그들이 내 눈동자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난 후 몇 시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다시 눈을 떴으나 앞은 캄캄했고, 하늘을 보면 어디로 가는지를 떠올리기라도 했겠지만 보이지 않았다.

 엔진 소리가 들려오며 내 몸은 어딘가에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는 덜컹거렸고 다시 잠들었다 깨어도 앞을 볼 수 없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고 몸이 흔들렸으며. 그건 몇 시간 전보다 더 익숙한 느낌이었다. 기울어지고 휘어진 길들을 달려도 난 어지럽지 않았음을.

 그 차는 내가 운전하는 것이었기에. 멀미가 난다. 난 이제 어디로 갈지를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운명이다.

 눈이 먼 자의 여정은, 비로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난 그저 태어났다는 사실만을 알게 되는 존재일까.



 초대



 난 네모난 상자 속에 있다.

 그곳은 더 이상 동해의 바닷가가 아니었고, 한쪽 벽에는 침대 하나가 놓였으며 또 다른 벽면에 나무로 된 책상과 의자가 붙어 있었다.

 그곳 한가운데에 서서 그것들을 볼 때. 멍한 소리만이 들려올 뿐, 벽지에는 모기가 인간의 피를 빤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방은 열 두 걸음을 걸으면 끝에서 끝으로 닿을 수 있는 크기였다. 문은 잠긴 채로 열리지 않았기에, 창문을 열려 그걸 당겨보아도 따뜻한 햇살조차 허락되지 않은 듯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곳, 그 캄캄한 방 안에서 내가 해야 했던 일은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었다.

 그토록 깨끗한 책상 앞에 앉고야 만다. 내겐 늘 몇 가지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건 언제든 뻗어나갈 수 있도록 배양된 줄기와 같은 것들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씨는 이미 뿌려졌으며, 하지만 이곳은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으니 꽃피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임을. 일어설 수 없고, 또 힘을 주어 스스로를 움직이게 할 수 없다.

 내 방 안을 드나드는 남자와 여자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그런 내 시선을 목격하고 끝내 회피하곤 옷을 두거나 책상 위에 음식을 올려두고는 나갔다. 그들의 왼쪽 가슴에는 독재자의 얼굴이 있었다.

 둘째 날 나온 임연수어 구이를 사진으로 찍어놓았다면, 그러나 지금 그걸 봐도 그 사진 위로 파리는 들러붙지 않을 것이다. 난 그 생선 덩어리를 손 대지 않았고, 끝내 자신의 무늬를 잃은 그 암갈색의 물고기를 사진 찍어둘 수 없었다.

 전화기를 쥐지 못하는 내 손은, 책상 위에 컴퓨터 한 대조차 놓이지 않고 결국 그에게 쥐어지는 것은 오직 날카로운 한 자루의 펜이었다. 며칠 동안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 난 민주주의의 품을 떠나는 일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녹색의 담요 속에 몸을 숨기고 난 수치스럽기만했음을.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문이 있는 곳 옆에 쪼그려 앉기도 하며, 열리지 않는 창문 앞에 서서 보이지 않는 바깥을 향해 시선을 두기도 하는 그 자는.

 그는 결국 책상 앞에 앉고야 만다. 의자에 앉은 머리는 상상한다.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자의 얼굴을 떠올려봄에도.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왜 날 여기에 가둬놓은 거죠?"

 날 부른 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에게 대신 그걸 들려달라 말했던 것이다.

 그 얼굴은 피부가 검고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누가 시킨 일이죠?"

 그의 머리는 늘 내 시선 위에 있었고, 그 남자는 늘 그런 식이었다. 그런 질문 따위를 하면 대답 않고 고개 돌려버리고는 했던 것을.

 그들은 하루에 한 번씩 내 방 창문을 열어 바깥 풍경을 보여줬고 난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는 했다. 그때 내 시선은 초점을 잃은 듯했으며.

 그곳 안을 맴돌던 공기가 바깥의 공기를 만날 때, 그럴 때면 그들은 내게 담배 한 대씩을 건넸다.

 "담배를 태우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라 부장이 내게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해주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한 대 피우십시오."

 손가락 사이에 그걸 끼워 놓은 채로 입술을 갖다 대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볼 뿐, 그건 어떠한 희망도 암시하지 않았으므로.

 머리가 핑 돌며 눈으로 보이는 모든  기울어져 곧 균형을 잃을 듯했다. 그 자리에서 그걸 세 대씩 피워 없앤다는 것을 알면. 아니, 위층에 사는 사람이 괴로워했을지도.

 누가 내 머리 위를 걷는 소리를 듣지 못함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이 되어도 꿈을 꾸지 못한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난 그 방이 여섯 개의 면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에 온지 일주일이 지났고, 그 시간 동안 난 창틀 안 한 그루의 나무를 보았을 뿐. 나무에 붙은 사슴벌레는.

 그 큰 그늘 아래에는 고개 숙여 풀 뜯는 고라니 한 마리조차 얼쩡대지 않았음을. 아래층 부부가 싸우는 소리도, 정처없이 떠돌던 소음이 귓가에 머물기라도 했더라면 편히 잠들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다 눈이 감기고야 만다.

 눈을 떴을 땐 책상 위에 아침상이 놓였고, 투명한 잔에는 물이 채워져 있었으며. 그걸 마시면 마치 새로운 실험이라도 진행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고 일어나 내 모습이 바뀌어 있지는 않을까, 내 얼굴이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까 손으로 그걸 더듬는다. 난 변하지 않았다. 조금 핼쑥해졌거나 야위었을지는 몰라도.

 밖은 여전히 조용하다. 몇 달 동안 들려오는 것이라곤 그들이 매일 세 시간씩 틀어주는 영상 속 소리였기에 그랬다.

 바닥에 한쪽 얼굴을 대면 땅 아래 깊숙한 곳으로부터 누가 날 구하러 올 듯했고. 그 꿈은 날 안도하게 했지만 어떤 존재도 방 벽 바닥을 깨부수고 등장하지 않는다. 내 정신은 서서히 날 떠나는 중이었다.

 거울을 보면 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까. 미소 짓거나 눈물 떨어뜨려 그는 자신이 여전존재한다 믿게 될까.


https://youtu.be/FCYDPP9SWaI?si=43uPQC4IVAL6NE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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