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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Sep 28. 2024

두 얼굴

2024 9 28


 '영화감독 정인형이 동해안의 한 바닷가에서 실종됐다.'


 그 일은 큰 사건이 돼 있었고 난 사라졌다. 공중파 방송으로부터 제주의 언론사들까지 정인형 실종 사건을 심각한 목소리와 어체로 보도했고, 다음 작품을 함께 준비 중이던 양정란 대표마저 인터뷰 요청을 받는 등 주위 사람들이 시달렸다. 그의 비서는 하루 사이 걸려 오는 수백 통의 전화를 감당해야 했으며.

 사무실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몇몇의 사람들 덕에 결국 문을 잠그고 그곳을 떠나야만 했던 것을.

 내 가족은, 그들 얼굴 앞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곧 소나기가 쏟아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난 지적장애인이나 치매 환자, 또는 심신미약자가 아니었음에도 국가는 날 찾기 위해 움직였는데, 그건 그들이 만들고 세운 기다란 창살 속 법 때문이었다. 우린 그 자를 보호해야만 함을.

 그들은 날 지켜야 했고 오로지 그런 탓이었는지도. 어떤 정치적 의도도 사유도 없었을 것임을. 난 비자발적 원인에 의해 귀가하지 못하는, 그런 것으로 의심되는 18세 이상의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그들이 해변 주위를 수색하고 곧 잠수부를 실은 배가 바다 위를 떠돌았지만 날 찾지 못한다.

 그곳 위를 둥둥 떠 다니는 무언의 형체를 발견하고는 한 남자가 소리 지른다. 그건 그보다 며칠 일찍, 정확히 일주일 전 먼저 실종된 어느 남자의 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사라진 걸로 생각했다. 난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해변 한가운데에 돗자리 하나가 버려졌을 뿐, 그곳에 내가 남긴 건 그런 것들뿐이었다.

 그곳으로부터 10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차는 정인형의 것으로 확인되며, 차 안에는 옷과 가방이 가지런히 놓였고.

 신분증이 든 지갑과 카메라, 핸드폰, 날 무겁게 하는 것들로부터 난 잠시라도 해방되고픈 마음이었다.

 차를 멈춰 세웠을 때 난 이미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두 눈은 모래들과, 또 바닷물이 깨진 유리조각들처럼 반짝이는 것을 봤다.

 난 자유를 얻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비평과 비판에서도 멀어진 듯, 그러나 한 기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끝내 날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단정짓고야 만다.

 "유서는 발견됐습니까?"

 경찰의 뒤를 쫓으며 그는 그런 질문을 한다. 그는 내가 정말 사망한 것으로 생각했거나, 아니면 조그마한 기삿거리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그랬던 건지도.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평소 우울한 삶 속에 있었다는 누군가의 말이 결정적인 증언처럼 사용되기도 했고.

 내가 만든 영화를 본 관객들은 모두 고개 끄덕였을까. 그를 죽음으로까지 이르게 한 게 고독은 아니었나 하는 질문 따위가 이미 던져지기 시작한 건 아니었나.

 그는 본다. 모래 위에 남겨진 세 명 이상의 발자국을.

 경찰은 해변에 남겨진 발자국 수를 확인하고 실종에 무게를 싣는다. 하나는 신고자의 것, 또 하나는 정인형 감독의 것.

 나머지 두 개의 발자국이 누구의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기자들이 쏟아내는 질문 앞에서는 묵묵부답인 모습이었지만. 뉴스 보도 영상에는 그들을 피해 달아나는 경찰들의 모습이 담길 뿐이었다.

 난 이곳에 있다. 온 땅과 바다를 뒤져도 난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부풀어 올라 풍선이 된 몸조차 파도에 떠밀려 오지 않을 것임을.

 그라면 보았을지 모른다. 그는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자취를 감추는 내 모습을.

 누운 내 몸은 고개 뒤로 젖혀 그가 지나가는 걸 보고 있었으며 뒤집힌 시선 속 그 남자는 모래 위를 걷고 있었다. 어지러움에 곧 눈을 감는다.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공 하나가 떠밀려갔다. 난 바다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부체와 같은 것이었다.

 눈을 떠 라 부장의 시선을 마주쳤을 때 난 이곳이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직감했다. 그리고 느낀다. 그런 말 그런 소리들이 와 닿을 듯이.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곳의 공기를 다시 맡게 될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그들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문을 두드리면 박영화나 김수홍이 바깥에서 문을 열어줬다. 그곳에는 거울이 없었다. 날 알아보게 할 모습이 화장실 벽에는 비쳐 걸려 있지 않았다.

 머리 감고 세수 하고 이빨 닦는다. 변기를 가득 채운 것은 거품이 잔뜩 낀 샛노란 오줌이었으며.

 살이 따가울 정도로 햇살이 쬐는 거실에는 창가로 소파 하나가 놓였고 맞은 편 벽 높은 곳에 배지 속 인물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삼시세끼를 꼬박 넣어주었으며, 창문을 열어주러 올 때는 언제나 라 부장이 들어왔다. 이곳에 도착한 며칠 뒤부터 그들은 TV를 가지고 와 한쪽 벽에 고정시켰고 비디오테이프를 틀었다. 그건 공산주의 교육 영상이었다.

 난 오른쪽 옆으로 누워 자는 습관이 있었고, 계단을 오를 때도 언제나 오른발을 먼저 디뎠지만. 내 몸은 스스로를 좌파라 주장한 적 없었음에도.

 그런 날 공산주의자로 만들려는 그들 의도는 도대체 무엇인지.

 그건 누군가를 미친 자처럼 웃게 만드는 짓이었음을.

 “창문을 열어드릴 수 없습니다. 영상을 다 보지 않으면요.”

 그는 내게 충고했다.

 박영화는 그런 그와 내 모습을 문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그곳에 서 있는 건 그 여자일 때도 있었고 김수홍일 때도 있었는데 그들 중 누구도 날 거들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내 얼굴은 다시 텔레비전 화면을 향하며 신발공장 근로자들의 노동 행위를 지켜볼 뿐이었다.

 예고 없이 공연단이 나타나 그들을 격려하는 시퀀스에서는 헛웃음을 지을 것 같았지만. 순간 그건 잔치가 되고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그들에게는 자부심 느껴지는 컷일지도. 그들은 그걸 현장경제 선동이라 불렀는데.

 그가 느닷없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는 모습에 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예술경제선전대 소속의 인민배우가 나와 만담을 펼칠 때는 그게 마치 미국식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는 듯했던 것이다. 그가 찌르는 정곡의 유머에 노동자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수해 현장에 파견 나온 청년 돌격대 소속의 한 장병의 아코디언 연주는.

 나도 모르게 흔들리고 만다. 그리고 꽤나 심각해진다. 그들은 날 위로하려는 듯했다. 그래, 세뇌는 때로 위로를 가장하지 않았던가.

 화면이 바뀌며 순간 TV 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 내 수 없던 표정들도 그곳 안으로 들어와 모두 쓸모 없어진다는 걸 알게 될 때는. 그 모습이 마치 초라한 앉은뱅이와 같았기에.

 하루 이틀이 지나고 그런 영상들을 반복해서 보니 조금씩 몸이 늘어졌다. 어느 순간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들에 달아나고 싶었지만 도망쳐도 그 끝이 방의 모서리라는 걸 알 때 또 좌절하고야 만다.

 창문은 망가뜨리고 부셔도 바깥에 철로 된 문이 있다는 걸 알아 탈출을 꿈꾸지 못하고.

 그들은 내게 펜을 쥐게 했다. 일주일간의 영상 교육을 마치고 8일째였나. 라 부장이 내게 한 말이었다.

 "공책입니다."

 그리곤 그 옆에 펜을 놓는 것이었다. 난 노트북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으며 키보드가 놓인 컴퓨터가 있어야만 한다. 그런 말이라도 하며 목청 높이고 싶었지만.

 바깥으로 소리들을 내보내고 싶어도 달걀 판으로 만든 벽 속에 있듯 그 소리들은 누구의 귀로도 전달되지 않을 듯했다. 그곳은 이미 진공 상태였는지도.

 이틀이 지났음에도 그걸 눈에 두지 않으며. 펜을 들지도 공책을 펴보지도 않고,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었다. 어느 날 벽에 생긴 까만 점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저 검은 점이 점점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걸 긁고 긁다 보면 빠져나갈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끝내 구멍이 생겨 세상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박영화가 방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음식을 놓고 나갔다. 공책과 펜은 책상 한 가운데에 그대로 있다. 그 여자는 그걸 잠시 구석으로 밀쳐 놓고, 그건 다시 하루가 지날 때까지 책상 가운데로 옮겨지지 않는다.

 라 부장이 문을 두드린 뒤 들어온다. 철커덕 바깥에서 철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곧 창문이 열렸다. 라 부장은 창가에 기대 선 채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공책을 펴 보지도 않는군요. 혹시 거기에 무슨 글자라도 적혀 있으면 어쩌려고요."

 그리고 불을 붙인다. 난 공책의 바깥 면을 보았다.

 그곳 안에 누군가의 메시지가 있는가, 정성스럽게 담긴, 아니면 읽어 시간 보낼 만한 글자들이 보기 좋게 나열 되었던가.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내 시선은 곧 옆에 놓인 펜으로 옮겨졌고, 작가의 심정이란 진정 그런 것일까,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순간 그걸 들어 가해야만 하는 것이었는지도.

 "그건 빈 책입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아요. 그러니 뭐라도 써보십시오."

 결국에는 패자가 될 것 같아, 그런 용기 없는 마음에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애꿏도록 담배 연기만 피어 올릴 뿐.

 방 안은 어느새 스스로를 질식시킬 만큼의 공기로 가득 차버렸다.

 풍성했던 나무의 잎들도 마르며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고, 가을이 온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음에도 들을 수 있었던 건 창문 바깥에서 김수홍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은 이유 때문이었다.

 라 부장은 다시 창문 앞으로 가 등을 보인 채로 섰고 난 그 모습을 주시했다. 그 뒷모습은 점점 내 시선을 가득 채웠으며.

 점 좌절감으로 가득 찬 몸이 된다. 책상 위 등은 빈 종이를 비춘다. 그곳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겨지지 않았다.

 아들에게 쓴 편지가 마지막 감각으로 남았던 듯하다. 조금씩 손목을 꿈틀거려봐도, 손가락이 펜을 움직여도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한다. 그걸 쥔 채로 곧 기울며 쓰러진다.

 의자 밀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종이 위에 누군가가 어린아이 낙서 같은 걸 해놓았다. 잠에서 깼다. 각본 속 수많은 인물들이 그렇게 사라지고는 만다는 것을 알 때 사람들은 슬퍼할까. 세상에 그려지지도 못하는 얼굴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 아비와 어미를 위로하게 될지도. 그 의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민 것이었기에.

 글을 쓰지 않으면 문을 열어줄 수 없다는 그 말은. 한 달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이 와 있을 것이라 했고 자신들의 임무는 그걸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라 부장이 말한다. 절벽의 끝에 와 있는 듯, 하지만 날 그 아래로 떨어뜨릴 마음이 없는 듯 이야기한다. 그 끝에서 한 말이었다. 지도자 동지가 당신을 만날 날을 기다린다고.

 다음 장을 펴 일기를 쓴다. 이곳으로 온 날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방학이 끝나 미뤄둔 숙제를 하듯, 뱃가죽이 들러 붙어 목구멍까지 점점 말라 붙지만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몇 페이지 정도를 채우고 보니 그 속에 많은 감정들이 있었다는  안다. 동해에서부터 가지고 온 것들. 아니 남쪽 아래 더 먼 곳에서부터 짊어지고 온 기분들이 그 속에 있었다.

 날 납치한 자들에게 난 그토록 무거운 존재였을 것임을. 난 생각이 많은 자였으니. 해부용 칼을 대 가르고 꺼내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그 머리 속에는 가득 차 있었을 테니.

 데이 워싱톤이 해변가를 걷고, 그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고 카메라는 그 옆모습을 비춘다.

 애초에 난 배우들의 걸음걸이까지 미리 짜놓고는 했기에 그들이 큰 권한을 가지지 못했다. 어느 날은 독선이라는 말이 내 목에 혹 같이 붙었는데.

 하지만 관객들은 그들 눈에 어른거리지도 않는 감독 얼굴보다 배우들의 모습으로 영화를 기억하니. 그렇기에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라.

 이야기를 모두 완성해도 어떤 배우들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으며. 설렘과 같이 다가오는 물결처럼, 그러나 물은 점점 쓸리고 빠져 멀어지기만 할 뿐. 어느덧 진흙 밭이 된 그곳을 보며.

 마치 서해 바다의 늦은 저녁에 있는 듯, 마른 피부를 끝까지 괴롭히는 빛에 몸서리치고.

 내가 원하는 배우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내 뜻을 이해하고 그 의도를 옮겨줄 자가 언제나 내 옆에 있어야만 함을. 스스로 카메라를 든 눈이 되어 그토록 위태로이 버틸 수는 없다. 그 무게를 난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촬영감독은 또 누가 맡는다는 말인가.

 투자자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고야 말 때 난 그곳으로 가야만 함을 깨닫는다. 동쪽으로, 아니 남쪽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책상 앞을 떠나지 않은 채로 공책의 반을 채운다.

 스스로 배를 그어 그곳에서 진실된 것들을 꺼내 보여주면, 그렇다면 그들이 날 남쪽으로 돌려보내지 않을까.

그토록 하찮은 선을 넘어, 남과 북의 경계를 넘는 그런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는 경험을 할지도.

 난 조금 수척했을 테지만. 그 즈음 다시 든 생각이었다. 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쓴 채로 뛰다 무슨 소리라도 들은 듯 멈춰 선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나 문틈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보름달처럼 둥근 박영화의 것이었다.

 아침이라는 걸 안다. 씻고 밥 먹을 준비를 하라 말한다. 그곳에는 결국 아무도 있지도 오지도 않는다.

 "잘 주무셨습니까?"

 처음 듣는 그 여자의 목소리였고 인사 소리였다. 그건 어쩌면 내 얼굴 표정 때문이었는지 몰랐음을. 그날 밤은 유난히도 잠을 설쳤기에 그랬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흐른다. 문틈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거실로 나갈 땐 추위를 느끼고 내 얼굴 피부는 거칠어져 갔다. 그러므로 난 새로운 계절 속에 있었다.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고 몸에 한기가 들어 이불에서 뒤척이며, 그렇게 또 잠에 빠진다.



Submariner



 창문을 열었을 때 무언가가 바람에 날려 들어왔다. 이곳 근처에 큰 나무가 자라고 있다 했다. 라 부장이 한 말이었다.

 그 끄트머리의 한 가닥이었던지. 그게 책상 위로 떨어져 앉을 때 문득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대화하고 싶다. 뼈조차 만져지지 않을 듯 했던 아들 얼굴과 몸을 떠올리다 라 부장의 어두운 얼굴을 보면 마치 불이 꺼진 듯 곧 암담함이 드리운다.

 그 목각인형 같은 걸음을 볼 때면 난 시선을 빼앗겨 아들 걷는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것 같았고.

 박영화가 새 옷을 주기 위해 들어왔는데 일주일 간격으로 바꿔주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천을 내 피부 위로 입히는 건 아니었다. 티셔츠와, 깃이 있는 셔츠와 어디에도 구속 받지 않을 것만 같은 펑퍼짐한 바지는 내 두 다리를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밥상에 놓인 것들을 보면 그들과 내가 같은 민족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반가움을 느끼지 못하는 건.

 밥과 국에 몇 가지의 반찬들이 놓였어도. 때로 내 두 팔은 그 가벼운 젓가락을 들 힘조차 잃을 것 같았다.

 난 항상 김치 반찬을 남겨두곤 했다.

 "반찬이 맛이 없습니까?"

 앉은 자리에서 본 박영화의 골반은 보통의 여자들보다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 식판을 놓거나 가지고 나갈 때 그 허리는 크게 구부러졌다.

 박영화는 어느 날 손도 대지 않은 그릇의 김치를 보며 말한다. 신맛에 물린 내 혓바닥은, 가슴을 조이고 말라붙게 하는 짠맛에도 난 진절머리나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도 난 김치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주는 김치를 먹지 않는 이유는 그 김치는 맛을 잃은 듯했기 때문이다.

 왜 나였을까. 나보다 더 인정받는 감독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최상옥 감독의 영화가 그들에게 더 강렬히 다가오지 않을까. 배우 신은희의 연기가 더욱.

 인민들을 일어서게 하고 움직이게 할 힘이 그들 연출과 연기에는 있지 않은가.

 내 머릿속 질문들은 누군가를 원망할 질문들로 이어지는 듯했고, 난 그가 만든 영화에,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장면들에 영향을 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현해낸 꿈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을 맴도는 탓이다. 시간이 흘러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지도자 동지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영화 보는 눈이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최상옥 감독의 영화는 되려 실제 같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영화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을 얼굴이다. 그 양쪽 뺨에는 여드름이 나 있으며. 그 여자의 얼굴은 여전히 사춘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난 가끔 그와 김수홍의 관계에서 미묘함을 읽으려 하기도 했는데. 문밖으로 나간 그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런 것뿐이었으니. 그로부터 그들 이야기는 시작되고, 김수홍의 그 좁은 얼굴은 그 안에 박힌 눈 코 등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의 시선 속 그 얼굴은 그렇게 보였을 게 분명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의도와는 늘 상관 없는 것이었다.

 벽의 끝과 끝에 그들을 기대어 서게 하고, 튀어 나온 벽의 끄트머리는 그들 사랑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의미하지만. 순간 그 모서리 위로 서로의 손을 맞잡도록 한다. 종이에 쓰면 지울 수 없어 그게 날 좌절케 했던 것이다. 다시 펜을 놓는다.

 내가 만난 사랑은 어디에 있고 난 왜 그 여자를 남겨두고 온 건가. 몇 자를 쓰다 멈추고 의자에 등을 기댄다. 닫힌 창문을 멍하니 볼 때 그곳에 아내의 얼굴과 아들의 모습이 그려질듯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아내는, 그 눈은 검은 유리 벽 앞에 선 자의 시선과 같았을지도.

 그럼에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집 밖으로 나와 어딘가로 향하는, 저벅저벅 느려진 걸음으로 걷는 그 여자의 모습을 말이다.

 아들이 걷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왔다. 지금이면 그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진 채로 거리 위 사람들을 마주하고 볼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귀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어떠한 음악 선율로도 덮을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그게 구스타프 말러가 빚은 것이었어도 말이다.

 어느 가수의 노래가 들려오며 그는 꽃봉오리와 강산, 모란봉을 말하며 울부짖듯 노래한다. 그렇지만 그려지지 않는 건.

 그저 괴롭기만 할 뿐 그들이 노래하는 방법을 난 이해하지 못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그들 가요는 귓속 기관들을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창 밖을 보지 않아도 곧 깊은 어둠이 드리울 것을 알기에. 다시 자유로워져 그들을 안을 팔과 가슴을 되찾을 수 있을까. 며칠이 지나면, 이 시나리오만 완성시키면 보다 자유로운 몸이 되어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절뚝거리며 한쪽 다리를 저는 남자가 길을 간다면 그건 희망을 의미할 테다. 달아나듯 도망치는 모습이어도 그는 기쁠 테고.

 다음 날 문 너머로 공책 한 권을 더 달라고 이야기한다.


 밤에 뜨여 있는 내 눈은, 지구 반대편에 있기를 꿈꾸는 자는 밤에 잠들지 않는다고.

 언젠가 난 그런 말한 적 있었다.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며 체념한 것을. 그렇다고 낮에 눈을 감은 채로 있지도 않는다. 내 정체를 의심하게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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