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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Oct 02. 2024

두 얼굴

2024 10 2


 바깥에서 남자 고함소리가 들렸고 그건 비명소리였다. 단단하고 긴 물체 사이에 목이 낀 듯, 그러나 난 왜 그 소리에 반가움을 느꼈던지.

 한쪽 귀를 열어뒀고, 옆으로 누운 채였지만 반대편 귀는 그걸 쫓는다. 집 안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멈춘 지 한 시간을 넘었으며.

 밖은 어두컴컴할 것이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를 이곳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날 찾는 존재들을 상상하고야 만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들지 못할 것 같음을. 그 깊은 밤 난 군인들을 봤다. 수면 아래에 있듯 모든 게 울렁대고 일그러졌음에도.

 내 머리 속 창작자는 급기야 그 파괴적 군대를 투입하기에 이른다. 온 바닥 흙을 뒤집을 듯 날개는 돌고 그 커다란 잠자리 한마리가 공중을 맴돈다. 곧 줄을 타고 내려오는 군인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2011년 아보타바드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은밀한 작전이 펼쳐졌다.

 평양 외곽의 어느 가옥을 둘러싸고 그곳을 포위하는 자들은 낮은 자세로 움직여 문 앞으로 다가서고.

 문 너머로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날 인질로 삼을 테다. 라 부장이 수상한 소리를 듣고는 눈을 떠 바깥 분위기를 느껴 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기대어 서는 그들 모습을. 요동치는 군화 발자국 소리 뒤 문이 부서지며 병사 한 명이 뛰어 들어온다. 그 얼굴은 투시경에 가려 알아볼 수 없지만, 방탄된 옷을 입은 그 몸은 괴수처럼 크고 단단해 보였으며.

 김수홍이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김에도.

 그는 곧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쏜 총알 한 발에, 그는 그 군인에 의해 제거되고 말았다. 라 부장이 방 안으로 들어와 와락 내 몸을 차지하고.

 그 외투를 보며 짐작하곤 했지만. 왼 가슴 주머니 안에 권총 하나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어느 날 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걸 던 것이다. 그가 외투를 벗어 놓을 때, 의자에 걸린 그 옷을 향해 돌진이라도 할 듯 망설였던 것이다. 그러나 두 발 묶인 듯 움직이지 못하는데.

 마침내 그가 스스로 그걸 꺼내 들어 내 머리에 겨눔에도.

 그런 그를 원망할 수 없었다. 구겨진 얼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음을. 그건 곧 다른 병사들이 들이닥친 이유 때문이었다.

 낯선 사내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운 뒤였다. 그들이 낸 소리들마저 이 좁은 방 안으로 빨려 들어와 고요해진다. 그날 새벽, 난 푸른빛을 입은 물개들의 모습을 봤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소리치는 군인 목소리가 들렸으며, 그때 라 부장이 방으로 들어와 내 머리에 총을 겨눈 채 그들과 맞섰다. 짧은 시간 그 사이 김수홍은 숨을 거두고야 만다. 그는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라 부장이 날 바깥으로 끌고 나갔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곳에서 멀어지며 모든 게 점점 아늑해지기만 했고. 그가 몬 차는 한참을 질주했으며, 그 불빛 없는 어두운 도로를 10km 쯤 달렸을까.

 자동차 라이트에 비친 한 여자의 모습, 그건 박영화의 것이었다. 그 여자는 문을 열고 앉아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고 머리카락 아래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달그락거리며 품에 안은 상자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먹을 것이었다. 그리고는 깼다.

 뚜껑을 열자 신 냄새가 퍼졌고 자동차 바퀴는 멈춘다. 그 냄새는 7년 정도 묵은 김치의 그것이었다.

 꿈속에서 달린 길은 숲으로 연결돼 있었는데 결국 내 있던 곳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침대 위 그 모습이 진정 내 모습인가. 난 일어설 수 없고 끝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그곳은 승조원 마을로 불리는 곳이었다. 난 바다 깊은 곳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침대 위에 누운 자였다. 일어나 움직여도 문을 열고 나갈 수 없다는 걸 아는 몸이었다. 놀라운 건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몇 더 있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승조원 마을이다.

 그날 밤 괴상한 소리를 낸 남자는 램속 부두에서 납치돼 온 시인이었으며, 그곳에는 일본인 소설가도 머물렀고 반도와 어느 땅 끝을 서성대던 예술가들이 하나 둘 고래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건 지도자 동지가 큰 관심을 기울이는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계획이었다. 결코 깨지지 않을 꿈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었음을. 잠수함 한 대가 아시아의 바다 밑을 떠돌며 예술가들을 태웠다.

 라 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렇게 말한다. 당신은 납치되어 온 게 아니라 초대되어 온 것이라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십시오. 곧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귀가 먹어 입 모양으로 알아들은 듯, 소리 없이 물 위를 떠다니는 것들처럼.

 난 조난돼 먼 바다 한 가운데에 홀로 있었던 듯이.

 "생일 축하 드립니다."

 축하, 그 감동적이지 않던.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그 케이크의 모양을 난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몇 시간을 그대로 둬 처음 혓바닥으로 전해지던 그 마른 질감조차도.

 그럼에도 난 부정할 다. 난 초대되어 온 게 아니다. 이건 분명 납치이며 또한 심각한 분쟁을 일으킬만한 일임을. 내 입술은 떼어져 그런 말을 할 듯이. 이 가슴이 뜨거워져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예술가로 인정받는 일에 영광스러워해야 한단 말인가.

 잠수함은 하와이까지 갔다 올 수 있었는데 지도자 동지는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닿을 항해 거리를 원했다 한다. 아주 먼 이야기만 같았음을. 그곳은 다시는 오지 못할 거리에 있을지도. 잠수함은 태평양 한가운데의 깊은 구멍으로 빠져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곳에서 멈춰 길을 잃을 것이다. 난 지도자 동지의 그 꿈이 깊은 어둠을 향하고 있다 생각했다. 난 비관했으며 그의 생각 아이디어에 고개 끄덕이지 않았다. 잠수함은 결코 그곳으로 닿을 수 없을 것이다.

 몇 주가 흐른 뒤 난 그곳을 떠나게 된다. 언제 하루가 끝이 났으며 또 어디서 새로운 해가 떴는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을 즈음. 11월의 어느 날, 난 승조원 마을을 떠나 평양으로 불려가게 된다.


 연출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느 순간 당신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열리게 될지 예상치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그 마음을 이해했다. 어느 정도는.

 누가 서서히 불을 지핀 듯 방 안은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얼굴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는 상태였기에. 그러고는 잠에 든다.

 "나오십시오."

 그리고 눈을 떴을 때였다. 어젯밤 무슨 꿈을 꿨는지 스스로 그 장면들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우려 했던 건지도.

 문을 열고 선 그가 내게 말한다. 방 안으로 찬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라 부장은 거실을 걸었다. 일어나 그를 따라 걷는다. 또 한 번 문을 열고 그 앞에 선 그는, 그의 옷 외투는 휑 부는 바람에 순간 격렬히 흔들렸다. 그러다 이내 잠잠해진다. 난 멈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 부장이 날 향해 고개 돌려놓은 채 있다. 그가 보게 한 것은 늘 창문 밖이었는데 그건 문밖 풍경이었다. 달라진 건 그런 구도뿐만이 아니었으며, 김수홍이 구두 한 켤레를 가지고 나왔고 내 발 앞에 놓았다. 갈색의 소가죽으로 덮인 내 두 발을 본다.

 그들은 내게 양털로 된 외투를 줬고 바깥 공기는 차가웠다. 움츠러든 몸과 어느 살찐 짐승의 목이 된 듯 난 고개 들어 하늘을 볼 수 없을 것 같았으며.

 그곳 앞에 커다란 못이 있었고 그곳 위로 머무르는 구름들을 봤을 뿐이다.

 "이곳은 지도자 동지께서 예술가들을 초대한 마을입니다."

 못 가로는 똑같은 모양의 집이 몇 채 세워져 있었는데 꽤 그럴듯이 지어진 집들이었다. 집집마다 하나씩 달린 철문은 보기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물가를 시계 방향으로 돈 그는, 난 그 걸음을 아무 말도 없이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도자 동지께서는 이곳의 문화 혁명을 이끌 동지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못을 반 정도 돌았을 때였다. 그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그와 내 시선이 향한 곳이 남쪽 방향이었는지 북쪽 방향이었는지 알 길 없었다.

 못 주변과 집들 사이에는 높은 나무들이 자라 있었고, 길고 뾰족한 나무들 사이 어울리지 못하는 백발의 매머드와 같은 나무 앞에서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말했다. 그 나무의 잎들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나무 앞에는 수심이 깊어 곧 빠질 듯한 자가 서 있다. 나무는 흔들리다 이내 잠잠해졌으며.

 호수 한 편으로 미미한 파동이 일고 있었다. 라 부장은 내게 담배 한 대를 줬고, 더 넓은 세상에서 피우는 더 독한 고약한 것이었다. 그가 내겐 건넨 담배는 늘 민들레였는데 담뱃갑의 색깔이 달라져 있었다.

 "내일 아침에는 평양으로 가게 될 겁니다. 제가 함께 갈 겁니다."

 바뀌어 있는 글자는 려명이었다.

 나무들이 쓸쓸하고 초라한 모습이 되었을 때야 그들은 내게 옷이라고 할 만한 것을 줬다. 코트 한 벌과 허리까지 오는 길이의 외투, 그것에 어울리는 긴 바지와 셔츠. 이곳에서 처음 얻은 내게 맞는 의복이었다.

 또다시 덜컹거리는 차에서 또 한 번의 울렁거림이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곳을 향한 설렘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두려움 탓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내 두 눈은 가려져 있지만 마치 바깥의 풍경을 보는 듯했고.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달려 우당탕거림에도 요동치지 않았으며.

 길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로 선을 그릴 예술가의 손은 모자란 걸까. 난 그리 되뇔 뿐이었다.

 그날 밤은 잠들지 못했다. 새벽녘에 떠올리는 가족의 얼굴이란 너무도 희미한 것임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숨결은 그렇지만 뚜렷하기만 하고.

 이른 새벽 잠에서 깨 거실로 나온 날 보던, 그 모습에 어리둥절해하다 이내 다가와 코를 내밀던 우리 해피.

 그 시간의 냉장고 문과. 채우려 산 것이지만 도로 빈손이 되어버린 때에 난 그 복잡한 마음을 표현할 길 찾지 못한다. 우리 강아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리고 내 새끼는 잘 자고 잘 먹는가.

 자동차는 깊은 밤의 한 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결국 그런 물음을 던지고야 마는 나였다. 김수현은 이 시간들을 잘 견뎌내고 있을까.

 한 시간 정도 눈을 감았다 떴을까, 마지막 몇 주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찾는 일에 몰두했는데 그날은 그곳에 머물던 우리 모습만을 그렸다. 그 여자와 내가 이루어낸 가족이란 세계는. 그러나 지금 방 안에서 들려오는 건 오로지 내 옅은 숨소리와 심장박동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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